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북한만이 남한의 미군 핵무기 철수를 줄기차게 요구했지만 중국이나 소련은 이렇다 할 반대 입장을 보이지 않았다. 미국이 전술핵을 한국에 이양한 게 아니라 배치했을 뿐이기 때문이었다. 전술핵 재배치가 이뤄진다면 중국과 러시아가 반발할 것이나, 기본 구도가 과거와 같으므로 반발에는 한계가 있다. 당시 북한은 주한 미군의 핵무기에 대응한다는 이유로 핵개발을 추진하면서도 말로는 ‘우리는 핵을 개발할 생각도, 능력도 없다’고 잡아뗐었다.
주한 미군의 전술핵 철수를 최종적으로 확인한 것은 1991년 11월 8일 노태우 대통령의 한반도 비핵화선언이었다. 노 대통령은 이 선언에서 한국은 핵무기의 제조, 보유, 저장, 배비(配備), 사용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 무렵 미소 간에는 핵무기 감축협상이 타결돼 전술핵을 포함한 사정거리 500~3000㎞의 중단거리 미사일을 대거 폐기 또는 감축했다. 한국 정부의 비핵화선언도 그와 같은 국제적인 흐름에 호응하면서 북한의 핵개발 중단을 압박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그러나 비핵화 선언 후 26년이 지난 오늘 북한의 핵개발로 한반도에 현저한 무력의 비대칭이 초래됐다. 전술핵이 재배치되어도 북한이 핵무기로 남한을 공격하지 않는 한 미국은 그것을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전술핵이 한국민에게 주는 것은 심리적 안정감뿐이지만 그것이 절실할 만큼 북의 노골적인 핵위협 앞에 우리는 속수무책이다.
철수 전의 전술핵과 재배치되는 전술핵은 전략적으로 큰 차이가 있다. 반출 때의 전술핵은 한반도 비핵화의 달성을 전제로 이뤄진 결정이나, 재배치는 북한의 핵 폐기 목표가 실패로 돌아갔고, 보유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를 지닌다.
그럼에도 문재인 대통령과 이낙연 국무총리는 “정부의 비핵화 정책에 변함이 없으며 자체 핵무장이나 전술핵 재배치는 고려치 않고 있다”고 이구동성이다. 미국조차 북한의 핵 보유를 인정하려는 마당에 우리 정부만 깨져버린 한반도 비핵화에 매달리는 것 같아 공허하다.
생각 같아서는 우리에게 통제권이 없는 전술핵이 아니라 우방들을 설득해서라도, 아니면 다소간의 마찰을 감수하면서라도, 한반도 비핵화가 이뤄지는 즉시 폐기한다는 조건부로 자체 핵무장을 시도했으면 좋겠다. 우리가 보유한 사용 후 핵연료나 핵기술로 6개월이면 성능 좋은 핵무기를 만들 수 있다고 하니 하는 말이다.
‘핵에는 핵’이라며 ‘공포의 균형’을 서슴없이 말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나는 그것이 우리 사회가 호전적으로 바뀌고 있다는 의미보다는 평화를 지키려는 의지가 더 강해진 증좌로 본다. 전술핵 재배치에 대한 절대 다수 국민의 지지가 말해주는 것도 그것이다.
임종건 언론인 전 서울경제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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