이혜훈 전 대표가 금품수수 의혹으로 사퇴한 이후 유승민 의원을 비대위원장으로 추대하자는 움직임이 있었지만 김무성 의원을 비롯한 일부 의원들의 강력한 반발로 무산됐다. 바른정당은 9월 13일 심야 의원총회에서 격론을 벌인 끝에 결국 조기 전당대회를 열어 새로운 지도부를 구성하기로 했다.
10일 저녁 김무성 의원(왼쪽)과 유승민 의원이 서울 여의도의 한 음식점에서 열린 바른정당 의원단 만찬에서 서로 술을 주고받다 분위기가 고조되자 입맞춤까지 하고 있다. 연합뉴스
당내 일각에서 유승민 비대위원장 카드를 반대한 표면적인 이유는 자칫 유승민 사당으로 비칠 우려가 있다는 것이었다. 바른정당의 한 관계자는 “이번 싸움의 본질은 자유한국당(한국당)과의 합당이나 연대를 원하는 합당파와 이에 반대하는 자강파 간의 갈등”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김무성 의원처럼 통합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언젠가는 한국당과 함께해야 하는데 자꾸 밀어내지 말자는 주장을 하고 있다”면서 “유승민 의원이 죽음의 계곡(※ 유 의원은 동지들과 함께 죽음의 계곡을 건너겠다면서 자강론을 강조한 바 있다) 같은 말을 계속 하니까 유승민이 (비대위원장이) 되면 완전히 (통합의) 뒷문이 닫히는 거 아닌가하는 우려가 있다. (통합의) 여지를 전혀 안 주는 것에 대한 반발”이라고 설명했다.
김무성 의원은 바른정당 내 대표적인 합당파다. 김 의원은 8월 정진석 한국당 의원과 함께 열린토론 미래라는 연구모임을 출범시켰다. 당장 정치권에서는 이 모임이 한국당과 바른정당 통합의 가교 역할을 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김 의원과 정 의원 모두 이를 부인하지 않았다.
김 의원은 연구모임 직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정책연대 후 당 통합’을 고려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 그런 논의를 활발히 진행 중”이라고 답했다. 이어 통합 논의를 거부하고 있는 바른정당 내 자강파의 반발에 대해서는 “다 극복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선 이번 조기 전당대회에서 김무성 의원과 유승민 의원의 빅매치가 성사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두 사람은 전당대회 출마 여부에 대해 아직까진 말을 아끼고 있다. 김 의원 측과 유 의원 측에 각각 문의한 결과 양측 모두 “전당대회 출마여부는 결정된 것이 없다”고 답했다. 또 상대방이 전당대회에서 승리했을 경우 자강론과 합당론에 대한 입장을 바꿀 용의가 있느냐는 공통 질문에도 양측 모두 “현재로선 입장에 변화가 없고 전당대회 이후의 상황에 대해서는 논의해본 바가 없다”는 취지의 답변을 내놨다.
전당대회 전까진 주호영 원내대표의 권한대행 체제가 이어지고 기존 최고위원들은 새 지도부가 출범하면 활동을 종료하게 된다. 지난 전당대회에서 이혜훈 전 대표에 이어 2위를 차지했던 하태경 최고위원은 이번 전당대회에도 출마하겠다는 입장이다.
하 의원 측 관계자는 “의원님은 다시 출마하는 쪽으로 생각하고 있다. (자강파와 합당파가) 다 나와서 선명하게 노선경쟁을 해보자는 입장이다.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도 뽑지만 최고위원도 뽑는데 다시는 이런 논란이 벌어지지 않도록 자강파가 당 지도부를 모두 장악해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번 전당대회를 통해 자강파와 합당파가 끝장 대결을 벌이자는 얘기다. 이 관계자는 “사실 이미 지난 전당대회에서 자강파와 합당파의 싸움은 결론이 난 것이다. 이혜훈 전 대표나 하 의원같이 자강론을 내세웠던 후보들이 압승을 하지 않았나. 이번 전당대회도 비슷한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자강론을 주장하는 또 다른 바른정당 관계자는 “(의원 수가) 107명 대 20명인데 당 대 당 통합이 가능하겠느냐”면서 “한국당 혁신위가 바른정당 의원들의 복당을 언급하면서 통렬한 반성이 있어야 한다고 했는데 통렬한 반성은 자기들이 해야지. 한국당은 우리가 반성하고 들어오면 받아주겠다는 식이다. 지금 한국당과 통합한다면 통합이 아니라 흡수되는 것이고 밑으로 기어들어 가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자강론자들도) 친박을 제외하고 한국당과 함께할 수 있다고 생각은 하는데 한국당 타이틀 달고는 건강한 보수통합이 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제3지대에서 모이는 것은 가능하다”고 말했다.
자강론을 주장하고 있는 하태경 의원도 바른포럼 창립총회에서 “우리 당에서 소위 자강을 주장하는 사람도 통합을 아예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라면서 “어떤 통합이 가장 바람직한 통합인지 고민하고 있는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하 의원은 “바른정당과 국민의당 그리고 한국당에 일부 남아 있는 합리적인 사람들이 나와서 합치는 통합이 바람직한 통합”이라고 주장했다.
바른정당 원외위원장들 중 상당수는 유승민 의원을 지지하고 있다. 원외위원장들의 대표격인 권오을 최고위원은 유 의원을 지지하는 이유에 대해 “현재로선 유 의원이 당 대표가 되어야 내년 지방선거에서 도움이 된다는 판단”이라면서 “당을 살리기 위해서는 당내에서 일반 대중들에게 가장 인기가 높은 유 의원이 대표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권 최고위원은 또 “원외위원장들 중에서는 통합론보다 자강론을 지지하는 사람이 훨씬 많다. 유 의원이 자강론을 주장하고 있는 점도 중요했다”고 설명했다.
원외위원장들이 자강론을 지지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솔직하게 말해서 공천 문제가 크다. 한국당과 합당하게 되면 한국당 후보들과 경쟁해야 하는데 조직력에서 밀릴 수 있다”면서 “그리고 최근 여론조사를 해봤더니 한국당과 합당을 했을 때 전혀 시너지 효과가 생기지 않았다. 한국당 지지율이 20이라고 치고 우리당 지지율이 10이라고 치면 합당했을 때 최소한 30은 나와야 하는데 그 이하가 나와 버리니까 문제”라고 말했다.
권 최고위원은 “합당했을 때 가장 시너지 효과가 생기는 것은 국민의당이었다.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이 합치면 시너지 효과가 생겼다”면서 “국민의당과 연대할 경우 지역구가 겹치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권 최고위원은 “통합이라는 것은 힘이 비슷할 때 가능한 것인데 지금 한국당과 합치는 것은 통합이 아니고 굴종이고 굴복”이라면서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의 의석 수가 40 대 20으로 비슷하니까 국민의당과는 진정한 통합이 될 수 있다. 나중에 한국당과도 합칠 수 있지만 그 전에 국민의당과 합쳐서 덩치를 키우는 게 맞지 않느냐 이런 의견”이라고 설명했다.
누가 이기든 바른정당 전당대회가 끝나고 나면 대대적인 정계개편이 시작될 가능성이 높다. 정치권에서는 유승민 의원이 전대에 출마해 승리할 경우 합당파 의원들이 탈당할 수도 있다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 바른정당이 결국 분당 수순을 밟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러나 앞서의 바른정당 관계자는 “이미 탈당파 13명이 한국당으로 가면서 많은 비난을 받고 정치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것을 보지 않았나. 마땅한 명분이 없어 쉽게 결정하지 못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