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동전사 건담>의 한 장면(위)과 애니메이션 등장인물 복장을 한 학원 강사. | ||
도쿄 오차노미즈에 위치한 빌딩의 한 영어학원. 30대 샐러리맨이나 젊은 여성들이 앉아서 열심히 수업을 듣고 있다. 그런데 강사의 차림이 이상하다. 유명 애니메이션 <기동전사 건담>에 나오는 의상을 입고 있는 게 아닌가. 그뿐이 아니다. 차림새뿐 아니라 수업 내용도 심상치 않다.
20세의 여성 강사 미미가 “What would you like to drink?”라고 학생들에게 질문한 뒤 일본어로 “외국의 레스토랑이나 술집에서 이런 질문을 받으면 ‘Me beer, she coke(나는 맥주, 그녀는 콜라)’라고 대답하면 된다. 문법에 신경 쓸 필요는 전혀 없다!”고 설명한다.
이것은 세계 최초의 코스프레 영어 학원인 ‘코스플리시(Cosplish)’의 수업 광경이다. 이곳의 외국인 강사들은 모두 <기동전사 건담>이나 <원피스> 등 인기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복장을 하고 회화를 가르친다. 그 때문인지 수업 분위기가 매우 화기애애하다.
수강료는 한 시간에 1200엔(약 1만 1500원)으로 유명 영어학원에서 일반적으로 내야 하는 2500엔(약 2만 4000원)의 반값에 불과하다. 값도 싸고 재미가 있으니 수강생들이 몰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코스플리시’에는 모두 8명의 강사가 있는데 이들은 대부분 교환학생으로 일본에 와 있는 미국인들이고 앞서 나온 미미만 스웨덴 출신. 미미는 “일본 만화를 너무 좋아해서 일본에 왔다가 이 아르바이트를 구하게 됐다. 나는 만화를 잘 아는 일본사람들과 친해질 수 있고, 그들은 영어를 배울 수 있으니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셈”이라고 이야기한다.
수업 내용에서도 일반 영어 학원과는 차별화를 꾀하고 있다. 가장 인기 있는 수업은 일본 애니메이션의 대사를 영어로 바꾸는 수업이다.
미미가 가장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기동전사 건담>에는 “이건 자크와는 달라!”라는 대사가 나오는데, 이것을 “This is not ZAKU!”이 아니라 “You’d better not think this is ZAKU!”라고 가르쳐준다. 이 대사는 적군이 주인공에게 자신의 로봇이 옛날 모델(자크)과는 비교도 안 되게 뛰어나다는 것을 자랑하는 장면에서 나온다. 만일 이 대사를 그대로 직역했다면 ‘얕보지 마라’는 원래 의미를 전달할 수 없다는 것이 학원 측의 자랑 섞인 설명이다.
30대 회사원이라는 한 수강생은 “언젠가 외국에서 일을 하고 싶어 영어학원에 다녔지만, 틀에 박힌 회화 수업 때문에 실력이 늘지 않아 고민이었다. 그러나 이 학원은 내가 좋아하는 만화가 테마이기 때문에 즐기면서 영어를 배울 수 있어 좋다”고 말한다.
그러나 모든 수강생들의 의도가 이렇게 순수하지는(?) 않은 듯하다. 어느 20대 샐러리맨 수강생은 “메이드 복장을 한 여성 강사가 ‘It’s up to you, master(주인님에게 달려 있어요)’라는 대사를 해 주는데 기분이 너무 황홀했다”고 회상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코스플리시’는 수강등록을 하고 싶다는 신청자들의 문의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특히 여성 강사가 담당하는 반은 신청을 받자마자 모두 마감이 될 정도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애초에 코스프레와 영어학원을 접목시키자는 생각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스즈키 대표는 “본래 메이드 찻집 관련 일을 한 경험이 있다. 단골 장사인 코스프레 비즈니스와 역시 꾸준히 공부하는 것이 중요한 영어 공부를 합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설명한다. 듣고 보니 절묘한 조합이 아닐 수 없다.
얼마 전에는 로이터통신을 통해 이 영어학원 기사가 전 세계에 소개됐다. 그 후로 외국에서도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대부분은 유럽이나 미국에서 ‘그 학원에서 일하고 싶으니 채용해달라’는 부탁. 개중에는 ‘영국에서 코스프레 일본어학원을 열고 싶다’는 합작 투자 문의도 있다.
스즈키 대표는 한발 더 나아가 앞으로는 피카츄 의상을 입은 강사가 영어를 가르치는 아이들 전용 코스프레 영어학원도 차릴 예정이라고 한다. 코스프레 비즈니스가 일본을 대표하는 수출품이 되는 것도 그리 먼 훗날의 일은 아닐 듯하다.
박영경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