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동생인 은성그룹의 이동팔 회장이 특수부에 체포됐습니다. 지금 동생을 구할 수 있는 분은 장관님 밖에 안계십니다.”
“알겠소, 잠깐만”
장관출신 변호사는 손짓으로 맞은 편 소파에 앉으라고 하면서 탁자위에 있는 인터폰을 눌렀다. 여비서가 나왔다.
“서울지검장을 대라”
조폭두목 앞에서 직접 자신의 영향력을 보여주려는 태도였다. 여비서가 전화연락을 하는 동안 잠시의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
“장관님께서 힘써 주시면 이 은혜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조폭두목이 황송한 듯 다시 머리를 조아렸다. 장관을 마치고 변호사가 되도 마지막 관직이 죽을 때까지 따라붙었다.
“지검장 나왔습니다.”
인터폰에서 여비서의 목소리가 흘렀다. 장관출신 변호사가 인터폰의 스피커 통화 스위치를 눌렀다.
“장관님 그동안 무고하셨습니까? 찾아뵙지도 못하고 격조했습니다.”
지검장이 공손하게 문안 올리는 목소리가 스피커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김공, 지금 특수부에 이동팔 회장이라고 있나?”
“지금 조사하고 있다고 보고받았습니다.”
“이 사건 내가 맡아도 되겠나?”
바로 석방이 될 수 있겠느냐는 우회적인 말이었다.
“예, 망신당하실 사안은 아닙니다. 괜찮을 겁니다. 맡으셔도 될 겁니다.”
“고맙네”
조폭두목은 다시 한번 머리를 조아렸다. 그 순간 지하의 주차장에서는 사과상자에 든 현찰다발이 장관의 승용차 트렁크로 옮겨지고 있었다. 근거를 남기지 않고 세금 한 푼 내지 않고 전관예우로 사건이 간단히 종결되는 순간이었다. 다음날 아침 체포됐던 거액의 주가조작을 한 회장은 검찰청사를 비웃는 듯 미소를 지으며 늠름하게 검찰 청사를 나왔다. 전관예우의 한 형태다. 장관이나 검사장 출신 검사의 전관예우를 사서 사건을 해결하는 방법도 있지만 거물급 범죄자들은 직접 권력을 사기도 했다. 그 방법 중의 하나는 검찰총장이나 지검장의 가족이나 형제를 자신의 회사의 비서실에 취직을 시키는 방법이다. 조폭두목과 연계된 그룹에서는 검찰핵심 요직에 있는 사람들의 가족을 회사에 영입해 매달 높은 월급을 주고 있었다. 교묘한 뇌물제공 방법이었다. 거물들의 뇌물제공방법은 갈수록 진화하고 있었다. 어떤 일을 청탁하기 이전에 아예 권력자의 야산이나 임야를 몇 십배 몇 백배 비싼 가격으로 매입하는 방법을 취하기도 했다. 사건이 발생하기 전이니까 법이 댓가성을 아무리 추궁해도 걸릴 수가 없었다. 외형적으로 정상적인 매매거래였다. 법상 금액을 결정하는 것은 당사자들의 자유였다. 어떤 법의 그물도 그들을 잡을 수가 없었다. 개인적으로 팔던 전관예우란 명목의 청탁 판매가 포장을 하고 조직적 집단적으로 거래되고 있다.
평소 고문을 맡고 있던 회사의 김상무가 나의 법률사무소로 찾아왔다. 그 회사는 몇 년 전부터 여러 소송에 휘말려
많은 변호사들이나 로펌을 이용하고 있었다.
“저희 단체의 돈을 거액 횡령한 임원이 있습니다. 그 고소사건을 검사장 출신이 많은 로펌에 맡기려고 합니다. 그런데 가서 상담할 때면 제가 위압감을 느낍니다. 그리고 몇 번 당해봤는데 말들은 자기네가 힘쓰면 당장 해결될 것 같이 하는데 결과를 보면 엉망인 경우가 있었어요. 한번 부탁에 돈만 몇 억이 들어가기도 하구요. 그러니 고문을 맡은 엄 변호사님이 로펌에 같이 가서 얘기를 듣고 저희가 사기를 당하지 않게 함께 참석해 주세요.”
단체임원의 횡령수사는 간단한 사항이었다. 회사 돈을 빼내간 흔적이 있는 서류와 몇 사람의 진술을 받으면 윤곽이 바로 잡히는 사건이었다. 그런 사건도 거액을 내고 전관예우를 사야만 조사가 되는 현실이었다. 서민들은 고소해도 담당형사들은 그들을 비웃는 경우가 많았다. 검사도 마찬가지였다. 법조문은 있지만 그 진짜 혜택을 받는 사람들은 돈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다. 사법공무원들의 적폐였다.
“그런 내용이면 저도 고소장이나 의견서를 써 드릴 수 있는데요”
내가 말했다. 별로 어려울 게 없었다.
“아닙니다. 저희 단체에서는 검사장출신들이 있는 로펌에 고소를 의뢰하기로 했어요. 다만 변호사님에게 부탁하는 것은 회사 고문으로서 로펌에 가서 회의를 할 때 옆에 같이 있어 줘 달라는 겁니다.”
호기심이 일었다. 대형로펌에서 하는 비즈니스의 일선의 모습을 보고 싶었다.
오후 세시의 태양이 강하게 내리쬐고 있었다. 나는 강남의 중심에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있는 웅장한 유리건물의 회전도어를 지나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천정이 높은 로비의 곳곳에 검은양복을 입은 경비원들이 부동자세로 서 있었다. 깨끗이 청소가 된 대리석 바닥은 얼굴이 비칠 정도로 반들거렸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25층의 단추를 눌렀다. 소리 없이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의 거울 같은 벽에 기가 죽은 듯한 우리의 모습이 비쳤다. 찬 기운이 느껴지는 두꺼운 유리건물 자체가 거부감을 일으키는 느낌이었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스르르 열리면서 화려한 로펌의 입구가 시야에 들어왔다. 청동판으로 만든 로펌의 로고가 은은한 조명을 받는 앞에서 미녀안내원이 비둘기색의 대리석 탁자 뒤에 서 있었다. 고급그림들을 넣은 액자가 벽에 걸려 있었다. 벽아래 붙어있는 탁자의 유리 안에는 로펌의 변호사들이 활짝 웃으며 둥그렇게 둘러 서 있는 사진과 함께 로펌을 소개하는 기사가 들어 있었다. 검사출신만 백 명이 넘는 국내초유의 대형로펌이라고 했다. 대법관부터 판사출신도 직급별로 근무한다고 기사에 적혀 있었다. 이 로펌에 돈만내고 일을 부탁하면 어떤 사건이든지 해결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일류 잡지는 아닌 걸 봐서 홍보용으로 만들어진 기사 같았다.
우리는 늘씬한 미녀 안내원을 따라 호텔복도 같이 푹신푹신한 카펫을 밟으며 여러 개의 접견실이 나란히 이어진 곳을 지나갔다. 법률사무소가 아니라 고급호텔의 방들을 지나가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잠시 후 우리는 접견실중의 한 방으로 안내받고 들어갔다. 중앙에 길다란 고급목재로 만든 회의 탁자가 있었고 양쪽으로 가죽을 씌운 검은 의자들이 놓여 있었다. 탁자위에는 예쁘게 깍은 연필들이 필통에 나란히 누워있었고 그 옆에 노란 메모지가 보였다. 윤기 나는 검은 가죽 회전의자에 앉았다. 투명한 통 유리창 밖으로 강남일대의 경치가 시야에 들어왔다. 미세먼지가 안개같이 도심의 하늘을 덮고 있었다.
“티로 하시겠습니까? 원두커피로 하시겠습니까?”
안내하는 여성의 공손한 목소리였다.
“예 커피를 주시죠”
같이 온 단체의 임원인 남자가 분위기에 주눅이 든 목소리로 말했다.
“저두요”
내가 옆에서 말했다. 잠시 후 커피를 담은 하얀 도기찻잔을 차반에 든 안내여성이 들어와 세련된 몸짓으로 탁자위에 커피를 놓고 나갔다. 마치 낯선 외국의 고급 사무실에라도 와 있는 기분이었다.
잠시 후 문이 조용히 열리면서 고급정장을 입은 두 남자가 들어왔다. 회색 양복을 입은 사람은 오십대 말이고 청색 쟈켓의 다른 한사람은 그보다 조금 어리게 보였다. 체크무늬 와이셔츠에 하늘색 넥타이를 매고 있었다. 두 사람은 들고 온 서류파일을 탁자위에 놓고 의자에 앉았다. 청색쟈켓을 입은 남자가 입을 열었다.
“저는 부장검사를 지냈고 여기계신 저희 팀장님은 제가 검사장으로 모셨습니다.”
화려한 법조경력이었다. 사건의 혐의를 받는 겁먹은 사람들에게는 그들의 존재가 신같이 보일 수 도 있을 것 같았다. 같이 간 단체의 임원을 내가 그들 본보의 일을 상시 도와주는 고문변호사라고 소개했다. 그들과 악수를 나누었다. 검찰출신 두 명의 변호사는 이미 사건을 검토한 표정이었다. 검사장출신의 변호사가 대표로 말을 하기 시작했다.
“요즈음 검찰청은 한 검사가 매월 이백 건이 넘는 사건을 맡고 있어 과부하 된 상태입니다. 하루에 열 건이 넘는 사건의 결정문을 써야 합니다. 그렇게 바쁜 상태니까 어떤 사건에도 시간을 가지고 제대로 심도 있게 수사를 할 수가 없는 현실입니다. 대부분의 사건을 경찰에 넘겨버립니다. 경찰역시 한 형사가 여러 사건을 맡고 있어 대충대충 처리하는 게 현실입니다.”
그의 말은 묘한 의미를 담고 있었다. 검사장 출신인 자기가 아니면 일이 되지 않을 것이란 얘기였다. 전관예우의 가치를 그는 강조하고 있었다.
“그러면 검사장님은 어떻게 해주실 수 있습니까?”
같이 간 김상무가 물었다.
“저희가 특별히 부탁하면 검찰청 수사과에서 직접 수사를 하게 할 수 있습니다. 그곳에도 사건이 넘쳐 아무나 수사를 부탁한다고 해 주지를 않습니다. 이 수사관이란 사람들이 골치 아파요. 고소장을 길게 써 내면 읽지도 않고 이해하려고 하지도 않아요. 고소할 내용을 조각으로 나누어 조금씩 써서 내고 직접 가서 설명하고 이해시켜야 조금씩 움직일까 말까입니다. 그 사람들은 절대 움직이지 않습니다. 증거도 자기네가 수집하는 일이 없어요. 고소하는 쪽에서 완벽하게 만들어 바쳐야 받아먹을까 말까하죠. 그게 수사의 현실입니다. 그래도 예전의 우리 때는 약간의 정의감이라는 게 남아 있었죠. 그런데 요즈음은 그런 미미한 정의감도 찾아보기 힘들어요. 그래서 제대로 수사가 되게 하려면 부탁을 해야 하는 겁니다. 제가 말하는 건 전관예우하고 다릅니다. 예전의 장관이나 검사장들처럼 전화한통으로 일하고 돈을 받지 않습니다. 의견서를 써서 수사관이나 검사를 설득하고 유도하는 거죠.”
고문변호사자격으로 온 내가 끼어들을 때가 된 것 같았다. 내가 나서서 직접 물었다.
“수사에 대한 의견서나 증거자료 제출은 고문인 저도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이 로펌으로 온 이유는 검사장 출신이라고 내세우시는데 그 경력으로 뭘 할 수 있느냐를 직접 듣고 싶습니다.”
그가 잠시 주저하다가 결심을 한 듯 입을 열었다.
“좋습니다. 우리만이 할 수 있는 걸 말씀드리죠. 일단 사건을 직접 신경 써서 수사하게 하겠습니다. 지금 사건을 배당받은 검사는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수사담당검사를 바꾸도록 하겠습니다. 저희 로펌에 현직검사에서 바로 나와 뛰고 있는 변호사가 56명입니다. 그들을 적재적소에 배치시켜서 뛰게 할 예정입니다.”
일반 변호사들은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조직적인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수임료는 어떻게 받으십니까?”
“전에는 성공보수를 받았는데 대법원에서 성공보수를 받지 말라는 판결이 나와 타임 챠지를 편법으로 이용하고 있습니다. 변호사 한 사람당 시간당 타임챠지를 백 오십 만원 정도로 하고 시간과 인원을 조정하면 저희가 요구하는 금액이 될 것 같습니다.”
개인변호사를 했기 때문인지 30년 변호사생활에서 처음보는 광경이다. 미국의 법률드라마에 나오는 로펌의 비즈니스 행태들이 어느새 국내에 들어와 뿌리 깊게 박힌 것 같았다. 로펌이 있는 빌딩을 나오면서 김상무가 내게 이렇게 말했다.
“고문 변호사님이 오니까 로펌의 검사장 출신들의 태도가 백팔십도 달라지는 것 같아요. 얼마나 전관경력을 과시하면서 사람을 기 죽이는지 몰라요. 앞으로는 저쪽 로펌에서 오는 계약서 검토도 변호사님에게 부탁해야 겠어요.”
경제성장으로 돈 없는 가난한 사람이 굶어죽지 않을 정도의 복지는 되어가고 있다. 그 다음은 무엇일까. 국가를 대신하는 공무원인 검사나 형사가 그리고 사법에 종사하는 모든 공무원들이 국민의 억울한 눈물을 닦아주어야 법치국가고 민주공화국이다. 그런데 아직도 서민들이 법 앞에서 평등하지가 않다. 법치도 아니고 공화국도 아니다. 법을 하는 사법공무원의 많은 사람들의 이기주의와 무사안일 때문이다. 전관이 가서 부탁을 해야만 업무를 처리하는 나라는 썩은 나라다. 그 무사안일은 뇌물죄보다 더 큰 차별을 이 사회에 만들어 내고 있다. 법의 날 행사장에서는 법의 깃발이 화려하게 걸리지만 현실의 그늘에서는 그렇지 않다. 그늘 속에서 번지는 곰팡이들을 행사장 단상에 앉은 높은 사법관료들은 볼 수가 없다. 국기에 대한 의례를 하는 고교후배인 대법관의 사진을 보면서 평생 엘리트로 고속승진을 한 그가 정말 한번 눈물을 흘려봤을까 의문이다. 눈에 눈물이 없으면 영혼에 무지개가 뜨지 않기 때문이다.
엄상익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