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트리퍼에서 시나리오 작가로 성공을 거둔 디아블로 코디. 그녀의 남다른 과거가 오히려 뜻밖의 행운을 가져온 셈이다. | ||
그녀의 본명은 브룩 버지 헌트. ‘디아블로 코디’라는 다소 특이한 필명은 그녀가 스트리퍼로서의 경험담을 적은 자신의 블로그에 사용했던 이름이다. ‘디아블로’는 스페인어로 ‘악마’라는 뜻이며, ‘코디’는 와이오밍의 한 작은 마을 이름이다. 자동차를 타고 코디를 여행할 때 마침 라디오에서 ‘엘 디아블로’라는 노래가 나왔고, 훗날 당시의 추억을 바탕으로 이와 같은 예명을 지었던 것.
독실한 가톨릭 집안에서 자란 그녀가 스트리퍼가 된 이유는 의외로 단순했다. 그저 ‘무료하고 심심해서’였다. 아이오와 대학에서 미디어를 전공한 후 광고회사에서 비서로 근무하고 있던 코디는 어느 날 ‘스카이웨이 라운지’라는 스트립 클럽에서 아마추어 댄스 경연대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접했다. 호기심이 발동한 그녀는 곧 대회에 참가하기로 마음 먹었다.
비록 우승은 못했지만 그녀는 스트립 댄스에 재미를 느꼈고, 그후 밤마다 클럽을 돌아다니면서 스트리퍼로 일했다. ‘봉봉’ ‘록산느’ ‘체리쉬’ 등의 예명을 사용했던 그녀는 1년 후에는 아예 비서일을 그만두고 스트리퍼로 직업을 바꿨다. 하지만 얼마 안 가 스트리퍼 생활에 염증을 느낀 그녀는 한때 폰섹스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싫증을 느끼고는 완전히 그 바닥에서 발을 뗐다.
그녀는 스트리퍼로 일하던 당시에도 이미 지역신문인 <시티 페이지>에 글을 기고할 정도로 글 솜씨를 뽐내고 있었다. 당시 그녀의 원고를 담당했던 마이클 토르토렐로는 “코디의 글은 솔직함과 기교가 적당히 잘 어우러져 있다. 마치 샴페인의 코르크 마개를 따면 샴페인이 콸콸 넘쳐 흐르는 것과 같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사실 그녀가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블로그를 통해서였다. 말 그대로 전형적인 ‘블로그 스타’였던 것. 그녀의 ‘블로그 이력’은 200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사람들이 블로그를 전혀 모르고 있던 당시 그녀는 ‘붉은 비서’라는 제목의 블로그를 운영했다. 비서였던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가상의 인물인 여비서의 이야기를 상상으로 써 내려간 블로그였다. 독자라고는 가끔씩 들러서 읽는 가족들이 전부였다.
스트리퍼로 일하기 시작하면서 그녀는 동시에 또 다른 새로운 블로그를 오픈했다. 이번에는 스트리퍼로서의 경험담을 솔직하게 적어놓은 블로그였다. 제목부터 ‘음부 목장(The Pussy Ranch)’일 정도로 내용도 은밀하고 외설적이었다. 처음에는 찾는 사람이 거의 없는 평범한 블로그였지만 그녀가 ‘스카이웨이 라운지’의 아마추어 대회에 나간 경험담을 올리기 시작하자 곧 방문객이 폭주하기 시작했다. 그후 그녀가 자신의 생생한 스트리퍼 경험담을 하나 둘 올리자 사이트는 대박을 터뜨렸다. 하루 평균 5000명의 사람들이 그녀의 블로그를 방문했으며, 대부분은 그녀의 은밀한 이야기를 훔쳐 보는 데 희열을 느꼈다.
▲ 스트리퍼 경험담을 적은 디아블로 코디의 인기 블로그. | ||
또한 그녀의 블로그에는 남의 이목은 신경 안 쓰는 막무가내식의 그녀의 사생활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어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방문객들에게 섹스 토이를 추천하거나 성적인 취향도 거리낌 없이 적어 놓았다.
그러던 중에 그녀에게 뜻밖의 행운이 찾아왔다. 할리우드의 영화제작자인 메이슨 노빅이 인터넷에서 포르노 관련 사이트를 검색하다가 우연히 그녀의 블로그를 발견했던 것이다. 재기발랄하고 톡톡 튀는 글에 매료된 노빅은 금세 코디의 팬이 되었다. 그는 “코디가 훌륭한 이유는 고리타분한 할리우드 스타일이 아니라는 데 있다”고 서슴없이 말한다.
노빅은 그녀에게 시나리오 작가가 될 것을 권했고, 블로그의 글을 모아 책을 출간하도록 용기를 북돋웠다. 결국 그녀는 노빅의 도움으로 2005년 <캔디걸: 스트리퍼로 살아온 1년>이라는 제목의 자서전적 소설을 발간했으며, 이 책은 곧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책이 성공하자 자신감을 얻은 코디는 6개월 만에 스타벅스 커피숍에 앉아 시나리오를 쓴 끝에 <주노>를 완성했다.
하지만 화려한 성공의 이면에는 비난과 질투도 있었다.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열광했던 사람들이 이내 그녀의 과거를 파고 들면서 따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 대해 그녀는 “스트리퍼 경험이 나를 강하게 만들긴 했지만 오히려 작가로서 대중 앞에 서는 것이 이보다 더 혹독하고 냉엄하다”고 토로했다.
김미영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