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만 열린다면, 이 지점은 호남 적자 경쟁에 나선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의 운명을 가를 분기점이다. ‘6년째 악연’ 문재인 대통령과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영원한 맞수로 가느냐, 전략적 연대로 가느냐’의 갈림길인 셈이다. ‘맞짱 승부’의 독립변수는 문 대통령, 종속변수는 안 대표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9월 18일 오전 여의도 국회 당대표실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박은숙 기자
이번 추석민심은 호남발 정계개편 위력을 판단하는 ‘리트머스 시험지’다. 민주당과 국민의당 호남계가 추석 민심을 보고 정계개편의 전략·전술을 짤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호남 바닥 민심이 통합을 원하면, 호남계 일부가 이탈할 수도 있다.
반대의 경우 호남은 당분간 양당 분열체제로 갈 가능성이 크다. 이는 안철수 호 출범 이후 ‘자강론’으로 선회한 국민의당이 밑바닥 조직력을 앞세워 호남 삼각편대를 조기에 띄워야 한다는 주장과 맥을 같이한다.
국민의당의 호남 삼각편대 후보군에는 광주시장 박주선·김동철, 전남지사 주승용, 전북지사 유성엽·조배숙 의원 등이 포진했다. 민주당 광주 후보군인 윤장현 광주시장·이용섭 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강기정 전 의원·양향자 최고위원·민형배 광산구청장·이형석 광주시당위원장, 전남지사 후보군인 이개호 의원·장만채 전남도교육감, 전북지사 후보군인 송하진 전북지사·김춘진 전북도당위원장 등과 비교해도 조직력 면에서는 크게 떨어지지 않는다.
한때 국민의당 호남계 내부에선 민주당과의 통합 주장이 힘을 얻었다. 국민의당 제보 조작 사건 이후 ‘안철수 등판론’이 불거지기 전까지다. 하지만 극중주의를 표방한 안 대표의 등장으로 민주당과의 통합 가능성은 일시에 사그라졌다. 대신 바른정당 등 중도정치세력 통합 쪽으로 전선이 옮겨 붙었다.
문제는 그 이후다. 호남계 의원들의 마지막 동아줄이던 민주당행이 여의치 않게 되면서 ‘지방선거 패배론’이 당 안팎을 옭아맸다. 국민의당 한 의원은 “내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이 서울시장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 경기 이재명 성남시장, 광주 이용섭 부위원장, 부산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 등을 포진한다면 판을 뒤집을 재간이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민주당의 호남풍·동남풍의 수도권 상륙 작전으로 국민의당 승리 전략이 ‘원천 봉쇄’ 당할 수 있다는 얘기다. 여기에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군에는 3선 도전에 나서는 박원순 서울시장을 비롯해 전병헌 청와대 정무수석, 추미애 민주당 대표, 박영선 의원 등 그야말로 ‘별들의 전쟁터’다.
‘지방선거 패배론’이 수면 위로 떠오른 이후 국민의당 내부에선 호남 삼각편대를 띄워도 ‘1곳(전남) 백중우세-2곳(광주·전북) 백중열세’로 전망하는 의원들이 많아졌다. 민주당 후보군 중 가장 약한 전남 정도만 해볼 만하다는 것이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문재인 정부의 실세인 이용섭 부위원장과 범주류인 강 의원이 버티고 있는 광주나, 현역 도지사 등이 있는 전북은 쉽지 않은 승부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호남의 삼각편대만큼은 ‘우세’를 보일 것이란 반론도 만만치 않다. 10여 년간 ‘터’를 닦은 국민의당 의원들의 내공 때문이다. 3선의 김동철·유성엽, 4선의 박주선·조배숙·주승용 의원 등의 선수만 합쳐도 20선 가까이 된다. 유 의원의 경우 2008년과 2012년 총선에서 무소속으로 2번이나 당선된 바 있다. 2008년 총선 득표율은 61.0%로 민주당 후보를 압도했다. 지난해 4·13 총선에서는 48.0%로 당선됐다. 인물 구도 면에서는 민주당 후보군에 뒤처지지 않는다.
변수는 호남발 정계개편의 고차방정식이다. 호남 정계개편의 독립변수는 민주당이다. 국민의당은 민주당 스탠스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는 ‘종속변수’다. 국민의당 호남계가 민주당행이나 통합 등을 원한다고 성사되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전계완 정치평론가는 “호남 정계개편의 필요조건은 문 대통령의 지지도 하락 등 문재인 정부의 위기”라며 “호남계 연대 등 충분조건의 환경이 갖춰진다고 해도 민주당이 (국민의당을) 받겠다고 하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9월 정국 들어 문 대통령 지지도는 하락세다. 일부 여론조사에서는 70% 벽이 무너졌다. 역대 대통령과 비교하면 여전히 높은 지지도이지만, 문제는 추세다. 북핵 위기론과 인사 참사 등 내·외치가 동시에 위기에 빠지면서 문재인 정부의 국정동력도 다소 떨어진 모양새다. 특히 문 대통령의 지지도 하락이 ‘시간 갭’에 따른 착시효과 현상이 꺼지는 시점과 맞물리면서 위기론이 지속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문 대통령이 당선과 동시에 취임한 만큼, 역대 대통령 대비 지지도 하락 시차 간격이 넓다는 것이다. 이는 지지도 하락이 단발성 현상보다는 거품론에 가깝다는 주장과 맥을 같이한다.
관전 포인트는 호남발 정계개편의 필요조건인 문 대통령 지지도 급락이 내년도 6·13 지방선거 전에 발발하느냐다. 이 지점이 호남발 정계개편의 문을 여는 1차 분수령이다. 이 방정식이 풀리지 않으면 호남발 정계개편은 국민의당의 ‘희망고문’, ‘짝사랑’으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
민주당 한 보좌관은 “당 내부에서는 국민의당 의원들을 받아들이면 해묵은 갈등인 ‘친문’ vs ‘비문’의 극한 분열로 치닫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있는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보수 야당 관계자도 “판을 흔들 만한 변수가 없는 한 민주당 압승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민주당이 한때 계륵이었던 반문 호남파를 껴안겠느냐”라고 부정적으로 전망했다.
당·청의 국정동력이 급속히 하락해도 국민의당이 정국 주도권을 잡을지도 미지수다. 전계완 평론가는 “문 대통령과 민주당이 자책골을 넣어도 민주당 내 비문(비문재인)계가 정국을 주도하지, 국민의당이 주도할 가능성은 없다”며 “민주당 내 차세대 비문계가 얼마나 많으냐. 그만큼 민주당 손에 카드가 많은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내 차세대 비문계는 지난 대선 경선에서 문 대통령과 맞붙었던 박원순 서울시장, 안희정 충남도지사, 이재명 성남시장 등을 지칭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자 ‘자강론 플랜 B’의 불씨도 서서히 달아오르고 있다. 국민의당 비호남계를 중심으로 이 같은 안에 동조하는 의원들이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플랜의 핵심은 ‘내년 지방선거에서 호남 일부 등 승리로 당 유지→21대 총선 전 선거법 개정→총선 때 40석 이상 유지’다. 원내 한 관계자는 “민주당이 선거법 개정에만 나서준다면, 정부 중점법안 처리 등에 협조하지 않을 수 없다”고 귀띔했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