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간범 폭행범 꼬리표를 달고 사는 사고뭉치 마이크 타이슨.이번엔 마약 복용 전과를 추가해 팬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 ||
얼마 전 죄수복을 입은 마이크 타이슨(40)의 모습을 본 미국인들은 대부분 이렇게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잊을만하면 들려오는 타이슨의 크고 작은 범죄 소식 때문이다. 이번에는 코카인 복용 및 소지 혐의다. 지난해 12월 코카인을 흡입한 채로 운전을 하다가 경찰에 적발됐던 그는 최근 내려진 법원의 판결로 가까스로 철창행을 면했다. 대신 그는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자는 판사의 너그러운 마음으로 구류 24시간, 보호관찰 3년, 사회봉사 360 시간을 선고 받았다. 링 밖으로 물러난 후 좋은 소식보다는 나쁜 소식으로 언론에 얼굴을 비치는 일이 많은 그에게서 더 이상 ‘왕년의 챔피언’의 당당함은 찾아볼 수 없다. 어쩌다가 이 지경까지 됐을까. 타이슨과의 가상 인터뷰를 통해서 사건 사고와 악소문으로 얼룩진 그의 인생을 돌아봤다.
Q: 그동안 어떻게 지내는가 했더니 다시 불미스런 사건으로 수갑을 찼군요. 나이트클럽을 나서다가 경찰에게 적발되었다면서요. 그날 밤 일을 설명해주시죠.
A: 정말 할 말이 없습니다. 사실 자동차 안에서 코카인을 좀 흡입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코카인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자주 흡입했어요. 특히 말보로 담배 속에 넣어서 몰래 피우는 걸 좋아하거든요.
Q: 이렇게 스스로 시인하는 걸 보니 당시 경찰한테 변명할 기회조차 없을 정도로 증거가 확실했나보군요.
A: 그런 셈이죠. 경찰의 불시 검문에 혀가 꼬인 듯이 말을 했거든요. 대번에 걸린 거죠. 게다가 당황한 나머지 자동차 계기판 위에 흘린 흰색 가루를 치우다가 딱 들켰습니다. 어쩔 수 없이 그 자리에서 바로 혐의를 인정했습니다.
Q: 사실 타이슨 씨가 법정에 선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죠. 실제 교도소에서 복역을 했던 적도 있었고요.
A: 아. 그때 일은 정말 잊고 싶습니다. 1992년에 강간죄로 교도소에서 3년을 보냈었죠. 그때부터 제 인생이 꼬였던 것 같아요. 지금 와서 말하지만 전 100% 결백합니다. 전 그 여자와의 동의 하에 성관계를 맺었던 겁니다.
Q: 하지만 데지레 워싱턴 양의 주장은 달랐죠. 당시 많은 사람들이 당신의 전과 기록을 보고 아무도 당신의 결백을 믿지 않았습니다.
Q: 정말 억울합니다. 4년 전 TV 방송에서도 말했지만 제가 강간범으로 몰린 것은 정말 부당합니다. 오히려 저에게 강간범이라는 꼬리표를 달게 한 그 여자를 증오하고 있어요. 얼마 전에는 저의 무죄를 주장하는 변호사가 책도 출간했습니다. <미국의 재판>이란 책에서 변호사 앨런 더쇼위츠 씨는 “어쩌면 타이슨은 그 사건에서 무죄를 선고 받을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당시 ‘미스 블랙 아메리카’에서 우승했던 토냐 버스타멘트 양도 이 책에서 저의 무죄를 입증할 만한 결정적인 증언을 했죠. 당시에는 왕관을 박탈당할까 주저했지만 분명히 워싱턴이 제 호텔방으로 올라온 것은 워싱턴의 자의에 의해서였다고요.
Q: 그렇다면 2005년 이탈리아에서 프랑스 여성을 성폭행했다는 소문은 어떻게 된 거죠. 워싱턴 양의 사건으로 인해 계속해서 ‘강간범’이라는 이미지가 당신에게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는 건가요.
A: 바로 그겁니다. 사람들은 한 번 강간범은 영원한 강간범이라고 생각하는가 봅니다. 당시 그 프랑스 여성은 제가 억지로 그 여자를 요트로 데리고 와서 성폭행을 하고 마약을 시켰다고 주장했는데요. 사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나이트클럽에서 만나서 서로 호감을 느꼈고, 그 분위기가 이어져서 같이 요트로 자리를 옮긴 것뿐이에요.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나는 ‘킬러’가 아니라 ‘좋은 사람’입니다.
▲ 로이터/뉴시스 | ||
A: 하하. 10년 전 경기 도중에 에반더 홀리필드의 귀를 물어 뜯은 사건이 대표적이겠죠? 당시 ‘핵이빨’이라느니 ‘짐승’이라느니 말들이 많았는데요. 뭐 인정할 건 인정하겠습니다. 제가 좀 과격한 데다 욱하는 성미가 있어서요. 하지만 몇몇 폭행 사건은 사실과 다르게 보도되기도 했습니다. 라스베이거스에서 있었던 토플리스 댄서 폭행 사건이나 브라질에서 있었던 팬 폭행 사건이 그렇습니다. 클럽 사장도 증언했지만 난 그 댄서의 몸에 손끝 하나 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브라질의 그 팬들은 총을 들고 협박까지 했어요. 결국 증거 불충분으로 100시간 사회봉사명령을 받고 유치원에서 보모 노릇을 했죠. 그래도 덕분에 아이들한테 권투를 가르치는 시간만큼은 즐거웠습니다.
Q: 2년 전에는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카메라 기자를 폭행한 일로 떠들썩했었는데요. 왜 또 주먹을 참지 못하고 휘둘렀습니까.
A: 전날 아르헨티나에서 마라도나의 토크쇼에 출연했었습니다. 그때 마라도나로부터 손수 사인을 해준 유니폼을 선물 받았는데 그게 그만 브라질 팬들의 심기를 건드렸던 거죠. 축구 라이벌인 아르헨티나의 유니폼을 입고 브라질의 나이트 클럽에 들어갔으니 호랑이굴에 들어갔던 셈이랄까요. 단번에 주위에서 야유가 쏟아졌습니다. 처음에는 무시하려고 했지만 점점 더 야유가 심해지니 못 참겠더라고요. 화가 난 김에 옆에서 촬영을 하던 방송 기자의 카메라를 빼앗아서 던져 버렸죠. 몸싸움 끝에 결국 기자의 머리까지 내리쳤습니다. 저는 솔직히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닌데…. 그때 그 기자에게는 정말 죄송할 뿐입니다.
Q: 사실 당신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당신은 사방에 적이라고 말하고 아무도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눈물까지 흘려 가면서 말했지만 꼭 그렇지도 않아요. 일례로 당신이 비둘기를 애완용으로 키우고 좋아한다는 사실에 감동 아닌 감동을 받는 사람들도 있어요. 당신도 알고 보면 ‘부드러운 남자’라면서요.
A: 비둘기는 어릴 적부터 제 유일한 친구이자 희망이었습니다. 사실 제 인생의 전환점도 비둘기의 죽음 때문에 찾아왔어요. 동네 불량배가 제가 키우던 비둘기의 목을 꺾어서 죽인 일이 있었습니다. 그 광경을 목격했던 나는 분노가 치밀었고 결국 그 불량배를 한 방에 쓰러뜨렸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소심하고 외톨이였던 제가 ‘핵주먹’의 위력을 처음 실감했던 거죠.
Q: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는 예전의 8만 평의 대저택에 비하면 아주 작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경제 사정이 어려워졌다는 뜻인데 언제쯤 다시 회복할 수 있을까요.
A: 솔직히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한때 K-1이나 프라이드 FC에 진출해볼까 생각도 해봤는데 좀처럼 기회가 오질 않고 있습니다. 조만간 좀 더 나은 모습으로 팬들 앞에 서야겠죠. 복서로는 끝났으니 다른 길을 모색해 보려고 합니다. 제발 더 이상 말썽이라도 부리지 말아 달라고요? 글쎄요. 인생이 제 뜻대로 되는 건 아니던걸요.
김미영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