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개막한 ‘2017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의 평양전시관 내부 모습. 평양 중산층이 거주하는 아파트를 참조해 재현해 놓았다.
지난 2일 서울시와 서울디자인재단이 주최하는 2017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가 개막했다. 서울시에 따르면 이 행사는 오는 11월 5일까지 계속되며 동대문디자인플라자, 국립현대미술관 등 서울 시내 곳곳에서 열린다. 이번 행사는 ‘공유도시’를 주제로 도시전, 주제전, 현장 프로젝트 등으로 진행된다.
이 가운데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도시전 프로그램의 하나인 ‘평양전-평양살림’이다. 서울시는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의 일환으로 평양 관련 기획을 따로 마련했다. 이 프로그램에는 ‘평양 건축전’, ‘시장에게 쓰는 편지전’, ‘심포지엄’, ‘북한 영화제’ 등이 포함돼 있다. ‘평양 건축전’과 ‘시장에게 쓰는 편지전’은 비엔날레가 폐막하는 11월 5일까지 동대문 디자인플라자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심포지엄’과 ‘북한 영화제’ 등은 11월 1일부터 3일까지 잇따라 열릴 계획이다.
<일요신문>은 지난 19일 ‘평양 건축전’이 열리고 있는 동대문 디자인플라자(DDP)를 직접 찾았다. 서울시에 따르면 이번 행사는 변화된 평양 주민의 일상을 보여주기 위해 2012년 이후 준공된 평양의 ‘은하과학자 거리’와 ‘미래과학자 거리’ 아파트를 모델하우스로 재현했다. 이 모델하우스는 약 36㎡ 규모로 거실, 부엌, 방, 화장실 등으로 구성됐다. 거실에는 LED TV와 냉장고, 선풍기 등의 가전제품과 소파가 놓여있었다. 거실 벽면에는 김일성과 김정일의 초상화를 비롯해 조선노동당의 주요 행사를 담은 사진을 걸어 놓았다. 다만 초상화는 실제 사진이 아닌 실루엣 그림으로 대체했다. 화려한 금박무늬 커튼도 눈길을 끌었다.
부엌에는 탁자와 선반 등 갈색 가구들이 눈길을 끌었다. 선반에는 샴푸, 치약 등 생활용품과 술과 차를 비롯한 식품들이 진열돼 있었다. 아이들의 공부방으로 보이는 곳에는 책상과 침대, 서랍장 등이 배치돼 있었다. 책상에는 아이들을 위한 동화나 그림 책 등이 진열돼 있었고 침대에는 황금색 이불이 덮여 있었다. 방 옆에 있는 베란다는 105층짜리 피라미드식 건물인 류경호텔을 비롯해 평양시내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만들어 놨다.
모델하우스 앞에는 서울시장과 평양시장에 편지를 남길 수 있는 ‘시장에게 쓰는 편지전’ 공간이 마련돼 있다. 이곳에서 임진우, 황두진 씨 등을 비롯해 국내외 건축가들이 서울시장과 평양시장에 남긴 글들을 볼 수 있다. 또 직접 일반 시민들이 편지를 남길 수 있는 공간도 마련돼 있다. 시에 따르면 관람객들은 편지를 통해 남북교류 활성화를 위한 바람과 다양한 제안을 할 수 있다. 이번 전시를 통해 북한에 대한 이해와 남북교류의 새로운 계기를 만들겠다는 게 시의 계획이다.
‘평양전’ 내부 거실 벽면에는 김일성과 김정일 초상화가 실루엣으로 대체됐다.
하지만 아무리 남북 교류 명분이지만 북한의 핵실험, 미사일 발사 등 한반도 위기가 고조되고 있는 현 상황에서 지나친 보여주기식 행정 아니냐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실제 북한은 최근 한 달 동안 4차례 도발을 이어왔다. 지난 2일부터 시작된 평양전 이후에도 3일 6차 핵실험을 비롯해 지난 15일에도 미사일을 기습 발사했다. 이에 문재인 대통령도 “ICBM급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 등 연이은 북한의 도발에 대해 국제사회와 함께 최고의 강한 응징 방안을 강구하라”고 강경한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이에 박성숙 서울시의회 자유한국당 의원은 서울시의 위기의식이 국제정세나 시민들의 체감하는 것에 매우 못 미친다고 지적했다. 박 의원은 “북한 도발에 대해 박원순 시장은 전혀 신경쓰고 있지 않는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서울시민들은 누구를 믿고 안전을 맡겨야 하겠는가”라며 “정해진 일정대로 사업을 진행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외부상황들을 고려해서 합리적으로 사업방향을 변경하는 것도 필요해보인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번 전시가 핵과학자 등 북한의 일부 특권층이 거주하는 곳을 마치 일반적인 거주구역인 것으로 시민들에게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양일국 한국외대 외래교수(국제정치학 박사)도 이번 전시가 시민들에 잘못된 인식을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양 교수는 “은하과학자거리나 미래과학자거리 등 아파트는 북한의 핵실험하는 데 기여한 과학자 내지는 기술자들에 대한 포상으로 그쪽에 거주하는 기회를 주는 것”이라며 “북한이 선군정치를 하고 김정은이 주력하는 게 핵실험인데 당연히 정치·경제·사회·문화에 기여한 사람보다는 군을 강하게 만든 사람에게 우선적으로 보상이 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북한에 대해 체계적 교육을 받지 못하거나 배경지식 없는 사람들이 그런 아파트를 보게 되면 당연히 ‘북한도 우리 수준으로 살고 있구나’ 착각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19일 방문한 평양전에서 자신을 건축학도라고 소개한 김 아무개 씨(27)는 관람소감을 묻는 질문에 “예전 우리나라 90년대 아파트 내부를 보는 것 같긴 하지만 평양도 이렇게 보니 살만한 곳 같다”고 말했다.
평양전 프로그램의 하나인 서울시장과 평양시장에게 쓰는 편지도 논란의 대상이다. 통일부에 따르면 북한에는 평양시장이라는 직책이 없다. 다만 실제 평양시장 역할을 하는 사람은 김수길 평양직할시 당위원회 위원장으로 알려졌다. 익명을 요구한 한 탈북자는 “있지도 않은 평양시장에게 ‘편지쓰기’ 행사를 하는 게 바로 전시행정”이라고 지적했다. 서울시의 홍보대로라면 시민들은 있지도 않은 평양시장에 편지를 써야 할 판이다. 더욱이 서울시가 접수하는 편지가 김수길 위원장에게 직접 전달되는 것도 아니다. 전시장 관계자는 “시민들의 편지가 직접 북한에 전달되는 것은 아니”라며 “평양시장, 서울시장에게 쓴 것 모두 11월 1일 ‘시장과의 대화’ 행사에서 박원순 시장이 낭독하는 데 쓰일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서울+평양 시장에게 편지 쓰기’라고 돼 있어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평양전’ 앞에는 관람객들이 평양시장에게 편지쓸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 있다.
평양 미화, 전시행정이라는 비난의 목소리가 거세지자 주최 측인 서울시는 진화에 나섰다. 서울시에 따르면 시는 행사 전부터 통일부, 남북교류위원회, 학계 인사 등으로 구성된 자문위원회를 통해 행사 전부터 자문회의를 열었다. 이 과정에서 현 시국과 관련해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이 같은 시도가 필요하다는 결론 하에 진행하게 됐다는 게 시의 설명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경기도나 DMZ 일대엔 예술공연, 마라톤 등과 같이 그동안 각 지자체에서도 민간간의 교류를 넓혀서 대립관계의 각을 다듬어보자는 프로그램들이 있었다”며 “그런 점에서 서울시도 평양에 대해서 아예 모르는 것보다는 어떤 곳인지 알고 가자는 의도로 기획하게 됐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아울러 시장에게 쓰는 편지전에 대해서도 같은 맥락이라고 밝혔다. 서울시에 따르면 ‘시장에게 쓰는 편지전’은 애초에 서울시장만을 대상으로 기획됐다. 하지만 국내외 건축가들의 제안에 따라 ‘서울시장과 평양시장에 함께 보내는 편지전’으로 확정됐다. 앞서의 서울시 관계자는 “서울시장과 평양시장이 직급도 다르고 권위도 달라 내부에서도 고민이 많았지만 최종적으로 상징적인 의미로의 평양시장으로 하자고 결정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상훈 기자 ksangh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