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금융권에선 금감원 개혁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감사원 감사 결과 간부급 상당수가 규정에 없는 ‘활동비’를 챙긴 사실이 드러난 만큼 인적 쇄신의 명분도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이미 청와대는 감사원에서 다뤄지지 않은 금감원 고위 간부의 ‘갑질’ 정황까지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감사원이 지난 19일 선공개한 292쪽 분량의 ‘금융감독원 기관운영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감사원은 기관징계(통보, 주의 포함) 23건을 포함해 임직원 11명에 대한 인사조치(문책요구 등)를 내렸다. 감사원은 “금감원 조직·예산 운영 등에서 방만 경영이 심화됐다”며 “지난해 발생한 (변호사) 채용 비리와 유사한 부당 채용 사례도 적발했다”고 밝혔다.
앞서 금감원은 전직 국회의원 아들인 임 아무개 씨를 변호사로 불법 채용하면서 비난을 자초했다. 김수일 당시 금융감독원 부원장은 임 씨를 위해 채용 평가 항목을 변경하는 등의 방법으로 인사에 개입한 혐의(업무방해 등)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직무배제 상태였던 김 부원장은 지난 13일 1심 판결 후에야 사표가 수리됐는데 판결 전까지 금감원에 정상 출근하며 급여를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1999년 무자본특수법인 형태로 출범한 금감원은 통제받지 않는 민간기구면서 정부 조직처럼 권한을 행사해 ‘반민반관’(半民半官)이란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민간기구면서 감사 대상인 것은 한국은행의 일정 예산을 지원받기 때문인데 2017년 기준 한국은행이 낸 출연금 100억 원 외에 시중은행 등 피감독기관과 상장기업이 출연한 분담금의 합은 3565억 원이다. 이는 설립 당시 예산인 1197억 원의 3배에 달하는 수치다. 올 3월 기준 금감원 전체 직원 수는 1970명, 정원 외 인력은 255명에 달한다.
시장이 주지하는 금감원의 핵심 기능은 금융 권력에 대한 상시 감독과 불법 행위에 대한 엄중한 제재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 들어 금감원은 ‘금융기관에 자율성을 부여한다’는 이유로 스스로 기능을 축소시켰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피감 대상인 은행, 증권사와 금감원은 업무상 서로 뗄 수 없는 관계”라며 “그 속에서 일종의 카르텔이 형성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최흥식 금융감독원장. 연합뉴스
금융기관이 받을 수 있는 최고 수위 제재는 ‘등록취소’다. 금감원이 마음먹기에 따라 부실 금융기관은 퇴출될 수 있다. 그런데 등록취소 제재는 2014년 8건에서 2015년 2건, 2016년 1건으로 줄었다. 다음 수위인 ‘영업정지’도 같은 기간 7건에서 2건, ‘기관경고’도 22건에서 9건으로 줄었다. 비위행위에 연루돼 징계(면직·정직·감봉) 처분된 임직원은 2014년 264명에서 2016년 90명으로 감소했다. 이는 전체 사고 건수가 줄었다기보다 금감원이 재량을 발휘해 징계를 알아서 감경시켜준 결과로 풀이된다.
금감원 제재심의위원회에서 심의한 안건(3517건) 중 징계가 감경된 비율은 59.4%에 이른다. 특히 징계가 3단계 이상 완화된 비율은 무려 8.3%(292건)에 달했다. 또 정상참작 등 추상적인 이유로 징계를 감경해 준 사례는 141건으로 조사됐다. 감사원은 “금감원이 제재를 감경하는 경우 구체적인 사유를 적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밖에서 무딘 칼날은 안에서도 갈피를 잡지 못했다. 감사원은 차명으로 주식을 거래한 금감원 임직원 28명에 대해 자본시장법 위반 등 혐의로 검찰에 수사 의뢰했다. 감사원에 따르면 A 씨는 장모 명의로 개설된 계좌를 통해 735억 원 상당의 금융투자상품을 매매했고, B 씨는 자신의 계좌로 매입한 31개 종목에 대해 338회에 걸쳐 매매를 시도했다. 또 C 씨는 내부 신고를 누락하고 4억 1500만 원 상당의 비장장주식을 몰래 취득하다 감사원에 적발됐다. 뿐만 아니라 최근 3년간 금감원 안에서 횡령·금품수수 사건에 연루돼 징계를 받은 임직원은 39명인 것으로 조사됐다. 또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김수일 부원장의 (실형) 선고에 이어 감사원 감사까지 나오면서 금감원이 적폐로 몰리는 양상”이라고 말했다.
현재 금융권에선 금감원 개혁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감사원 감사 결과 상당수 간부급 인사가 규정에 없는 ‘활동비’를 챙긴 사실이 드러난 만큼 인적 쇄신의 명분도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이미 청와대는 감사원에서 다뤄지지 않은 금감원 고위 간부의 ‘갑질’ 정황까지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는 10월 예고된 ‘금감원 쇄신 보고서’(가칭)를 시작으로 거대한 인사 태풍이 휘몰아칠 전망이다.
금융권 일각에선 이번 금감원 개혁이 장기적으로는 금감원을 2개 조직으로 분할하기 위한 사전 포석이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현 정부 실세이자 최 원장을 직접 천거한 인물로 알려진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은 평소 금감원의 ‘금융소비자 보호’ 부문을 떼어내 별도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을 해왔다. 이번 금감원 감사보고서에는 장 실장의 주장이 인용돼 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장기적으로 금감원이 나눠지면 ㅅ 교수가 ‘금융소비자보호원’(가칭) 원장으로 갈 거라는 소문이 있다”고 전했다. 공교롭게도 ㅅ 교수는 이른바 ‘론스타’ 사건 당시 론스타를 변호한 것으로 알려졌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