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 옥살이를 했던 김 아무개 씨(71)의 호소다. 현재 칠순을 넘은 김 씨는 60대 후반 나이에 6개월간 옥살이를 했다. 그는 우연히 만난 사람들과 속칭 ‘스리섬’을 즐기다 감옥까지 가게 됐다. 김 씨는 법원 판결에 따라 무죄로 나왔지만 감옥에서의 고통은 쉽게 잊을 수 없다. 그의 사연을 알기 위해선 5년 전인 2012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노인은 억울하게 옥살이를 해야 했다. 위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습니다.
법원 판결문에 따르면 김 씨는 부동산 일을 하며 2012년 박 아무개 씨(50)와 그의 부인 김 아무개 씨(50)를 만나게 된다. 김 씨는 이들 부부와 부쩍 가까워졌고 2012년 2월부터 3월까지 부부의 집에서 숙식을 하게 된다. 김 씨는 “우연히 같이 찜질방을 갔는데 아내인 김 씨가 먼저 접근해 유혹했다. 같이 성관계를 맺자고 해서 가까워졌고 아예 집에서 살게 됐다”고 말했다. 그렇게 50대 부부와 약 스무 살 터울의 김 씨가 관계를 맺기 시작했다.
이렇게 시작된 ‘스리섬’은 약 한 달간 이어졌다. 기간이 길어지면서 점점 농도도 짙어졌다. 김 씨가 아내와 관계를 맺을 때, 남편이 아내와 관계를 맺을 때 서로를 촬영해주기도 했다.
문제는 한 달 후 터졌다. 같은 해 3월 이들 부부가 김 씨를 강간죄로 고소했기 때문이다. 부부는 서로 즐긴 게 아니라, 김 씨의 협박에 못 이겨 강간당했다고 주장했다. 김 씨는 경찰 조사 단계에서부터 “당신 20년은 감옥에서 살 것”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였다. 김 씨는 곧 구속됐고 검찰이 기소해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이 기소한 죄목은 ‘성폭력범죄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으로 특수강간, 카메라 등 이용 촬영, 강요, 강간 등의 죄목이었다. 이때부터 김 씨의 옥살이가 시작됐다.
그는 이들 부부와 사이가 틀어진 계기를 같이 하던 부동산업에서 찾는다. 김 씨는 “좋은 부동산을 찾았는데 서로 부르는 값이 안 맞아 자신을 곤경에 처하게 만들었다”고 설명한다. 판결문에 따르면 김 씨와 박 씨 부부는 부동산 매매정보를 교환했고, 좋은 땅을 찾으러 지방을 둘러보기도 했다는 점, 김 씨와 박 씨 부부가 자주 만나 가깝게 지내며 자신들 집에서 머물도록 호의를 베푼 점 등은 사실로 드러난다.
박 씨 부부는 “(김 씨가) 다 죽여버린다. 내가 누군지 알고 대드느냐. 내가 전국구 깡패 출신이다”라면서 협박했고 식칼을 꺼내 휘두르며 난동을 피워 겁을 먹었다고 진술했다. 박 씨 부부는 그때부터 김 씨 말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한다. 수사와 재판 초기에는 두 부부의 주장대로 흘러갔다.
아내의 증언이 있었고, 김 씨와 박 씨 부부가 성관계를 맺는 사진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피해자인 두 부부는 6개월 후 협의이혼 신고를 했다. 강간 피해자로서 충격을 받았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특히 재판부와 검찰은 김 씨의 억울하다는 주장을 믿기 어렵다고 봤다. 알고 지낸 지 얼마 되지 않고 나이 차도 많은 50세 여성이 67세 남성과 한 달여에 걸쳐 합의 하에 지속적으로 성관계를 가져왔다는 주장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봤다. 또한 피해자인 두 부부의 협의이혼 신고도 결정적이었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박 씨 부부의 말이 앞뒤가 맞지 않거나 사실로 보기에는 믿기 어려운 증언과 증거들이 나오면서 상황은 반전되기 시작했다. 김 씨와 두 부부가 2012년 2월부터 3월까지 한 달이 넘게 머물면서 충남 당진, 경기도 양평, 경기도 광주시 등에 땅을 보러 같이 돌아다녔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부부의 남편이 관련된 민형사 사건의 변호사 선임을 위해 서울, 인천 등지에 있는 법원과 변호사 사무실에 다녀온 행적도 나타났다. 재판부는 만약 정말 강간을 당하고 있었다면 이때 충분히 신고할 수 있었는데 그렇지 않은 점을 의심스럽게 봤다.
전국구 깡패라고 주장했던 김 씨가 폭력으로 중하게 처벌받은 적도 없고 범죄 단체에 관련됐다고 보기도 힘든 점이나 당시 70에 가까운 노인의 협박에 극심한 두려움을 느꼈다는 점도 부부 주장의 신빙성을 떨어트렸다. 신고 시점이 함께하기로 한 부동산 중개 신뢰가 깨진 직후였다는 점도 미심쩍었다.
부부의 휴대전화도 중요한 증거가 됐다. 부부의 주장과 달리 부부는 한 달간 수도권 일대를 돌아다니며 자유롭게 생활했음을 알 수 있다. 김 씨가 이들 부부를 따라다니며 감시했다고는 보기 어려웠다.
강간한 횟수도 부부의 말이 서로 달랐고 터무니없이 많았다. 부부는 김 씨가 매일 아침, 저녁으로 한 달간 62회 강간했다고 주장했다. 70세가 가까워오는 노인이 과연 그럴 수 있는지도 의문이었다.
김 씨는 6개월간 옥살이를 이어가다 2012년 10월 보석을 허가 받고 출소한다. 500만 원을 보증금으로 내고 출소해 재판을 이어갔다.
결국 2013년 11월 그는 무죄를 선고받았다. 억울한 옥살이의 대가로 약 1200만 원을 받았다. 하지만 그 돈으로는 강간범으로 몰려 얻게 된 수치심과 옥살이의 고통 등을 치유할 수 없었다. 김 씨는 “하긴 했습니다. 서로 즐겼어요. 하지만 그게 죄는 아니잖아요”라고 호소했다.
대법원에서도 무죄를 받아낸 그는 2016년 무고죄로 남편과 아내를 고소한다. 하지만 무고죄는 증거불충분으로 불기소됐다. 당시 검찰은 불기소 이유로 ‘김 씨가 남편이 당시 성기확대수술 부작용으로 관계가 어려워 합의하에 세 명이서 관계를 가졌다고 했다. 하지만 남편인 박 씨의 2년치 건강보험요양내역을 확인해 본 결과 성기 확대 수술과 관련된 의료기록이 없어 김 씨의 주장이 신빙성 없다고 본다“고 통지했다.
결국 무고죄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는 아직도 억울한 마음에 법정에서 받은 문서, 검찰에서 통보 받은 통지서, 사건 기록 등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