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공모전의 최종심사에는 김형남 재담미디어 기획이사, 이종규 작가, 이현세 심사위원장, 최원영 서울문화사 상무(왼쪽부터)가 참여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지난 8월 9일 1차 심사에서 대상 서바이벌 진출작으로 선정됐던 10작품 가운데 총 5작품이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지난 9월 26일 일요신문 회의실에서 진행된 최종 심사에는 심사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현세 작가를 비롯 최원영 서울문화사 상무, 김형남 재담미디어 기획이사, 이종규 작가가 참여했다.
영예의 대상(상금 3000만 원)에는 이동화·정상훈 작가의 <보일러>가 선정됐다. 금상(상금 1000만 원)에는 황기홍 작가의 <기생 추월>이 최종 선정됐다. 상금 500만 원이 수여되는 우수상에는 공종철·현수철 작가의 <낫 아웃(Not Out)>, 키위홀 작가의 <마왕동 용사1번지>, 성용제·김현찬 작가의 <불가살이>(가나다 순)가 선정됐다. 각 수상자들의 수상소감과 최종심 심사평을 싣는다.
# 대상 <보일러> 이동화·정상훈 “만화·웹툰이 콘텐츠 대표하는 시대 오길”
이동화, 정상훈 작가와 대상 수상작 ‘보일러’.
스토리를 담당한 이동화 작가는 “<보일러>는 오래 전에 만화를 만화방, 즉 대본소에서 보던 분들을 위해 기획한 만화”라며 “자욱한 열기와 집중이 은은하게 깔려있던 그 분위기의 만화를 다시 한 번 보고 싶다는 생각에 스토리와 연출을 신경 써 모양을 잡았다”고 말했다.
그림을 담당한 정상훈 작가는 올해 만화를 위해 모든 것을 던졌다. 정 작가는 “올해가 시작하면서 잘 다니던 직장도 그만두고 만화를 그려야겠다고 결심했다”라면서도 “그런데 웹툰은 이번이 처음이라 어려움이 많았다”고 말했다. 지면 만화 형식에 익숙했던 그에게 웹툰 방식의 작품 제작은 컷을 배분하고 콘티를 짜는 것부터 벽에 부딪치기 일쑤였다.
그런 그에게 큰 도움이 돼 줬던 것은 은사님들의 조언이었다. 정 작가는 “학부시절 교수님들이 가르쳐주신 ‘콘티를 자연스럽게 짜는 법’ ‘천재를 이기는 법’ ‘만화가의 마음가짐’ 등이 힘이 됐다”고 설명했다.
이른바 ‘만화방 세대’인 이들 작가는 옛날 그 시대처럼 만화가 문화 콘텐츠의 변방을 넘어서 대표로 자리매김하기 바란다고 말했다. 정 작가는 “저 역시 이현세, 허영만, 장태산, 이재학 등 많은 선생님들의 작품을 보고 자랐다”라며 “앞으로 또 만화나 웹툰이 다양한 콘텐츠를 대표하는 시대가 오길 바라고, 그 시대의 언저리에서 <보일러>도 일조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 금상 <기생 추월> 황기홍 “아내 꿈에 등장한 고래, 내 수상 예견했나”
황기홍 작가와 금상 수상작 ‘기생 추월’.
2000년에 만화계에 입문한 황기홍 작가는 일요신문 만화공모전이 낯설지 않은 작가다. 지난 4회에서 그의 <서른 즈음에>가 우수상을 수상했고, 이후 지난해까지 <서른 즈음에>와 <콤비>를 일요신문에 인기리에 연재했다.
3년을 건너뛰고 이번 7회 일요신문 만화공모전에서 황 작가의 작품 <기생 추월>은 한 단계 더 높은 금상을 수상했다.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퓨전 사극을 표방하는 <기생 추월>은 주인공인 추월과 활빈당 무리들이 부패하고 부조리한 사회에 맞서 싸우는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일반적으로 여성 캐릭터가 다소 수동적인 성격을 갖는 한국 만화계에서 황 작가의 <기생 추월> 속 추월은 팜 파탈이면서,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는 씩씩한 ‘캔디’이자 용감한 ‘원더우먼’으로 활약한다. 황 작가는 ”<기생 추월>을 통해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는 과연 공정하고 평등한지, 부패한 권력과 억압받는 민중은 없는지, 수백 년 전 살아왔던 그들에게도 유효한 질문을 지금 현재 다시 한 번 던질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 우수상 <낫 아웃> 공종철·현수철 “열정적인 사회인 야구단 통해 삶의 의미 재발견”
공종철, 현수철 작가와 우수상 수상작 ‘낫 아웃’.
이 같은 스포츠 만화의 한계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공종철·현수철 작가는 스포츠라는 장르에 ‘인생’을 덧씌워 ‘스포츠 드라마’로 스펙트럼을 넓혔다. 작품 <낫 아웃>은 스포츠 만화에서도 인기 있는 소재인 야구를 다루고 있다. 그런데 주인공들은 어린 청춘들이 아니라 피곤에 절어 하루하루를 겨우 버티고 있는 사회인들이다.
회사와 가정에서는 풀죽은 파김치처럼 움츠린 채로 살지만 일요일 그라운드에서만큼은 이들도 치열해진다. 어린 시절의 꿈과 열정에 파묻혀 프로보다 더 간절히 야구를 사랑하는 사회인 야구선수들을 통해 현대 사회에서 지치고 소외된 남자들의 모습을 그리고 싶다는 게 작가들의 이야기다.
두 작가는 “야구라는 소재를 가지고 삶의 의미를 여기저기서 발굴해 보고자 하는 초심을 간직한 채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펼치고자 한다”라며 “최초의 독자인 심사위원들의 격려를 뒤로하고 이제는 작품의 가치를 독자, 대중들 앞에서 증명할 것”이라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 우수상 <마왕동 용사1번지> 키위홀 ”어릴 적 향수 밴 ‘클리셰’ 소재에 젠더 의식 가미“
우수상 수상작 ‘마왕동 용사1번지’.
닉네임 ‘키위홀’ 작가는 소재를 선택하게 된 계기에 대해 “어릴 적의 향수가 가장 큰 영향을 줬다”라고 말했다. 어린 시절 즐겨했던 게임에서 접하게 된 소재를 작품 콘셉트에도 자연스럽게 사용하게 됐다는 것이다. 실제로 <마왕동 용사1번지>는 기존의 게임이나 만화, 애니메이션에서 자주 사용된 ‘마왕과 용사’, 그리고 그들의 대립이라는 클리셰를 소재로 한다.
다소 일반적이고 정형화된 소재이기 때문에 신선함은 떨어질 수 있다. 그러나 이를 반대로 본다면 그만큼 독자들이 쉽게 이해하고 빠지기 좋다는 얘기가 된다. 별다른 복잡한 세계관을 설정하거나 부연 설명이 없어도 독자들은 연재 속도에 맞춰 작품을 따라갈 수 있기 때문이다.
키위홀 작가는 “사회통념에 의해 고착된 젠더의식을 가지고 있는 저부터 조금씩 생각을 바꾸는 방향으로 작품을 진행하려고 한다”라며 “주인공과 스쳐지나갈 뿐인 주변 인물들의 직업과 역할 등에 있어서도 스스로부터 바뀌자는 자세로 작업에 임하고 싶다”고 앞으로의 활동 의지를 밝혔다.
# 우수상 <불가살이> 성용제·김현찬 작가 “아픈 손가락 같은 작품, 빛 보게 돼 기뻐”
성용제 작가와 우수상 수상작 ‘불가살이’.
그 후로 5년간 묵혀있던 원고를 꺼내들게 된 것은 올해 봄의 일이었다. 성용제 작가는 글 작가인 김현찬 작가와 낮술을 마시던 중 술기운에 의기투합하게 됐다. 작가들의 ‘아픈 손가락’이었던 <불가살이>에 약간의 스토리 수정을 거치고, 최근 떠오르는 사회적 이슈를 접목시켰다.
<불가살이>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들며 모든 사람들이 네트워크로 연결돼 있는 ‘SNS 시대’에 경종을 울리는 작품이다. 진위 여부와 상관없이 자극적인 이야기를 퍼뜨리는 SNS와 타인의 아픔을 가십거리 정도로만 치부하는 이들의 폐단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를 실제 사건을 통해 경고하고 있다.
두 작가는 “대중들이 사회적으로 높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이슈들과 휘발성이 강한 콘텐츠, 그리고 이런 것들이 확대재생산되면서 괴담이 돼 가는 과정, 그리고 그 속에는 우리들이 있다는 메시지를 던지고자 한다”라고 작품의 방향에 대해 설명했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
[심사평] ”천편일률 소재 넘어 다양한 장르 보게 돼 고무적“ 일요신문 만화공모전은 만화계에서 또 다른 의미를 갖는다. 언론사가 주관하는 만화공모전인 만큼 폭넓은 연령대와 소재를 가진 작품들을 발굴하고 육성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올해 역시 일요신문 만화공모전의 취지에 맞는 작품들을 선정했다는 점에서 심사위원들은 큰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고무적인 것은 최근 몇 해 동안 출품작들의 경향이 다소 특정 장르에 편향되는 모습을 보였던 것과 달리 올해에는 다양한 장르와 소재의 작품들을 볼 수 있었다는 점이다. 심사위원단을 대표해 심사평을 작성한 이종규 작가.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글을 담당한 이동화 작가는 치밀한 캐릭터 분석력과 박력 있게 이야기를 끌고 가는 필력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작가의 재능에 큰 기대를 갖게 한다. 다만 이야기 전개에 불필요한 설명과 개그 요소들이 극적 몰입을 방해하고 있는 부분이 아쉽게 느껴진다. 그림을 그린 정상훈 작가의 경우 다소 거칠지만 힘 있는 데생으로 볼 때 충분한 연습을 통해 단단히 다듬어진 그림체임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향후 발전 가능성에 대해 상당한 확신을 할 수 있을 만큼 작화에 기본적인 장점을 갖고 있다. 그러나 주인공을 비롯한 주요 캐릭터의 이미지 완성도가 떨어지는 점은 큰 단점으로 지적할 수 있다. 좀 더 보편적이면서 매력 있는 캐릭터가 될 수 있도록 보완이 필요할 듯하다. 정치와 부패한 권력, 그에 대항하는 정의, 우정과 성공이라는 <보일러>의 키워드는 다소 진부할 수도 있지만 언제나 가치 있는 주제와 공감 가능한 감성들을 담고 있다. 그리고 이런 가치와 감성은 20대 이상의 독자층에게 크게 어필할 수 있는 요소다. <보일러>는 이를 잘 표현한 수작이다. 금상을 수상한 <기생 추월>은 시대극을 작가의 독특한 감성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특히 감각적인 대사와 표현력이 우수한 작품으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 <기생 추월>은 고전에로작품 특유의 감성과 해학을 현재의 독자들이 받아들이기 편한 연출과 대사로 잘 전달하고 있다. 아주 익숙한 전개임에도 불구하고 몰입하게 만드는 흡인력을 갖춘 작품으로 그 바탕에는 작가의 안정적인 작화능력과 연출력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예상 가능한 소재와 전개는 향후 연재 시 작가에게 큰 숙제가 될 것이다.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 매력적인 캐릭터를 구축하는 것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우수상에 선정된 세 작품 <마왕동 용사1번지>, <낫아웃>, <불가살이>는 각각 매력적인 요소를 갖추고 있으나 몇 가지 아쉬운 점이 눈에 띈다. 먼저 <마왕동 용사1번지>의 경우 최근 트렌드에 잘 맞는 판타지와 현실의 경계를 넘나드는 로맨틱 코미디 장르로 정감 있는 작화와 아기자기한 장면이 즐거움을 주는 작품이다. 그러나 이런 장점에도 불구하고 다소 모호한 작품의 대상연령, 배경과 컬러배색 등의 미숙함, 아직까지 잘 다듬어지지 않은 캐릭터 표현 등에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장면을 거듭할수록 안정감이 생기는 작화는 이후 작가의 발전가능성에 큰 기대를 걸게 한다. <불가살이>는 독특한 소재와 발상이 인상적인 작품으로 이야기의 흡인력이 우수한 작품으로 평가받았다. 작화 역시 안정감과 함께 작가의 개성이 잘 드러난다. 다만 가독성이 떨어지는 어지러운 연출과 불필요한 대사들이 극의 재미를 떨어뜨리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작화에 있어서도 조금 더 세련된 인물 묘사가 필요해 보인다. 마지막 작품 <낫 아웃>은 최근 국내 만화계에 보기 드문 스포츠물이라는 점에서 우선 반갑다. 사회인 야구라는 소재 자체가 갖는 기대감도 좋은 평가에 한몫을 한다. 한 컷 한 컷 공들인 작화에서 작가의 작품에 대한 애정이 느껴진다. 이번 수상작 중 가장 높은 작화 퀄리티를 보여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하지만 작가의 정성과는 반대로 지나치게 디테일에 집착하는 극의 전개는 이야기의 흥미를 떨어뜨리는 단점으로 작용한다. 느린 사건 전개와 장면의 연출이 이야기의 맥락을 잡을 수 없게 만들어 아쉬움이 남는다. 전반적으로 좋은 작품들을 만날 수 있어 보람과 즐거움을 느낀 심사였다. 비록 수상을 하지 못했지만 본선에 오른 작품들 모두 각각의 매력을 가진 작품들이었고, 수상한 작품들 역시 우열을 가리기 힘들 만큼 장점이 뚜렷한 작품들이었다. 좋은 작품들을 응모해준 작가분들께 감사를 전하고, 수상자들에게 축하를 전한다. 마지막으로 만화인의 한 사람으로 언제나 한결같은 지원을 해주고 있는 일요신문에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글=이종규 작가, 정리=김태원 기자 deja@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