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대의 한 건물. 지미 카터 미국 전 대통령의 모습이 담긴 플래카드가 걸렸다.
전북대는 오는 2018년부터 국제이공학부를 신설하고 국제인문사회학부와 합친 뒤 단과대학 ‘글로벌프론티어칼리지’를 출범할 예정이다. 지미카터국제‘학부’는 국제인문사회학부 내 지미카터국제협력 ‘전공’으로 축소돼 명맥만 유지된다.
유명인의 이름을 딴 대학원이나 학부는 있었지만 ‘전공’은 전세계적으로도 찾기 어렵다. 더군다나 학부에서 전공으로 격하되는 이 상황이 지미 카터 미국 전 대통령에게 알려지자 카터 재단은 지난 7일 실무자를 전북대로 급파했다. 한국에 입국한 카터 재단 관계자는 8일 전북대에서 사실 관계를 파악한 뒤 하루 만에 미국으로 돌아갔다.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의 반응은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았다.
지난 2015년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은 세계 최초로 전북대가 자신의 이름을 딴 학부를 운영할 수 있도록 허락했다. 세계적으로 미국 전 대통령 이름을 딴 학부와 대학원은 미시간대학교의 포드 스쿨, 하버드대학교의 케네디 스쿨, 아칸소대학교 클린턴 스쿨, A&M대학교 부시 스쿨 정도다. 한국에선 연세대 언더우드국제학부, 이화여대 스크랜튼국제학부 정도가 알려졌지만 이는 다 학교 설립자 이름이다. 유명 인사의 이름을 딴 학교는 국제 무대에서 인지도 넓히기에 유리하다.
그럼에도 전북대가 지미 카터 흔적 지우기에 나서자 그 배경을 두고 정부지원금 50억 원을 공유하는 기존 학과와 신설 지미카터국제학부의 알력 다툼 의혹이 대두됐다. 다른 학과 2곳과 공유한 정부지원사업을 총지휘했던 지미카터국제학부 개설 교수 A 씨(50)는 1283만 원 사기와 배임·횡령 등의 혐의로 지난 2015년 12월 검찰에 기소됐다. 2015년 초부터 시작된 익명의 투서가 국무총리실과 감사원, 경찰 등으로 흩어진 결과였다. 최초 착복 혐의로 교육부 등이 고발한 금액은 약 1억 원이었다. 그렇지만 검찰 수사 과정에서 금액은 1283만 원으로 줄어 기소됐다.
전주지방법원은 지난 6월 1심에서 검찰이 주장한 착복 금액 1283만 원 가운데 1101만 원을 착복한 것으로 판단, A 교수에게 300만 원 벌금형을 내렸다. 법원이 판단한 A 교수의 착복액 가운데 840만 원은 한 미국인 강사의 특강료 횡령 혐의였다. 애초 예산은 1650만 원이었지만 급하게 축소된 특강 시간에 810만 원만 먼저 강사에게 지급하고 나머지는 회계 항목 변경한 뒤 처리하려다 잔액 일부을 사용해 횡령죄를 받았다. 사임한 조교 명의로 계속 입금 받은 134만 원으로 사기죄가 추가됐다. A 교수는 조교가 그만두자 학부생에게 업무를 부탁하며 그만둔 조교의 명의로 받은 인건비를 학부생 급여로 지급한 것이 문제가 됐다.
배임 판결 난 126만 원은 해외 출장 비용이다. 해외 출장에서 회의하며 든 식비, 귀빈 선물 결제 금액 등 31만 원과 부부 동반 모임 때문에 미국에 함께 간 아내의 미국 내 이동 비행기삯 95만 원이 문제가 됐다. 한국에서 미국으로 갈 땐 각자 카드가 달라도 동석이 가능해 각자 카드로 계산했다. 하지만 미국 내 이동 땐 미국 항공사 규정상 각자 결제하면 예약번호가 달라져 동석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A 교수는 법인카드를 썼다. 개인 카드 쓴 뒤 후정산보다 법인카드를 쓰고 개인 사용 금액을 학교 측에 돌려주는 방식이 익숙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A 교수는 이 금액을 학교에서 인정 받지 못해 환급 시기를 놓쳤다가 배임 판결을 받았다.
법원의 결정에 대해 A 교수는 “한국에 와서 교수 생활을 하며 사업단을 꾸린 경험이 일천해 정산과 회계 등에 익숙지 않았다”며 “출장이 잦아 제대로 챙기지도 못한 내 잘못이다. 다만 악의가 아니었고 개인적으로 챙긴 건 없다. 되레 학생들을 개인적으로 지원하느라 난 늘 돈을 더 써 온 사람이다. 소명 자료 접근이 가능하다면 억울함을 풀고 싶다”고 밝혔다. 현재 A 교수는 항소해 2심 재판을 준비하고 있다.
실제로 소명 기회는 충분히 주어지지 않았다. 조사 4일 만인 지난 2015년 4월 6일 모든 보직에 해임되며 소명에 필요한 회계와 결제 자료 등으로 접속할 권한이 다 차단됐던 까닭이었다. 이남호 전북대 총장은 <일요신문>과 만난 자리에서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수사나 감사, 조사 등에 착수될 때에 보직해임은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서도 배경으로 또 다른 문제가 있었다는 점은 인정했다. 그는 “사실 정치적인 문제가 있었다. A 교수는 그를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교수들과 계속 갈등을 빚었기에 이런 결정을 내렸다”고 말했다.
A 교수와 주로 갈등을 빚었던 건 정치외교학과와 경제학부 쪽이었다. A 교수가 이끄는 국제학부는 지난 2013년 신설된 작은 학부였지만 정치외교학과, 경제학부와 함께 수행한 50억 원대 국가지원 사업의 주체였다. 전통적인 대형 학과를 누르고 사업비 지출 의사 결정권을 가져온 국제학부는 주위의 견제를 받을 수밖에 없는 학내 정치적 배경에 노출돼 있었다. 정치외교학과 교수 9명과 경제학부 교수 일부는 최초 공공기관 조사에 앞선 지난 2015년 3월 훗날 검찰 조사 결과 무혐의로 나왔던 문제를 “철저하게 조사해야 한다”고 총장에게 건의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학교 측이 A 교수의 특강비 횡령 증거로 제시한 미국인 강사 서명이 서류 3장에 각기 다르게 표기됐다.
일련의 사태를 지켜 본 한 사업단 운영 조교는 “법인 카드는 추후 정산은 말할 것도 없고 회계 처리가 수시로 바뀌는 일도 적지 않다. 이런 식으로 재단한다면 우리나라 대부분의 교수가 범죄자로 판단될 것”이라며 “소명의 기회조차 차단됐다면 음모로 의심될 여지가 충분하다. 학교에서 교수들의 사업비 알력 다툼은 일상다반사”라고 말했다.
기소 진행 3주 만인 지난 2015년 12월 28일 전북대 징계위원회는 A 교수에게 정직 1월 처분에 의결했다. 당시 징계위원장은 “검찰 기소 때 범죄처분통보서를 우리에게 온다. 이에 따라 징계했을 뿐”이라고 했다. 대법원의 착복 인정 금액이 나오기 앞서 기소된 금액으로만 징계부가금 1282만 원이 정직과 함께 따라왔다. 압박은 쉼 없었다. 교수회는 지난달부터 “100만 원 이상 벌금형 받으면 중징계를 내리라”는 주장을 해오고 있다. 지난 2015년 10월 경제학과 한 교수는 “무혐의 의견으로 송치된 일부 혐의도 철저히 재수사하라”고 전주지방검찰청을 찾아 압박했다.
A 교수가 보직에서 해임되고 사업단장 자리에 오른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우린 늘 지미카터국제학부를 도왔다. 음해할 이유가 하등 없다. 정치외교학과는 국가지원금 없어도 건재한 조직”이라고 했다. A 교수가 학교의 정산을 제대로 받지 못해 배임 혐의를 받았을 때 학교의 같은 사업비로 출장 갔다가 후정산을 받았던 한 경제학부 교수는 “난 이 일과 전혀 연관이 없다. 출장도 다녀온 적 없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그는 A 교수와 비슷한 시기에 네팔 출장을 다녀왔다.
A 교수는 지난 2000년부터 벨기에 루벤대와 영국 킹스 칼리지 런던 등에서 교수로 활동하다 2013년 3월 전임 총장의 러브콜에 전북대로 향했다. 징계로 보직 해임되기 전까지 2년 새 보직 3개와 5개 사업단을 맡았다. 국가사업 4개 예산 약 175억 원을 끌어 오며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 이름까지 가져 왔다. 단행본 2권과 논문 23편을 발표하면서 업무를 수행했다. 2015년 11월 교육부 등 발표 기준 4년제 대학 사회과학 분야 교수의 국내외 학술지에 게재한 논문 수는 교수 1인당 평균 0.97편이었다. 재직 기간 2년 1개월의 64%인 488일을 출장 다니며 이뤄낸 성과였다. 현재는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최훈민 기자 jipcha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