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와 양평군이 가뭄 특별대책으로 지난 5월 서후1리에 설치한 대형 관정, 주민들 몰래 이장이 설치한 것으로 드러나 마을 민심이 양분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양평=일요신문] 지난 9월 26일 오전 10시 한적한 시골마을인 서후1리 마을회관이 시끄럽다. 2반에 설치된 관정 존치여부를 묻기 위해 마을 임시총회가 열린 것.
60여명의 마을 주민이 모인 가운데 “논란의 당사자인 이장이 사회를 보는 건 공정하지 않다. 임시의장을 뽑아 총회를 진행하라”, “주민들에게 알리지 않고 자기 땅에 관정을 설치한 것에 대한 사과와 함께 이장직을 사퇴하라” 는 등의 고성 속에 진행된 회의는 주민투표로 이어졌고, 결국 관정을 존치하기로 결정됐다. 이 와중에 마을 개발위원 19명 중 8명이 사퇴하고 회의장에서 퇴장했다. 투표 결과 찬성 54표, 반대 1표가 나왔다.
관정 주변 주민들은 “이장이 의도적으로 관정 폐공과 이장 사퇴를 주장하고 있는 2반 주민들에게는 알리지 않고 총회를 열었다”면서, “이장이 관정과 전혀 상관이 없는, 관정에서 2km 떨어진 곳에 거주하는 사람들까지 회의에 참석하도록 하는 등 ‘짜고 친 고스톱’”이라면서, 이장의 독단적 회의진행을 비난했다.
사태의 발단은 이렇다.
경기도와 양평군이 가뭄 특별대책으로 이 마을에 관정을 설치했고, 이 관정 때문에 마을 민심이 두 동강나게 생겼다. 행정관청의 무책임한 행정도 갈등을 부채질했다.
경기도가 올해 가뭄이 심해지자 도비와 군비가 50%씩?지원되는 ‘한해 특별대책 지원사업’을 실시하면서 양평군은 서후1리 등 3개면 6개 마을을 선정했다.
문제는 지난 5월 말 모내기를 앞두고 서후1리 이장 소유 땅에 관정이 설치됐는데 마을주민 대다수가 이 사업에 대해 모르고 있었다는 것.
나중에 이 사실을 안 주민들은 관정 폐쇄와 이장사퇴를 요구하고 나섰다. 주민 A씨는 “처음에는 자기 돈을 들여 관정을 판지 알았다”면서, “마을 지원사업을 주민들에게 설명도 없이 자기 땅에 설치한 것은 묵과할 수 없는 일”이라고 분개했다.이처럼 주민들의 분노를 증폭시킨 건 행정관청이 이 사업에 대한 공개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게 화근이 됐다. 이에 마을 주민들은 의혹이 있다며 양평군수에게 진정서 제출과 함께 군청 앞 1인 시위 등을 통해 철저한 조사를 촉구하고 있다.
서종면 관계자는 “이 사업은 경기도와 군 사업으로 군에서 직접 시행한 사업이어서 사업초기에는 전혀 몰랐고 나중에서야 알게 됐다”고 주민들에게 해명했다.
하지만 양평군에서는 “지난 1.18. ‘대형 관정 소요 현황 자료제출 공문’을 서종면을 비롯한 8개 읍면에 발송해 24개 수요처를 접수받았다(서종면 2. 2. 회신)”면서, “이후 개별적으로 이장들로부터 문의가 와서 서후리 등 추가 요청 동네에 대해 해당 면에 전수조사를 부탁했다. 이후 읍면과 합동 조사 후 최종 3개면 6개소를 확정한 것”이라고 밝혀, 의혹을 부채질하고 있다.
서루1리 논지를 가로지르는 서후천. 주민들은 이 지역은 오랜 옛날부터 아무리 가물어도 물이 없어 모내기를 못한 적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문제는 또 있다.
주민들은 관정이 설치된 이 곳 농지는 농사를 못 지을 정도로 물이 부족한 곳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이곳 농지 주변으로 서후천이 흘러 이 주변에서 가장 물이 많은 곳이어서 굳이 비싼 세금을 들여 대형 관정을 설치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이 지역은 오랜 옛날부터 아무리 가물어도 물이 없어 모내기를 못한 적이 없다고도 했다.
이에 대해 군 담당자는 “당장은 필요하지 않더라도 언젠가 극심한 가뭄이 들면 사용할 수 있지 않겠느냐”면서, “이에 대비해 미리 대형 관정을 설치하는 사업”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또 있다. 대형관정으로 인해 인근 주민들이 생활용수 부족에 대해 노심초사하고 있는 것.
관정과 불과 50여미터 거리를 두고 형성된 서후리 2반은 서후리의 가장 중심지로 20여가구가 모여 살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주민들은 혹 식수 공급에 문제가 생기지 않나 노심초사하고 있다. 주민들은 실제로 몇 년 전 개인이 버섯재배를 위해 관정을 시공했으나 주변에 있는 주택에 물이 나오지 않자 이를 폐쇄한 전례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주민 A씨는 “하필이면 20여가구가 사는 곳과 가장 가까운 곳에 대형 관정을 설치해 주민들의 원성을 사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비난했다.
주민 B씨 역시 “농사에 필요한 대형 관정으로 인해 인근 주택 주민들은 식수가 나오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냐”며 울분을 토했다. 또 “관정 주변에 대한 영향평가도 실시하지 않은 것은 주민들의 목숨을 담보로 하는 행정”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하수법에는 지하수를 개발ㆍ이용하려는 자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미리 시장ㆍ군수ㆍ구청장의 허가를 받아야 하며, 지하수영향조사기관이 실시하는 지하수영향조사를 받은 후 지하수영향조사서를 제출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대해 양평군 담당자는 “1일 150t 이상일 경우에 영향평가를 실시한다”면서, “이 곳 관정은 1일 100t으로 영향평가를 실시하지 않아도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대형관정과 일반가정에서 사용하는 중, 소형 관정은 취수하는 물길이 아예 다르다. 같은 물길이면 시공시 벌써 문제가 생겼을 것”이라고도 말했다.
하지만 지하수법 시행령에는 1일 150t 이하(토출관 안쪽 지름 50mm이하)의 경우와 1일 100t 이하(토출관 안쪽 지름 40mm이하)인 경우에도 ‘설치도’와 함께 ‘지하수 영향조사서’를 구비서류로 첨부하여 신고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취수량이 1일 100t이어서 지하수 영향조사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양평군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는 것.
1일 양수능력이 125톤이라고 명기되어 있는 관정 안내문. 공사가 끝난지 채 4개월도 되지 않아 안내판이 너덜거리고 있다.
더 큰 문제는 경기도 2017년 영농 한해 특별대책 지원계획(2차) 공문에 따른 지침을 군이 무시했다는 사실이다.
경기도는 이 공문에서 ‘반상회보, 유선방송, 신문 등을 통한 적극적인 사업홍보’를 하도록 지시했고. 또 ‘사업착수 전 주민설명회 등을 통해 민원을 사전에 방지’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하지만 해당 지역 어느 곳도 주민설명회를 거치지 않았다는 게 주민들의 주장이다. 특히 서후1리는 관정이 설치된 이장집 근처에 사는 주민들조차도 이 사업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는 것.
관정 주변 마을 주민들은 “사전에 관정 설치사업에 대한 설명회를 가졌더라면 주택 밀집지역과 떨어진 곳에 설치할 수도 있었을 것이고, 이처럼 관정 때문에 주민간 다툼도 없었을 것”이라면서, “관정을 폐공하던지, 아니면 주택 밀집지역과 멀리 떨어진 곳에 설치하고, 사태의 단초를 제공한 이장은 책임지고 사퇴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사태를 지켜보던 마을주민들도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했다. 주민 C씨는 “좋은 뜻으로 설치한 관정에 대해 이장의 사전 설명이 없어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 같다”며 “마지막까지 대화를 통해 다시 화목한 마을로 되돌아 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180여가구 마을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삶의 터를 잡은 서후1리. 대형 관정으로 인해 마을 민심이 둘로 갈라져 흉흉해지고, 무엇보다 주민들에게 이웃을 미워하는 증오의 풍조를 심어줄까 두렵다.
2반 주민들은 27일부터 양평군청과 서종면사무소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증거자료의 수집이 끝나는 대로 검찰에 고발도 불사하겠다는 각오다. 이번 사태로 ‘군수위에 이장 있다’라는 말이 또 다시 회자되면서 향후 사태추이가 주목된다.
대형관정이 설치된 서후1리 2반 전경. 20여 가구가 생활용수 부족에 대해 노심초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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