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대표는 이제 29살이다. 카이스트에서 3년 전 석사를 마치고 바로 창업전선에 뛰어들었다. 유명세는 허그돌로 탔지만, 최근에는 방향을 바꿔 새로운 교육 서비스를 준비 중이다. 아이들이 체험을 통해 직업교육을 받을 수 있는 서비스다. 새로운 서비스를 준비하는 정 대표를 그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정세경 키두 대표.
― 회사 이름 키두는 무슨 뜻인가.
“키드 더하기 유. 아이와 당신이란 뜻이다. 당신은 아이의 아버지, 어머니들이다. 아이와 당신이 함께한다라는 뜻의 합성어다.”
― 젊은 나이에 어떻게 창업을 하게 됐나.
“운이 좀 좋았다. 카이스트에서 석사 수업을 들으면서 조 모임이 있었다. 친구 4명이 수업이 좀 지루해서 ‘재밌는게 없을까?’하다 교내 창업 경진 대회를 나가게 됐다. 마침 4명 모두 산업 디자인학과를 졸업했다보니 학부 졸업 작품이 하나씩 있었다. ‘이 4개 가운데 하나를 발전시켜서 나가자’라고 했는데 그때 내 작품인 ‘허그돌’이 선택됐다. 대회에서 최우수상을 타게 됐고 법인 설립 자금과 사무 공간을 지원했다. 팀원도 4명이나 있겠다, 안 할 이유가 없었다. 석사 졸업하고 당장 취업하겠다는 마음들도 아니어서 시작하게 됐다.”
― 그럼에도 창업 과정이 쉽지 않았을 텐데.
“지금 생각해보면 규정이 좋았다. 상금을 나눠 갖을까도 생각했지만, 창업 경진 대회 상금을 무조건 법인 설립금으로만 지급했다. 그래서 일단 법인 설립을 했다. 대회도 많은 도움이 됐다. 단계별로 토너먼트식이었는데, 예를 들면 1차는 사업계획서쓰기, 2차는 시제품 만들기, 3차는 투자 자료 만들기 등이었다. 최우수상을 타고 나니까 어느 정도 준비가 됐다. 사업계획서를 만들었고, 제품도 발전됐다. 지원금을 통해 프로토타입도 만들어 볼 수도 있었다. 창업을 하더라도 MOQ(최소발주수량)이 문제인데 상품이 플라스틱이면 몇 만 개 단위를 발주해야 하는데, 인형이기 때문에 천 개만 만들어 볼 수 있어서 창업할 수 있었다.”
― 그때 만든 ‘허그돌’은 어떤 제품인가.
“허그돌은 안전벨트인형으로 키두가 처음 개발한 상품이다. 아이들이 만 6세까지는 카시트가 의무화돼 있다. 하지만 6세가 지나면 카시트에 타기에는 몸이 크고 성인 체형에 맞춰진 안전벨트도 잘 맞지 않는다. 안전벨트가 어깨를 지나 내려가지 않고 목을 쓸려서 내려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안전벨트를 안 매거나 팔이나 겨드랑이 사이로 안전벨트를 하게 돼 위험하다. 이때 허그돌 사이에 안전벨트를 통과시키면 각도가 내려가면서 편안해진다. 인형이기 때문에 아이들이 차에서 졸거나 기대 있을 수도 있다.
― 허그돌이 인지도를 얻은 계기는 무엇인가.
“이 또한 운이 좋았다. 한 자동차 광고 모델로 당시 가장 뜨거웠던 송일국 씨와 ‘삼둥이’가 모델로 나왔다. 콘셉트가 삼둥이 캠핑기였는데, 송일국 씨가 개인적으로 캠핑 갈 때 가져갈 물건에 허그돌을 챙겼다가 광고에 나오게 됐다. 자동차 광고가 허그돌 광고도 된 셈이다. 그 광고가 유튜브에서 화제가 되면서 알려지기 시작했다. 거기서 끝이 아니라 송일국 씨가 ‘슈퍼맨이 돌아왔다’에도 허그돌을 가지고 나왔다. 나도 TV를 보다가 깜짝 놀랐다. PPL도 아닌데 방송에 8차례 정도 나왔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 아이디어 상품은 많은데 허그돌이 반응을 얻은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내가 디자이너기 때문에 초반에 제품 퀄리티에 욕심을 많이 냈다. 무조건 좋은 원단, 예쁜 디자인, 깔끔한 마감을 고집했다. 인형 구조도 시행 착오를 거치면서 개선해 나갔다. 제품 퀄리티를 계속 높이다 보니까 가격대가 높아질 수 밖에 없었다. 그때 어느 정도 포기하고 가격대를 저렴하게 생산할지, 퀄리티를 높이고 마케팅을 잘 풀어나가 프리미엄 전략으로 갈 건지 선택해야 했다. 주변 멘토 분도 ‘특히 유아용품에 있어서는 신뢰도 있는 프리미엄 전략으로 가야 한다’고 조언해주셨다. 나도 그렇게 판단해서 최고의 퀄리티를 제공하는 프리미엄 전략으로 갔다.”
― 매출이 나기 전까지는 어떻게 버텼나.
“공동 창업자들이 다 디자인 인력이다 보니까 벽화 작업 등 디자인 외주 작업들을 했다. 작업을 통해 자본 마련하고 그 돈으로 허그돌 생산하다가 회사 자체 매출이 생기면서 서서히 외주 작업을 끊었다.”
― 3명의 멤버는 그대로 있나.
“지금은 혼자 남았다. 각자의 사정이 있어 다 좋게 헤어졌다. 각자 꿈꾸는 미래의 그림들이 있었다. 어떤 친구는 초기에 확장성이 좋은 사업이 하고 싶었고, 어떤 친구는 유아 업계에서만 하는 게 아니라 디자인 상품을 계속하고 싶었다. 그렇게 각자 꿈을 찾아 떠났다.”
― 허그돌 이후에 새로운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다고 들었다.
“목표는 아이들이 조금 더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고 싶고, 그 첫 제품으로 허그돌이 나왔다. 허그돌처럼 아이들의 단편적인 경험을 바꿔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아이들 스스로가 미래에 필요한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게 돕는 것도 중요하다고 봤다. 사람을 만나보면 그 사람이 어렸을 때 어떤 경험을 했는지, 어떤 환경에서 자랐는지에 따라 미래가 너무 다르더라. 내가 가정환경을 바꿔 줄 수는 없기 때문에 교육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때 우연한 기회로 지방에 사는 친구가 꼭 가보고 싶다며 서울에 있는 직업체험 시설을 갔다. 엄청나게 인기가 많았다. 상상보다 너무 좋았다. 다만 시설이기 때문에 놀이에 많이 편향돼 있었다. 그래서 직업을 체계적인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아이들에게 깊이 있게 체험 할 수 있게 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특히 사회가 빠르게 변하고 있어 미래에 많은 직업이 사라지고 새로운 직업이 생긴다고 전망하고 있는 상황에서 직업교육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이 직업이 뭐 하는지 안다’는 암기식으로 가르치지 않는다. 직업 활동에 몰입해보는 경험을 통해 아이들이 스스로 고민하고, 자발적으로 문제를 창의적으로 해결해보는 방법을 배우는 데 초점을 맞췄다. 그게 ‘롤박스’다”
키두가 새롭게 준비하는 ‘롤박스’.
― 롤박스에 관해 자세히 설명해 달라.
“롤박스는 직업체험교육키트인데 현재 유치원에 공급하는 상품은 하나의 직업에 여러 직업 활동들이 주어져서 한 달에 한 직업씩 체험을 해보게 된다. 한 직업을 1주일에 한 번, 총 4회 수업을 받는다.”
― 어린 유치원 아이에게 직업 교육이 굳이 필요한가라는 의견이 있을 수도 있겠다.
“롤박스는 단순히 다양한 직업을 체험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직업교육을 한다고 플로리스트는 꽃의 종류를 외운다거나, 조향사는 향기의 종류를 외우는 게 아니다. 직업은 다양한 분야를 접해볼 수 있는 하나의 수단이다. 미래에 어떤 직업이 있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직업이 무엇인지 아는 건 중요하지 않다. 궁극적으로는 아이들의 문제해결 능력을 키워주고 그 속에서 자기를 발견하는 게 내가 생각하는 ‘직업교육의 시작점’이다. 6~7세 유아기는 자아가 형성되고 본격적으로 사회성이 형성되는 첫 번째 시점이다. 이때 아이들이 놀이를 통해 특정 역할에 몰입하여 긍정적인 상호작용을 경험하면, 그 속에서 자기를 발견하여 긍정적인 자아 인식을 발달시킬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어 이르다고 볼 수 없다.”
― 키두가 제시하는 직업교육의 특징은 무엇인가.
“하나의 직업에 대해 다양한 미션을 수행하게 된다. 직업 자체에 국한하지 않고 직업과 관련된 분야에 초점을 맞춘다. 의뢰인이 뭔가를 의뢰하면 직업인으로서 그 의뢰를 처리하는데 콘셉트가 짜져 있다. 예를 들면 플로리스트의 경우 어떤 의뢰인이 생일 파티를 위해 다양한 꽃으로 장소를 꾸며 달라고 요청하는 상황을 두고 아이들이 플로리스트가 되어 생일 파티 장소를 꾸며본다. 고고학자라면 뼈를 발굴하고 워크시트에 치수를 잰다. 공룡이 살아있을 때 어떤 모습이었을지 상상해보라고 한 뒤 발굴한 뼈에다 점토를 붙여서 새롭게 공룡을 복원하고 이름도 붙여본다. 마지막 수업에서 박물관을 열어 서로의 공룡을 소개하는 시간도 갖는다.”
― 유치원에서 배우는 직업은 총 몇 개인가.
“현재로서는 6세 12개, 7세 12개다. 직업을 분류하는 여러 논문을 찾아보고 가공했다. 사람을 대하는 직업인지 아닌지, 데이터 기반인지 창조적인지 등으로 구분해 배치했다. 아나운서 등 한글을 모르면 할 수 없는 직업이나 나이가 어려 할 수 없는 난이도 높은 직업은 제외했다.”
― 어린 나이대에서도 직업교육 수요가 큰가.
“국내에서는 7년 전부터 뜨거웠다. 직업 체험을 할 수 있는 ‘키자니아’는 전 세계에서 지점이 두 개 입점한 곳이 흔치 않은데 국내에 서울과 부산 두 곳에 있다. 우리나라가 특히 아이들 교육에 관심이 많다. 키자니아가 뻗어나간 모습을 보면 전 세계적으로 관심이 많다고 볼 수 있다. 세계가 같이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 글로벌 진출도 생각하고 있나.
“아이들의 직업교육이 전세계 공통의 관심인 만큼, 글로벌로 진출하는 것이 최종 목표다. 가까운 아시아부터 시작 될 수도 있고, 키자니아가 신흥시장부터 공략한 전략을 따를 수도 있다. 신흥시장의 교육열이 엄청나다. 국내에서 먼저 안정적으로 자리잡은 후 국가별로 로컬라이징을 할 예정이다.”
― 스타트업을 경영하면서 어려운 점은 무엇이었나.
“적은 자본이 가장 큰 어려움이었다. 제품은 발주 물량이 많으면 많을수록 제조 단가를 반값까지도 떨어트릴 수 있다. 자본이 적은 회사의 경우 적게 생산하면서 단가가 높아지기 때문에 그만큼 또 고객을 설득을 해야 한다. 그에 따른 마케팅비도 든다. 나는 그래도 매출이 바로 발생하는 사업으로 시작하여 그 매출로 새로운 아이템 개발을 진행한 방향이 운이 좋았다고 본다.”
― 만약 누군가 스타트업을 창업하겠다고 한다면 어떤 조언을 할 것 같나.
“두 가지다. 사업을 통해 만들어내고 싶은 가치가 있는지, 그 일이 정말 가슴 뛰는 일인지 물어본다. 그 다음으로는 타깃의 니즈에 대해 많이 들어야 한다. 본인이 가슴 뛰더라도 정작 타깃은 그렇게 느끼지 않을 수 있다. 정말 하고 싶은데 나만 좋을 수 있거나 돈 주고 살 정도는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혹시 타깃이 자신이라면 다른 사람의 얘기를 듣지 않을 수 있어 더 위험하다는 점도 조언한다.”
―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
“단기적으로는 키두를 직업교육 전문 업체로서 안정적으로 잘 키우고 싶다. ‘안전벨트인형 하면 키두다’라고 인정하듯 ‘직업교육 하면 키두다’라고 듣고 싶다. 유치원에 공급하는 B2B 모델을 런칭하고 B2C 시장으로 가서 더 많은 아이들이 좋은 경험을 할 수 있게 하고 싶다. 최종적으로는 글로벌까지 가는 게 목표다. 장기적으로는 믿을 수 있는 탄탄한 유아 전문 UX 회사로 키우고 싶다. 아이들이 좋은 세상에서 살기 위해서라면 제품, 서비스, 교육 상관없이 계속 개발할 것이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