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정규직의 외침 “우리는 파업 대체 인력 아니다!”
파업이 시작된 이후 몇몇 프리랜서 신분인 비정규직 노동자는 파업을 지지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8월 30일 KBS 1라디오에서 일하는 작가 17명이 성명을 낸 데 이어 지난 4일에는 MBC 라디오 소속 작가 70여 명이 지지 입장을 밝혔다.
급기야 MBC 라디오 리포터들도 이에 적극 참여했다. 그들은 성명을 통해 “MBC 라디오 리포터들은 파업을 지지한다. 비록 프리랜서이지만 입장을 밝히는 이유는 지난 40년간 리포터 선배들이 지켜온 정론직언의 신념을 잃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반드시 이기고 돌아오십시오”라고 소신 발언을 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가 4일 오후 파업 첫날을 맞아 여의도 KBS본관 앞에서 조합원 10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출정식을 열고 경영진 퇴진과 공영방송 개혁 등을 촉구하고 있다. 박정훈기자
또한 MBC 뉴스AD 5명도 “공정성을 잃은 MBC뉴스에 더 이상 일조하기 싫다”며 퇴사선언을 했다는 사실이 전해지기도 했다.
KBS, MBC의 파업을 지지하는 대중의 목소리가 작지 않은 상황 속에서 방송사 내에 남아 있는 비정규직의 가장 큰 고통 중 하나는 ‘파업 대체 인력’으로 비치는 것이다. 정규직의 파업으로 생긴 공백을 그들의 인력으로 막는 모양새가 되는 것을 꺼리는 것이다. 하지만 프리랜서나 비정규직, 즉 계약직의 특성상 고용주라 할 수 있는 사측의 요구에 따르지 않으면 언제든 쫓겨날 수 있다. 또한 미운털이 박히면 향후 또 다시 일감을 받을 수 있을지도 장담할 수 없다. 파업을 마친 후 상황까지 고민해야 하는 비정규직 노동자 입장에서는 큰 목소리를 내는 것이 쉽지 않다.
한 비정규직 PD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업을 지지하고 이 분위기에 동참하는 것은 작금의 상황을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다는 것”이라며 “하지만 우리가 파업으로 인한 공백을 메우는 인력으로 쓰여 방송사가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모양새가 되는 것 또한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 또 다른 아픔, “생활고가 겁나요.”
“마음속으로는 지지하지만 머릿속은 복잡합니다.” MBC 예능 프로그램의 작가로 일하는 중견 A 씨의 이야기다. 현재 그는 2주째 일손을 놓고 있다. MBC가 파업에 돌입하며 예능 프로그램 제작이 ‘올스톱’됐기 때문이다.
A 씨를 포함해 대부분의 작가들은 비정규직이다. 그들이 급여를 받는 기준은 방송 노출이다. 자신이 쓴 대본을 바탕으로 제작된 프로그램이 TV를 통해 노출되면 익월 정산되는 식이다. A 씨는 “8월에는 정상 방송됐으니 9월 월급은 받을 수 있다. 하지만 9월 일이 없으면 당장 10월부터 수입이 없기 때문에 아르바이트로도 할 일이라도 있는지 찾고 있다”고 말했다.
4일 오후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광장에서 전국언론노조 MBC본부 총파업 출정식에 전국에서 모인 조합원들이 참석하여 김장겸 사장 퇴진과 방송의 정상화를 촉구하고 있다. 최준필 기자
A 씨의 더 큰 고충은 아파도 아프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2012년에도 MBC에서 일하며 170일 파업을 경험했던 A 씨는 당시에도 적잖은 생활고로 힘든 시기를 보냈다. 하지만 방송 정상화를 외치며 파업에 동참하고 있는 MBC 직원을 비롯한 동료 제작진을 보고 있노라면 자신의 신세를 마냥 한탄할 수도 없다.
방송사에 속하지 않은 카메라, 조명, 음향 스태프 역시 상황은 매한가지다. 일이 없으면 소득도 없다. 파업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섣불리 다른 일거리를 찾기도 애매하다. 파업에 적극 동참할 용기도 선뜻 나지 않으니 자리를 보전하기 위해 침묵하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 외주 제작사 “무거운 마음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예능 프로그램의 경우 프리랜서 작가와 PD들을 다수 고용하지만 방송사 자체 제작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결국 연출 PD가 모두 파업에 참가하면 대체 투입돼 이를 메울 인력이 없다. 반면 시사 교양 프로그램을 비롯해 드라마 등은 상당수 외주 제작에 기댄다.
특히 여러 제작사가 경쟁적으로 아이템을 낸 후 본사의 선택을 받아야 하는 시스템상 외주사 입장에서는 요즘 더욱 열을 올리며 일할 수밖에 없다. 몇몇 프로그램이 결방되는 상황에서 외주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프로그램을 향한 본사의 관심이 상승하기 때문이다. 한 중견 외주사 대표는 “파업 이후 본사에서 원하는 물량이 더 늘어나는 경우도 있다. 파업을 지지하는 입장을 취했다가는 아예 방송사로부터 배제되기 때문에 무거운 마음으로 일하고 있다”며 “파업이 끝나면 돌아갈 회사가 있는 정규직과 우리의 입장은 다를 수밖에 없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파업 중에도 두 방송사의 드라마는 차질 없이 방송되고 있다. 자체 제작보다 외주 비중이 높기 때문이다. 방송사 소속 PD들이 연출자로 참여하기 때문에 MBC <20세기 소년소녀>는 촬영이 일시 중단되기도 했다. 하지만 드라마의 경우 100억 원 안팎의 제작비가 투입되는 거대 프로젝트이고 외주 제작 시스템이 정착돼 있기 때문에 파업 중에도 연출 PD들이 대개 메가폰을 잡고 있다. 작가는 프리랜서 신분이고 나머지 스태프도 외주 제작사에서 외부 인력을 끌어 쓰기 때문에 파업에 관계없이 드라마 촬영 현장은 무리 없이 작동하고 있는 편이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
방송사 파업 속 연예인 자세는? 일단 몸 낮출 수밖에 방송사를 주요 무대로 일하는 대표적인 프리랜서이자 비정규직은 다름 아닌 연예인이다. 드라마는 여전히 가동되고 있기 때문에 파업의 여파가 적은 배우들도 달리 예능을 주업으로 삼는 방송인과 가수, 개그맨들은 손해가 적지 않다. 메인 MC들의 경우 회당 500만~1000만 원가량의 출연료를 받기 때문에 출연 중인 1개 프로그램이 1달간 방송되지 않으면 2000만~4000만 원가량의 수입이 증발하는 셈이다. 가수들도 발등에 불이 떨어진 건 매한가지다. 가요 순위 프로그램을 비롯해 가수들이 패널과 게스트로 대거 참여하는 예능 프로그램이 잇따라 불방되면서 9~10월 사이 컴백하기 위해 준비 중이던 가수들에게 적신호가 켜졌다. 한 가요기획사 대표는 “케이블채널과 SNS 등이 활성화됐다고 해도 여전히 지상파 예능은 주요 홍보 수단”이라며 파업 기간을 피하기 위해 컴백 시기를 조율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고 귀띔했다. 연예인 중에는 파업 지지를 공개 선언하는 일이 드물다. 공영 방송사의 파업을 바라보는 시선 역시 엇갈리기 때문이다. 정권 교체 후 파업을 지지하는 목소리가 커졌지만 여전히 이를 곱지 않게 보는 시선도 존재한다. 이런 경우 연예인이 한 쪽을 지지하게 되면 특정 정치색을 띠는 것처럼 보일 수 있기 때문에 최대한 말을 아끼는 모양새다. 최근 시사인 주진우 기자가 방송인 김성주를 향해 일침을 가한 사건(?)은 연예인들을 더욱 움츠러들게 만들었다. 주 기자는 지난 13일 열린 전국언론노조 MBC 본부 총파업 집회에 참석해 “2012년 총파업이 실패하고 생각하지 않지만 성공하지도 못 했다. 많은 아나운서·진행자들이 파업에 동참하겠다고 마이크를 내려놓았고 스포츠 캐스터도 그랬다. 그런데 그 자리에 다른 사람들이, 보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들어와 마이크를 잡았다”며 “특히 김성주가 빈자리를 자주 차지했다. 나는 그런 사람이 더 밉다. 진짜 패 죽이고 싶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2007년 MBC 퇴사 후 MBC 출연이 어려웠던 그가 2012년 MBC 파업 기간 중 스포츠 중계와 각종 MC로 자리를 잡은 것을 꼬집은 것이다. 김성주의 행동이 기회주의적이었다는 질타가 있는 반면 몇 년동안 MBC의 문턱을 넘지 못하던 그가 프리랜서 신분으로 주어진 기회를 잡은 것뿐이라는 옹호 의견도 있다. 결국 김성주를 비난할 수만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구설에 오르는 것 자체가 연예인의 이미지에는 결코 긍정적으로 작용하지 않기 때문에 파업과 관련해서 이름이 오르내리지 않도록 최대한 몸을 낮추자는 것이 대다수 연예인들의 입장이다. [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