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물건들은 제가 고미술협회에 가서 공부하면서 구입한 거예요. 저기 글씨는 한석봉의 것이고 그림은 조선말 화공 장승업의 작품이죠. 자수들도 많이 모았는데 자수박물관을 할 뜻도 있죠.”
원장 부부의 마음속에는 옛날에 시간과 공간속으로 들어왔다가 간 영혼이 들어있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때 한방병원장인 여한의사가 들어와 내게 말했다.
“오신 길에 제가 사상의학의 체질을 밝혀 드릴 께요”
나를 본 원장이 그렇게 말하고 진료실로 나를 안내했다.
인간을 몇 개의 체질로 구별하는 동양의학으로 알고 있었다. 원장은 나를 책상 앞 의자에 앉히고 몇 가지 간단한 검사를 하면서 말했다.
“인간의 몸에는 옅은 전류가 흐르고 있어요. 그걸 기(氣)라고도 표현을 하죠. 그리고 사람에게는 독특한 주파수의 뇌파가 있어요. 그 주파수의 변화에 따라 우주와 접속을 하기도 하고 때로는 영의 세계를 보기도 합니다.”
몸속에는 확실히 어떤 기운이 흐르는 것 같다. 20층 아파트에 사는 나는 동네야산을 산책해도 땅에서 어떤 생기를 받는 느낌이었다. 꿈속에서의 나는 내가 모르는 세계와 접속해서 그 세계에서 살다가 나온다. 그 일부가 꿈이 아닐까. 원장이 말을 계속했다.
“저희 부부가 얼마 전 이상구박사가 운영하는 힐링센터에 다녀왔어요. 이상구 박사는 우리 몸의 DNA를 활성화 해야 몸이 건강해 진다고 해요. 그게 활성화 되지 않으면 암세포로 변하기도 한다는 거죠. 그런데 이상구 박사는 DNA의 활성화의 배경에는 영적인 작용이 있다는 거예요. 영의 세계와 우리의 몸은 긴밀한 상호작용을 한다는 거죠.”
그녀의 말을 들으면서 나는 성경 속에서 예수의 치유방법들을 떠올렸다. 특정한 병의 원인은 사람 속에 있는 귀신이라고 하면서 예수는 귀신을 쫓았다. 혈루병을 입던 여인이 예수의 몸을 만지자 단번에 병이 나았다. 예수는 자신의 기운이 빠져나가는 걸 느꼈다고 했다. 그 기운의 정체는 무엇일까. 비슷한 게 아닐까.
“원장님은 어떻게 동양의 여러 비법을 공부하게 됐죠?”
내가 물었다.
“아버지가 어렸을 때 그 동네에 궁중의 전의가 살았대요. 조선왕조의 마지막 전의였대요. 아버지는 그 분한테 궁중에서 쓰던 여러 처방과 침술을 배웠죠. 아버지는 안암동의 작은 한옥에서 한의원을 하셨는데 저희 자식들은 어려서부터 옆에서 아버지가 환자를 치료하는 걸 보고 자랐어요. 아버지는 한의학 지식뿐만 아니라 동양 사상에 대해 평생 공부하셨어요. 지난번에 ‘면벽수행’이나 ‘육경신’을 잠깐 말씀드렸었는데 오늘은 제 동생의 경험을 말씀 드릴 께요. 남동생이 팔도 가늘고 몸이 약한 편이어서 한번은 남한테 얻어맞아 이빨까지 부러진 적이 있어요. 아버지가 화가 많이 나셨죠. 그때부터 아버지는 동생에게 ‘천문개폐법’이라는 수련을 하게 하셨어요. 매일저녁 장독대 위에 올라가 가부좌를 틀고 손짓으로 하늘을 열었다 닫았다하는 수련을 하는 거예요. 굳이 운동을 하지 않더라도 몸이 강인해진다는 거죠. 그 수련이 끝나고 동생이 팔씨름을 하게 됐어요. 상대방은 팔뚝이 쇠막대 같이 강해 보인 덩치가 큰 남자였어요. 그런데 동생이 단번에 이긴 거예요. 아버지는 그런 동양의 수련법을 많이 공부하셨죠. 저는 아버지를 따라 그런 것도 배우고 아버지의 비방을 거의 다 배웠죠. 병아리한의사 시절 제가 뭘 알겠어요. 아버지한테 환자의 증상을 얘기하면 아버지는 어떤 탕을 지으라고 했어요. 그대로 했죠. 아버지 말대로 한 경우가 대부분인데 환자가 병이 다 나았다고 하면서 인사를 하러 올 때면 제가 더 신기했죠.”
인간을 치유하는 데는 다양한 방법이 있는 것 같다. 서양의 발달된 외과적 수술도 있고 동양의 여러 비법도 공존해야 하지 않을까. 증산도를 창시한 구한말의 강증산은 동곡약방이라는 간판을 걸어놓고 다양한 방법으로 환자들을 치유했다. 동양만의 신비한 세계들이 많은 것 같다.
엄상익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