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진호 감독. 사진=부산 아이파크 제공
[일요신문] 조진호 감독의 사망 소식이 한국 축구계에 슬픔을 안겨주고 있다.
조진호 감독은 10일 오전 부산 화명동 숙소 인근에서 급성 심장마비로 쓰러져 작고했다. 갑작스러운 소식이었다. 축구계의 애도 물결이 이어졌다.
조 감독은 현역 시절 일찍부터 재능을 드러내며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한 번도 경험하기 어려운 20세 이하 월드컵에 두 번이나 참가했다. 서류상 만 17세의 나이에 참가한 1991년 대표팀은 남북 단일팀이었다. 조직력 등의 문제로 공격진은 북한 선수들이 맡았지만 조진호는 그 중 한자리를 꿰찼다. 2년 뒤 1993년에도 대회에 나섰다.
이듬해 열린 1994 미국 월드컵에도 만 20세의 나이로 참가했다. 강호 독일과의 경기에서는 선발로 출전해 그라운드를 밟았다.
월드컵에 출전했던 그 해, 조 감독은 프로 무대에도 첫 선을 보였다. 드래프트 전체 3순위로 당시 포항제철에 지명됐다.
하지만 프로 무대에서는 기대만큼 활약을 펼치지 못했다. 1996년 FA컵 초대 대회에서 우승하며 MVP를 수상했고 2000년 리그컵 대회에서도 결승골로 우승컵을 들었다. 하지만 군 복무와 부상 등으로 꾸준한 활약이 이어지지는 못했다. 2002년을 마지막으로 통산 119경기 15골 8도움이라는 기록을 남기고 지도자의 길로 들어섰다.
그는 부천, 제주, 전남 등에서 코치 생활을 하다 대전에서 감독직에 올랐다. 기쁨을 감추지 않는 세레머니 등으로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2014년에는 압도적 성적으로 팀을 2부리그에서 1부리그로 승격시켰다. 승격 주역들이 빠져나간 팀 사정 탓에 성적 문제로 지휘봉을 내려놨지만 곧 러브콜이 이어졌다. 2016년에는 상주 상무에서 군경팀 최초로 상위스플릿 진출이라는 기록을 달성하기도 했다. 당연히 상주 구단 역대 최고 순위였다.
올 시즌을 앞두고는 부산 사령탑을 맡았다. 최초로 강등된 기업구단을 다시 1부리그로 올려 놓아야 하는 임무를 맡았다. 3위와 승점 11점차 2위를 기록하고 있어 최소 플레이오프 진출이 유력한 상황이다.
은퇴 이후 10년만에 감독 자리에 오른 조진호 감독은 맡는 팀 마다 자신만의 업적을 달성해가고 있었다. 특유의 리더십과 우수한 결과로 인정을 받고 있던 지도자였다.
갑작스러운 소식에 축구계 전체가 슬픔에 빠져 있다. A대표팀도 조 감독을 추모한다. 신태용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은 10일 밤 스위스에서 열리는 모로코와의 평가전에서 추모 묵념을 할 예정이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