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소환 조사하면서 탄력을 받고 있는 국정원 정치개입 사건. 그리고 하성용 전 사장을 구속하는 데 성공한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채용비리, 분식회계 사건까지. 각종 대형 수사가 한창이지만 검찰 안팎에서는 다음 검찰 인사 때 정치인·기업을 상대로 수사하는 각 지검 특수부와 대북·노동 수사를 담당하는 공안부를 대폭 줄일 것이라는 전망이 고개를 들고 있다.
섣부른 얘기 같지만, 실제 검찰 내부에서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만들어지면 검찰 조직 개편은 피할 수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검찰은 문재인 정권 출범 직후인 8월 초, 이미 한 차례 조직 개편을 이미 단행했다. 문무일 검찰총장은 직접 특수부 축소 등을 지시했는데, 당시 검찰은 특수부 소속 검사 규모를 소폭 줄이고 범정(범죄정보 수집) 기능을 약화하기로 했다. 문 총장의 결정은 ‘파격’으로 받아들여졌다. 검찰이 가진 가장 강력한 칼을 스스로 내려놓은 것이기 때문. 조치의 일환으로 서울중앙지검 등 큰 지검은 특수검사 수를 줄였고, 작은 규모의 검찰청(지청 단위)들은 특수검사를 아예 없앴다.
강원도의 한 지청에서 근무 중인 검사는 “원래 검사 4~5명 정도만 있는 작은 지청은 특수부를 따로 두지 않고, 형사부 내의 검사 중 1~2명을 특수 담당 검사를 지정해 지역 내 인지 사건을 수사하도록 했는데 현재는 아예 특수라는 말을 쓰지 않는 실정”이라며 “인지 수사 역시 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문무일 검찰총장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특수부 축소 개혁’이 주춤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특수통’ 출신인 문무일 총장이 ‘수장’이 되면서, 특수통 후배 검사들이 대거 약진했기 때문. 박찬호 서울중앙지검 방위사업수사부 부장검사(사법연수원 26기)가 공안 수사를 지휘하는 서울중앙지검 2차장검사로 임명됐고, KAI 등 특수 수사가 본격화되면서 일각에서는 ‘오히려 특수부가 더 확대되는 것이 아니냐’는 전망까지 나왔다.
이에 대해 대검찰청 검찰개혁위원회 관계자는 “고위 공직자범죄수사처가 만들어지면 자연스레 특수·공안 수사 영역에 배정된 검사를 대폭 줄일 수밖에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서울중앙지검 3차장검사 산하에 특수부만 1부부터 4부까지 4곳이나 있고, 강력부, 방위사업수사부, 공정거래조세조사부 등까지 따지면 부서가 10여 곳에 달한다”며 “통상 특수 수사 타깃 가운데 절반 이상이 국회의원과 같은 정치인이나 공무원, 공기업 임직원이었던 점을 감안할 때 부서를 절반으로 줄여도 이상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는 “(대공·노동·집회를 담당하는) 인지 수사 영역에 달하는 공안부 역시 특수부 못지 않게 비중을 확 줄일 수밖에 없다”고 조심스레 귀띔했는데, 조직 개편 시점은 공수처가 설치된 이후로 맞출 것이라는 게 법조계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9월 1일 시작된 이번 정기국회에서 공수처 법안이 통과되고, 내년 초 설치가 마무리된다면 최순실 게이트(재판 및 추가 수사), 국정원 수사 등이 끝난 시점에 맞춰 검찰이 대규모 개편을 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검찰의 앞선 ‘보수 정권(박근혜·이명박) 죽이기’가 끝난 뒤 자연스레 검찰 힘을 대폭 빼는 그림으로 맞출 가능성도 제기된다. 앞선 검찰 출신 변호사는 “올해 7~8월에 인사를 했으니 1년 뒤인 내년 8월 인사를 통해 조직을 손보는 게 아니라, 최순실 게이트 사건 재판과 이명박 정부 시절 국정원 정치개입 사건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는 내년 3~4월 쯤에 맞춰 검찰의 칼(특수·공안 축소)을 뺏는 그림이 나오지 않냐”고 설명했다.
그는 “지금 검찰은 매번 정부가 바뀔 때마다 되풀이됐던 ‘정권 맞춤용 칼’이 되지 않겠다는 의지가 강하다”며 “공수처가 만들어지면 검찰은 경찰에서 넘긴 형사 사건을 중점적으로 처리하고, 약간의 특수·공안부만 남아 감사원·국세청·국정원 등에서 넘기는 기업·간첩 수사만 하는 모델로 바뀔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이를 위한 전제 조건인 공수처가, 무난하게 국회를 통과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우려감이 적지 않다. 현재 법무·검찰개혁위원회가 내놓은 공수처 신설 권고안이 ‘비현실적’이기 때문. 공수처가 꾸릴 수 있는 최대 검사 규모는 122명에 달한다. 엄청난 인력 규모다. 게다가 현재 검찰이 독점하던 수사와 기소, 공소 유지권까지 가진다. 그야말로 ’막강 권한‘을 지닌 기관이 되는 것이다.
당연히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권고안에서 제시하는 120여 명의 수사 인력 구성이 쉽지 않다. 공수처 검사는 기존 검사 경력자로는 절반 이상 채울 수 없게끔 되어 있고, 퇴직 후 3년간은 다시 검찰로 돌아갈 수 없다. 검찰과 선을 긋기 위한 목적이라지만, 이런 규정 때문에 특별 수사 경험이 풍부한 정예 인력을 꾸리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재경지역의 한 부장검사는 “공수처 신설은 피할 수 없지만, 현재 내놓은 권고안으로는 공수처가 너무 ‘막강’하기 때문에 정권을 뺏긴 야당도, 정권을 뺏길 수도 있는 여당도 부담스러운 부분이 있다”고 내다봤다. 국회에서 세부적인 부분을 놓고 다툴 여지가 많다는 것.
특히 만에 하나 정권이 바뀌기라도 한다면, 언제든 공수처의 수사 대상으로 몰릴 수 있는 여당 역시 부담스럽기는 매한가지라는 지적이다. 실제 국민의당 이용주 의원과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지난해 8월 내놓은 공수처 설치 법안에서는 검사 규모가 최대 20명이다. 권고안의 1/6 수준에 그친다.
정치권과 법조계는 규모와 권한만큼이나, ‘공수처장 인사권’을 누가 갖느냐도 국회 통과 과정에서 쟁점이 될 것이라고 설명한다. 공수처 설치 권고안에 따르면 공수처장은 7명의 위원으로 구성된 추천위원회를 거쳐, 대통령이 지명한다. 대통령이 임명권을 가지는 셈인데, 공수처장은 3년의 임기 동안 자신을 지명한 대통령을 비롯해 고위 공직자들의 범죄에 대한 우선적 수사권도 가진다. 하지만 인사권자에 대한 수사는 쉽지 않다는 점을 감안할 때, 공수처가 제2의 검찰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앞선 부장검사는 “대통령이 직접 임명하지 않는 일개 낮은 자리라고 해도, 요직에 임명되면 대통령의 이름 세 글자를 한 번 더 생각하면 ‘좋은 감정’을 가지게 되는 게 공무원의 마음”이라며 “자신을 임명한 대통령을 비롯, 그 주변을 겨누는 수사를 쉽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공수처장의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을 보장하지 않으면, 정권마다 되풀이되는 ’표적 수사‘ 논란이 다시 불거질 것이라는 지적도 일고 있다. 일각에서는 공수처 규모는 최소화하되, 언제든 사건에 투입할 수 있는 ‘특검’과 같은 구조로 공수처를 꾸려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검사 출신인 구본진 법무법인 로플렉스 대표 변호사는 “기업이 정치인이나 공무원에게 돈을 주고 사업 관련 특혜를 받는 사건이 검찰 특수 수사 사건의 대표적인 범죄 구조인데, 공수처가 고위 공직자에 대한 수사 권한을 다 가지고 가면 검찰이 기업 부분만 수사하고 더 이상 수사하려 하지 않을 것”이라며 “공수처가 사건을 달라고 해도 검찰 입장에서 공들인 수사를 쉽사리 넘길 리가 없지 않나, 검찰 개혁은 꼭 필요하지만, (공수처 권고안으로 설치되는 것은) 손해”라고 지적했다.
그는 그러면서 공수처가 검찰을 긴장시키는 ‘특검’과 같은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본진 변호사는 “검찰은 (최순실 게이트처럼) 국민적 관심이 높은 사건에 대해 국회가 특검 투입을 결정하면 검찰은 어느 때보다 더 열심히 혐의를 찾는데, 이는 검찰이 못 찾은 범죄 혐의를 특검에서 찾아서 기소하면 검찰이 망신을 당하기 때문”이라며 “검찰도 기존처럼 계속 고위 공직자에 대한 수사를 할 수 있게 해주되, 공수처와 서로 경쟁하는 모델로 가야지만 더 확실하게 범죄를 처벌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서환한 기자 brigh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