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 2기 선배인 정장군이 3년 전부터 식물인간이 되어 있어. 산소호흡장치를 하면서 연명하고 있지. 의식이 없는 상태라고 해. 요즈음 백세시대라고 하지만 선배들을 보면 칠십대 중반이면 가을 낙엽같이 떨어지는 것 같아. 우리보다 한기 위인 안선배나 박선배도 벌써 돌아가셨지. 그러고 보면 우리도 남은 세월이 많지 않은 것 같아.”
나는 그 말을 들으면서 세월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선배들은 인생의 밤이 되어 잠들기 시작하고 우리들도 저녁 어스름 속으로 젖어드는 것 같기 때문이었다. 의식불명으로 식물인간이 되어 누워있다는 정장군은 내가 중위시절 군에서 최초로 모신 직속상관이었다. 둥그런 얼굴에 입술이 두툼한 자상한 성격의 육군중령이었다. 서울법대를 졸업한 그는 집념의 사나이였다. 보병장교로 월남전에 참전하고 제대를 한 후 법무장교시험을 다시 보고 군에 들어왔다고 했다. 그의 목표는 장군이 되는 것이었다. 육군 중령시절 그는 자신이 장군팔자인지 아닌지 속리산에 있는 유명한 점쟁이한테 찾아가 묻기도 했었다. 그는 소원이던 별을 달았다. 장군을 마친 그의 다음번 소원은 국회의원이었다. 그는 몇 번의 선거를 치렀지만 당선되지 못했다. 그 후유증으로 재산을 탕진했다는 소문을 바람결에 들었다. 변호사가 된 그를 법정에서 몇 번 만났다.
“내가 언제 장군을 했나 싶어. 어린 시절 병정놀이를 한 것 같아.”
그가 지나치면서 한마디 내뱉던 게 가슴에 와 닿았다. 세상에서의 모든 게 지나가면 한바탕의 꿈인지도 모른다.
군에서 맺은 첫 인연이었지만 그에 대해서는 씁쓸한 기억이 마지막이었다. 젊은 시절 나는 제복을 벗고 자유롭고 싶었다. 법에 규정되어 있는 5년의 의무복무 기간을 마치고 전역신청을 했다. 그때 그는 병과에서 장군진급심사를 앞두고 있었다. 그는 나를 불러놓고 앞에 놓인 백지에 평생 군복무를 하겠다는 서약서를 쓰라고 강요했다. 그가 군대에서 상급자라고 해도 법에 정한 기본 의무복무를 다 한 내게 일생을 군에 있도록 강요할 권한은 없었다. 내겐 장군보다 자유가 소중했다. 나의 전역을 심사하는 위원회가 열렸다. 그는 나의 전역은 안 된다고 항의를 했었다. 물론 그 나름대로 충분한 명분이 있었다. 아마도 나같이 도중에 나가려는 장교들의 의지를 꺽어야 조직이 유지되기 때문이기도 했다. 위원회는 표결에서 나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는 마지막에 내게 미안하다고 했다. 위에서 시켜서 하는 거지 개인적인 감정은 없다고 했었다. 장군이 되려면 한 부하장교의 의지는 꺽어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마음 깊은 곳에는 섭섭함의 앙금이 있었다. 그 때문인지 식물인간이 되었다는 그의 병실로 발걸음이 옮겨지지를 않았다.
인간의 삶에서 장군과 국회의원 같은 걸 절대 목표로 삼는 게 과연 행복을 가져다줄까?. 욕심을 조금만 줄이고 그가 변호사직업에 전념했다면 건강한 몸으로 아직 손자와 즐겁게 지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아오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인생의 역정에서 같은 배나 기차의 승객이 되어 잠시 동행을 한 경우도 많았다. 우연히 만난 그 사람들을 섭섭하게 하거나 상처를 주지 않았을까 반성을 해 본다. 알고지은 죄도 많고 모르고 지은 죄도 역시 많을 게 분명하다. 글로 상처를 주기도 했다. 인생길에서 만난 사람마다 보다 겸손하게 대하고 잘해주지 못한 게 후회로 남는다.
엄상익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