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1월, 쿠웨이트에 파견되었던 한 항공 자위대원이 일본으로 귀국한 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는 자위대원 생활을 하면서 몇 번이나 표창을 받았을 정도로 우수한 인재로 쿠웨이트에서의 파견 임무를 무사히 마친 후 모처럼 고향에 돌아온 참이었다. 그러나 전장에서도 살아남은 그를 죽음으로 내몬 것은 다름 아닌 같은 자위대원들이었다.
그는 쿠웨이트에서 돌아오기 직전에 친구에게 “드디어 일본으로 돌아갈 수 있다. 하지만 귀국하게 돼서 기쁜 마음과 동시에 귀국하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다”는 내용의 이메일을 보냈다. 일본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자위대 선배들의 스트레소 해소를 위한 폭행과 부당한 괴롭힘이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염려했던 대로 귀국 후 집요한 이지메로 인한 극도의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그는 결국 부인과 어린 자녀를 남겨두고 자택에서 목을 맸다. 이 사례는 시작에 지나지 않는다. 1995년에는 44명이었던 자위대원의 자살이 지난해 100건을 넘어서면서 3년 연속으로 연간 100건이 넘는 자살사건이 발생했다. 평균 3~4일마다 한 명씩 자살을 하는 셈이다. 자살의 원인은 ‘기타 · 원인 불명’이 1위로, 이 대부분이 이지메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주간문춘>이 입수한 한 자위대원의 내부고발 서류에 따르면 자위대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어두운 이지메의 실상은 상상을 초월한다.
요코스카 기지 소속의 이케다 사토루 해사장(海士長·우리나라 군대의 병장에 해당)이 살인미수로 체포된 것은 지난해 5월이었다. 당시 고향인 규슈에서 요양 중이던 이케다가 집 앞을 산책하던 한 남성의 등을 갑자기 칼로 찌른 것이다. 정신 이상을 이유로 기소는 피할 수 있었지만 사건이 벌어진 후 이케다의 아버지는 요코스카 기지에서 달려온 두 명의 간부로부터 다짜고짜 “부대 내에서 이지메는 없었다”는 내용의 해명을 들었다. 영문도 모르는 아버지에게 그들은 이케다가 자살 방지를 위해 전화 상담을 받도록 권유하고 떠났다.
20세 때 공대를 중퇴하고 평소 동경하던 해상 자위대에 지원한 이케다에게 이상 징후가 나타난 것은 입대한 후 4년이 지났을 때였다. 어느 날 이케다가 근무하던 기지에서 그의 부모에게 “아들의 행동이 이상하다”는 연락이 왔다. 컴퓨터를 부수거나 문에 발길질을 하는 등 평소와는 다르게 폭력적인 행동을 보인다는 것이었다. 결국 이케다는 통합실조증(정신분열증)이라는 진단을 받고 투약 치료를 받기 시작했지만 치료의 부작용으로 혀가 꼬이고 제대로 걸을 수조차 없게 되자 치료를 중단하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어머니를 프라이팬으로 구타하는 등 폭력적인 성향은 집에서도 계속되었다. 앞서 나온 보행자 살인미수 사건도 어머니를 구타한 직후에 일어났다. 환청을 듣고 충동적으로 지나가던 행인을 찌른 것이었다.
이후 의료시설에 강제 입원하게 된 이케다는 차츰 회복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결국 사건 7개월 후인 지난해 12월 14일 간호사와 함께 외출했다가 철길에 뛰어들어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25세의 젊은 나이였다.
얼마 후 슬픔에 빠진 이케다의 부모 앞으로 두꺼운 서류 뭉치가 배달됐다. 이케다가 호위함 ‘하타카제’에서 근무하면서 기록한 서류였다. 실은 이상 행동이 시작되기 반 년 전인 2006년 6월 그는 변호사에게 “자위대 내에서 벌어지는 불상사에 대한 은폐 공작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함장 등 자위대의 간부에게 이야기해봐야 어차피 묵살될 것이기 때문에 이번에는 직접 사령부에 서류를 전하고 싶다”며 변호사를 통해 요코스카 기지에서 벌어지는 이지메를 조사하도록 요청했다.
▲ 해상 자위대 | ||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이지메의 수위도 올라갔다. 바다 위에서 생활하는 해상 자위대원들에게 있어 가장 큰 즐거움인 육지 상륙을 금지하고 배 안에서 빨래를 하도록 시키는 등 부당한 괴롭힘이 계속됐다.
결국 하루는 견디다 못한 이케다가 선배에게 달려들면서 큰 싸움이 벌어졌다. 그가 변호사를 만난 것은 이 사건 직후였다. 수차례에 걸쳐 부대 안 이지메에 대해 조사해줄 것을 요청했지만 번번이 묵살 당하자 변호사를 통해 직접 총감부(總監部)에 조사를 의뢰한 것이다.
이에 대해 현재 요코스카 지방 총감부는 조사 의뢰를 수락한 사실은 인정하지만 조사 내용에 대해서는 “본인에게 직접 전했다”며 밝히지 않고 있다. 조사를 의뢰한 이케다가 자살한 지금 사실 여부를 확인할 방법은 없다.
이밖에도 지금까지 자위대원들의 석연치 않은 자살은 수도 없이 많았다. 하지만 그때마다 자위대 측은 돈 문제가 원인이었다고 둘러대거나 유족들에게 유서나 일기 등의 개인 물품을 공개하지 않는 등 불투명한 대응을 계속하면서 “자위대원들의 자살은 이지메와 관련이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주간문춘>은 자위대의 고질적인 은폐 공작에 대해 “진정한 전력은 최첨단 전투기나 함대가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의 자위대원”이라는 쓴 소리로 기사를 끝맺었다.
박영경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