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남아프리카공화국을 바라보는 세계 언론들의 시선이 영 곱지 않다. 이미 오래 전부터 쌓여왔던 불신이긴 하지만 좀처럼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불안감은 여러 곳에서 표출되고 있다. 치안 문제도 그렇거니와 말끔히 해소되지 않은 인종차별 문제도 골치다. 또한 경기장이 제때 완공될 수 있을까 하는 걱정까지 들 정도로 공사도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숙박시설이나 도로사정, 대중교통, 공항시설 등 열악한 인프라도 아직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 남아공 월드컵조직위원장인 대니 조던(56)은 “월드컵 역사상 가장 훌륭한 월드컵을 개최할 것이다”고 호언장담하고 있지만 아직 갈 길은 멀어만 보인다. 심지어 지난달 대륙별 예선 조추첨이 있었던 날 더번에서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전 축구선수가 길거리에서 살해당하는 일이 벌어져서 충격을 안겨 주었다. 독일 시사주간 <슈테른>과 <포쿠스>가 짚어본 월드컵 준비가 한창인 남아공의 현주소를 살펴 보았다.
골프장에서 총에 맞아 숨진 채 발견된 페터 브룩스톨러가 봉변을 당한 것은 단순한 강도 때문이었던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사실 이런 일은 남아공에서는 비교적 흔하게 벌어지는 일이다.
한 통계에 의하면 남아공에서는 30분마다 한 번씩 살인 사건이 발생하고 있다. 이밖에도 성폭행은 10분마다, 도둑은 2분마다, 그리고 강도는 60초마다 한 번씩 발생한다. 이쯤 되면 ‘무법천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상황이 이렇다 보니 “도대체 월드컵을 제대로 치를 수 있을까”라는 말이 나올 법도 한 것.
남아공 정부는 오는 2010년까지 경찰 인력을 19만 명으로 증원할 계획이라고 밝힌 상태다. 해마다 1만 명씩 충원해서 월드컵까지 완벽한 준비를 마치겠다는 것이다. 나이두 공보담당은 “모든 것이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다. 만족할 만한 수준이다”고 말하면서 “월드컵 기간 동안 단 한 건의 사건 사고도 발생하지 않도록 안전에 만전을 기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렇다면 인종차별 문제는 어떨까. 비록 인종차별정책이었던 ‘아파르트헤이트’가 끝난 지 14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 잔해는 남아 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흑백간의 극심한 빈부 격차다. 아직도 인구의 절반 이상이 빈곤층이며, 곳곳에서는 여전히 흑인과 백인이 한데 어울리지 못한 채 서로를 배척하고 있다.
축구라고 예외는 아니다. 남아공에서 축구를 하거나 보는 사람들은 대부분 흑인들이다. 재미있는 것은 축구에 통 관심이 없고 문외한인 백인 시민들을 위해 정부가 ‘축구는 11명의 선수가 뜁니다’라는 내용의 플래카드를 시내 곳곳에 걸어 놓은 것이다. 명색이 월드컵 개최국인데 국민들이 축구를 몰라서야 되겠냐는 취지에서다. 이런 남아공 특유의 ‘흑인=축구, 백인=럭비’라는 풍토가 사라지지 않는 한 월드컵이 어떻게 정상적으로 치러질까.
이 점에서도 조던 위원장은 염려할 것 없다고 말한다. 그는 “월드컵은 남아공 국민들에게 만델라와 같은 에너지를 불어 넣어줄 것이다. 월드컵으로 인해 남아공은 다시 하나가 될 것이며, 우리의 미래가 될 것이다”고 단언하고 있다.
남아공이 월드컵을 자국의 ‘미래’라고 말하는 데에는 흑백 화합 외에도 다른 이유가 있다. 월드컵을 통한 어마어마한 경제적 파급 효과가 그것이다. 일자리 창출은 물론 15억 유로(약 2조 원)에 달하는 TV 중계료, 약 330만 유로(약 44억 원)의 입장권 수익, 45만 명이 몰려올 것으로 예상되는 관광객 수입 등 어마어마한 돈벌이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나중의 일이다. 현재로서는 사정이 그다지 좋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9개 도시에 총 10개의 경기장을 신축 혹은 보수하고 있지만 공사 속도는 지지부진하다. 재원이 부족한 것도 하나의 원인이요, 느긋한 아프리카인 특유의 습성도 원인이다.
FIFA가 정한 경기장 완공 시한인 2009년 10월까지는 이제 2년도 채 남지 않았지만 아직 각 경기장의 시공률은 극히 저조한 편이다. 가령 개막식이 열리는 요하네스버그의 ‘사커시티 스타디움’의 경우에는 1988년에 지어진 경기장을 보수하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공사 속도는 상당히 느린 편이다. 완공을 2009년 4월로 잡았지만 앞으로 남은 24개월 동안 완공이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문제는 또 있다. 남아공 축구팬들의 관람 태도가 그렇다. 경기가 시작되고 한참이 지나야 어슬렁어슬렁 입장하는가 하면 지정석인데도 불구하고 아무 자리에 앉거나 심지어 계단 위에 앉아서 경기를 보는 사람들도 많다. 경기가 끝난 후에는 무리 지어서 집단 폭력을 일삼는 일도 다반사다.
하지만 이에 앞서 해결해야 할 문제는 교통문제다. 외곽에서 시내로 연결되는 대중교통이 거의 전무한데다 그나마 유일한 교통수단인 택시마저 신통치 않다. 택시에 손님이 꽉 차지 않으면 출발하지 않기 때문에 아무리 택시를 잡아도 언제 출발할지 모른 채 하염없이 기다려야 한다. 이에 조던 위원장은 “앞으로 400대의 버스를 추가로 구입할 예정이다”고 밝히면서 “시민들의 관람 태도 역시 교육을 통해 점차 나아질 것이다”고 말했다.
아프리카 최초의 월드컵 개최국인 남아공이 과연 검은 대륙의 저력을 보여줄지는 남은 900여 일 동안 차근차근 지켜보는 수밖에 없을 듯싶다.
김미영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