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으로서는 생존 문제와 직결돼 있는 선거다. 참패할 경우 합당 요구가 공식화되거나 대규모 탈당 사태로 이어질 수도 있다. 내년 지방선거는 우리나라의 정치 지형을 어떻게 변화시킬까. 권역별로 지방선거가 가지는 의미를 살펴봤다.
지난 2014년 지방선거에서 시민들이 투표를 하고 있다. 구윤성 기자
# 영남, 보수진영 부활하나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보수 진영은 궤멸 직전 상황까지 몰렸다. 9월 22일 <한국갤럽>이 발표한 9월 셋째주 정기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한국당) 지지율은 11%에 그쳤다. 같은 보수야당인 바른정당(6%)과 합쳐도 20%에 못 미친다. 반면 여당인 더불어민주당(민주당) 지지율은 47%에 달했다. (이번 조사는 9월 19~21일 사흘간 전국 만 19세 이상 남녀 1003명을 대상으로 휴대전화 RDD 표본 프레임에서 무작위 추출(집전화 RDD 15% 포함)해 전화조사원 인터뷰 방식으로 실시했다. 표본오차는 ±3.1%포인트(95% 신뢰수준)였으며 응답률은 17%였다. 보다 자세한 사항은 한국갤럽 또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된다)
보수 진영에서는 이대로 내년 지방선거를 치를 경우 영남 텃밭마저 뺏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한국당의 한 관계자는 “상상하기도 싫은 시나리오”라며 “영남마저 뺏긴다면 다른 지역 선거는 볼 필요도 없지 않겠나. 홍준표 당 대표는 당연히 대표직에서 물러나야 하고 정치적으로 재기가 어려울 정도로 큰 타격을 입을 것이다. 한국당은 패닉 상태에 빠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반대로 한국당과 바른정당이 영남에서 좋은 성적으로 거둘 경우 보수진영 부활의 신호탄이 될 수도 있다. 정치권이 내년 지방선거에서 영남을 주목하는 이유다.
영남권에서는 대구에서 이변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대구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이지만 민주당 소속 김부겸 행정자치부 장관이 대구시장에 출마할 경우 돌풍이 예상된다. <경북일보>가 여론조사 기관인 폴스미스리서치에 의뢰해 대구·경북지역 만 19세 이상 성인남녀 1990명을 대상(95%신뢰수준에 표본오차 ± 2,2%)으로 9월 21일~22일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김부겸 장관(27.2%)이 한국당 소속 권영진 대구시장(22.3%)을 따돌리고 1위를 차지했다. 뒤를 이어 이재만 한국당 최고위원(7.7%), 홍의락 민주당 의원(7.2%), 이재용 전 환경부 장관(7.1%) 순이었다. (조사방법: 자동응답전화면접조사 (600회선 사용), 표집방법: 지역/성/연령별 할당 후 유선 RDD방식 표집, 응답율:2.4%, 오차 보정방법: 지역/성/연령별 인구비례 가중치 분석. 보다 자세한 사항은 한국갤럽 또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된다)
최근 김 장관의 대구 수성갑 사무소는 높아진 인기를 반영하듯 전국에서 민원인이 몰려들어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김 장관은 지난 8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대구시장에 출마하는 것은 시민들한테 욕먹을 짓”이라며 “대구시장에 출마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경남지사 선거에서는 문재인 대통령과 각별한 사이인 김경수 민주당 의원과 공민배 전 창원시장이 한국당 아성에 도전할 유력 후보다. 김 의원은 문 대통령의 복심으로 불리는 인물이고, 공 전 시장은 문 대통령의 고등학교 후배다. 그런데 김 의원도 “국회의원에 당선된 지 2년도 안 됐는데 도지사에 출마하는 것은 정치적 도의에 어긋나는 행동”이라며 출마에 부정적이다.
유력 후보인 김 장관과 김 의원 모두 내년 지방선거 출마에 부정적인 입장이지만 문재인 정부 성공을 위해 반 강제적으로 차출당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민주당이 영남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다면 현재 여당에 대한 딴지 걸기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야당이 더 이상 딴지 걸기만으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라며 “문재인 정부의 국정운영이 훨씬 수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홍준표 한국당 대표는 내년 영남 지역 선거에 대해 자신감을 나타내고 있다. 영남권의 지지층 결집 현상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갤럽 여론조사에 따르면 8월 넷째 주부터 9월 첫째 주까지 부울경(부산, 울산, 경남) 지역 한국당 지지율은 11%→16%→18%로 상승세가 확연하게 나타났다. 같은 시기 한국당의 전국 지지율은 2%가량 오르는 데 그쳤다. 한국당의 안보 프레임과 영남 소외론 프레임이 영남권 유권자들에게 먹혀들고 있다는 평가다.
때문에 민주당 내에서도 현재 지지율이 높다고 해서 보수텃밭인 영남에 섣불리 현역 의원들을 차출했다가 의석만 잃게 되는 최악의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앞서의 한국당 관계자는 “영남 선거는 한 마디로 이겨야 본전”이라며 “지면 큰일이지만 이겨도 정치적 업적이라고 내세우지는 못할 일이다. 분명한 것은 과거처럼 보수 진영이 영남에서 무혈 입성하기는 불가능해졌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 호남, 적자싸움 치열
호남 지역 지방선거 결과는 국민의당 존립과 직결된다. 국민의당 의원 수는 총 40명이다. 이중 지난 총선에서 호남을 제외한 지역구에서 당선된 의원은 단 2명이다. 그런데 호남 민심이 국민의당에 등을 돌리고 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CBS>의뢰로 실시해 9월 18일 공개한 정당 지지도에 따르면, 민주당은 호남에서 62.3%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반면 국민의당 호남 지지율은 13.0%에 그쳤다. (이번 리얼미터 여론조사는 지난 9월 11일부터 15일까지 5일간 전국 19세 이상 유권자 2542명을 대상으로 무선 전화면접(10%), 무선(70%)·유선(20%) 자동응답 혼용 방식, 무선전화(80%)와 유선전화(20%) 병행 무작위생성 표집틀을 통한 임의 전화걸기 방법으로 실시했고,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1.9%p 응답률은 4.2%였다)
국민의당의 한 관계자는 “내년 지방선거에서 광역단체장과 시군구를 다 뺏기면 지역 조직이 무너지는데 다음 총선은 치르나 마나 아닌가. 당장 호남 지역구 의원들이 (당을 떠나려고) 들썩들썩 할 것이다. 민주당은 의석수가 부족해 주요 법안 통과나 인사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국민의당 의원들이 온다고 하면 대환영이다. 청와대와 민주당이 호남에 정성을 쏟고 있는 것도 그 같은 시나리오 때문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민주당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본격적인 호남 챙기기에 나섰다. 지난 9월 27일 민주당 지도부는 광주 김대중 컨벤션 센터에서 최고위회의와 예산정책협의회를 진행했다. 회의에는 추미애 대표, 우원식 원내대표, 김태년 정책위의장, 이춘석 사무총장, 이개호 전남도당위원장, 양향자·박범계 최고위원, 백재현 예결위 위원장, 윤후덕 예결위 간사 등 당의 주요 인사들이 총출동했다. 민주당 관계자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국민의당이 자꾸 ‘호남 홀대론’을 주장하고 있어 이번 자리를 만들었다”고 밝혔다. 민주당은 앞으로 호남에서 이 같은 행사를 지속적으로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국민의당은 문재인 정부가 호남지역의 SOC(사회간접자본)예산을 삭감했다는 ‘호남 홀대론’을 연일 제기하고 있다.
현재로선 내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당 압승이 예상된다. <전남일보>가 지난 7월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리얼미터에 의뢰해 광주시민 803명을 대상으로 광주시장 후보 적합도를 조사한 결과 1~4위를 모두 민주당 인사가 차지했다. 국민의당 유력 후보군인 박주선 의원(8.5%)과 김동철 원내대표(4.9%)는 공동 5위와 6위에 머물렀다. (<전남일보>가 리얼미터에 의뢰해 실시한 이번 여론조사는 무선(광주 27, 전남 37%)·유선(광주 73, 전남 63%) 병행 무작위생성 표집틀과 통신사 제공 휴대전화 안심번호 데이터베이스(DB)에서 무작위 추출을 통한 임의 전화걸기로 진행됐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5%포인트이며, 응답률은 광주 3.5, 전남 3.1%다. 더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이에 대해 앞서의 국민의당 관계자는 “민주당의 높은 지지율에는 거품도 있다고 생각한다. 내년 지방선거 전에 조정이 될 것”이라면서 “호남 유권자들은 별다른 대안 세력이 없을 때에도 무소속 후보들을 선택해 절묘한 균형감각을 보여줬다. 민주당이 지금처럼 호남에 정성을 쏟는 것은 국민의당이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지난 2014년 지방선거에서 전북은 14개 시군 중 무소속 8명이 당선됐고, 전남 22곳 중에서도 8곳이 무소속 후보를 선택했다. 국민의당이 민주당과의 호남 대결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가 관전 포인트다.
# 수도권, 서울 자치구 민주당 싹쓸이?
대한민국 인구 절반가량이 모여 있는 수도권은 민심의 리트머스 시험지다. 민주당이 높은 지지율을 이어가고 있는 만큼 이대로라면 수도권 선거는 일방적인 승부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높은 지지율이 지방선거까지 그대로 이어질지 알 수 없고, 역대 지방선거에서 정권 심판론이 작동해 여권이 참패한 사례가 많았기 때문에 민주당으로서는 마냥 안심할 수는 없다.
또 다른 관전 포인트는 야 3당의 후보단일화 성사 여부다. 정우택 한국당 원내대표는 최근 수도권 후보 단일화를 제안했다. 서울시장 후보로 안철수 대표(국민의당)를 내세우고, 경기지사 후보로 남경필 현 지사(바른정당), 인천시장 후보로 유정복 현 시장(한국당)을 내세워 3당이 연대하자는 제안이다. 정 원내대표가 제안한 수도권 연대론에 대해 국민의당이나 바른정당 모두 현재까지는 별다른 반응을 내놓지 않고 있다. 서로 정체성과 정치적 기반이 달라서 섣불리 연대에 나섰다가는 오히려 기존 지지층이 떠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그렇다고 3당 모두 지지율 정체를 겪고 있는 상황에서 당장 새로운 인물을 영입해 수도권 광역단체장 후보로 내세우기도 어렵다. 결국 현실적인 이유로 3당 연대가 성사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온다.
서울시 25개 자치구 선거 결과도 정치권의 관심 대상이다. 2006년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현 한국당)은 25개 자치구를 싹쓸이했지만 2010년 선거에서 21 대 4로 역전된 이후 2014년에도 20 대 5로 패했다. 강남 3구(강남, 송파, 서초)는 한국당 최후의 보루였지만 지난 대선에서는 이마저도 무너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대선 당시 서울 25개 자치구 전체에서 1위를 차지했다. 내년 지방선거에서는 민주당이 서울 자치구 전체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장밋빛 전망도 나온다. 민주당이 강남 3구에서 승리할 수 있을지가 관전 포인트다.
특히 신연희 현 강남구청장의 경우 각종 구설에 휘말려 있어 민주당에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신 구청장은 지난 대선 당시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에서 문재인 당시 후보를 비방한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다. 경찰은 지난 9월 22일 신 구청장의 횡령·배임 의혹과 관련한 증거를 인멸한 혐의로 강남구 직원을 구속하기도 했다.
민주당 강남구청장 유력 후보로는 만 34세의 여선웅 구의원이 떠오르고 있다. 여 구의원은 2014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의 험지인 서울 강남구 나선거구에 출마해 서울 지역 최연소 구의원으로 당선된 인물이다. 여 의원은 ‘신연희 저격수’로 불리며 인지도를 쌓아왔다. 신 구청장 문재인 후보 비방 사건도 여 의원이 최초로 밝혀낸 것이다.
수도권 지역 시군구 의원 선거도 중요하다. 한나라당(현 한국당) 소속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2010년 6월 지방선거에서 승리했으나 여소야대인 서울시의회와 번번이 부딪히며 시정운영에 어려움을 겪었다. 결국 오 전 시장은 2011년 서울시의회가 무상급식을 강행하자 시장직을 걸고 맞서다 자진 사퇴하고 말았다. 서울시의회의 경우 총 106석 중 2010년 지방선거에서는 민주당이 79석을 가져갔고 2014년에도 77석을 차지하며 강세를 보이고 있다. 전국정당을 선언한 국민의당과 수도권 지역구 의원이 많은 바른정당이 수도권에서 얼마나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을지도 관전 포인트다.
# 충청권, 이제는 진보 텃밭
충청권은 2006년까지만 해도 보수 텃밭이었다. 2006년까지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대전시장과 충북·충남 지사는 한나라당이나 보수성향 자유민주연합(자민련) 후보들이 번갈아가며 차지했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야 처음 변화가 시작됐다. 당시 충남과 충북 지사 선거에서 민주당이 승리했고 가장 최근인 2014년에는 대전과 충남, 충북뿐만 아니라 새로 신설된 세종특별시장까지 민주당이 싹쓸이하는 결과가 나왔다. 2018년에 치러지는 지방선거는 민주당의 높은 지지율까지 뒷받침된다.
한국당의 한 관계자는 “광역단체장 선거는 민주당이 싹쓸이했지만 기초자치단체장 선거에서는 여전히 보수 진영 세력이 만만치 않다”면서 “내년 지방선거에서도 해볼 만하다”고 주장했다. 2014년 선거에서 충북 11개 기초단체장 중 6곳에서 새누리당(현 한국당)이 승리했고, 충남 15개 기초자치단체장 중 9곳도 새누리당 소속 후보가 승리했다. 민주당 안희정 충남지사와 권선택 대전시장의 출마여부도 변수다. 안 지사는 높은 인지도와 지지율을 자랑하지만 내년 지방선거 출마보다는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관심을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권 시장은 현재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재판 결과에 따라 시장직을 상실하게 될 수도 있다. 권 시장은 지난 6월 파기환송심 선고 공판에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대법원에서 그대로 형이 확정되면 시장직에서 물러나야 하고 한동안 선거에 출마할 수도 없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