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자전거나라는 여행상품을 판매하는 회사다. 일반 여행사와 달리 전문 가이드 서비스를 판매해 유명세를 얻었다. 유로자전거나라 소속 가이드는 담당 지역의 역사와 예술품 관련 내용을 깊이 공부해 전문 지식을 제공한다. 2005년에 한국에서 개인사업자로 설립돼 2014년 법인이 됐다. 한국 법인 직원 23명이 그리스, 독일, 스페인, 영국, 이탈리아, 체코, 터키, 프랑스 등 유럽 8개국 현지 법인 소속 가이드와 행정 직원 104명을 관리하는 형태로 이뤄진다. 연 매출은 수십억 원에 이른다.
문제는 명확하지 않은 직원 채용 공고부터 시작됐다. 유로자전거나라의 직원 모집 공고에 따르면 직원은 입사 뒤 2개월 동안 한국에서 교육을 받고 현지로 파견돼 3개월에서 1년 동안 인턴 기간을 거친다. 인턴 기간에는 월 1000유로와 함께 현지 기본 생활비가 보조된다고 명시됐다.
그러나 기본 생활비와 월 1000유로 지급은 일부 국가에서만 지켜졌다. 현지에서의 숙박비과 식비조차 인턴 직원의 몫인 곳도 있었는데 이런 곳에선 휴대전화비와 교통비 정도만 보조됐다. 소정의 보조비가 끊기는 시기가 되면 정직원이 된다고 알려졌다. 초반에 생활비가 필요한 인턴 직원들은 회사에 가불을 당겨 쓰곤 했다. 자연스레 가불한 비용이 커지면 일을 그만둘 수 없는 굴레에 빠졌다.
유로자전거나라 대표는 책임과 권한에 있어 현지 법인과 선을 그었다. 그는 “이태리 법인을 제외한 유럽의 7개국 법인은 사실상 한국 법인과 법적 관련이 없다. 협력사 개념이다. 한국 법인이 자본금을 댄 곳은 이태리 법인이 유일하다. 한국 법인은 외국으로 파견될 가이드 고용을 대행해주는 역할만 해 왔다. 가이드는 현지 법인 소속으로 관리는 현지 법인 권한”이라며 “월 1000유로가 최저임금에 미치지 못하지만 여행업계에서 이 정도 수준의 대우를 해주는 건 우리가 유일할 정도로 나쁜 조건이 아니다. 지켜지지 않는 부분도 일부 있다. 늘 법인장에게 뭐라고 한다”고 말했다.
실제 유로자전거나라의 사업 특성상 고용 문제의 책임 소재는 모호했다. 유로자전거나라에 따르면 이태리 법인을 제외한 7개국 현지 법인은 회계상 유로자전거나라 한국 법인의 종속 회사가 아니었다. 이태리 법인만 한국 법인에서 자본금을 댔다. 사업 구조 역시 7개국 현지 법인은 한국 법인과 함께 유로자전거나라 브랜드만 공유하는 협력사에 가까웠다. 한국 법인이 예약금을 받은 뒤 일부 금액을 제하고 현지 법인에 나머지 금액을 송금한다. 현지 법인은 이 금액과 함께 현지에서 추가로 발생하는 수입을 매출로 잡는다.
하지만 인사 주체를 한국 법인으로 볼 수밖에 없다는 근거가 몇 발견됐다. 2015년까지만 해도 직원 모집 공고에는 “정직원 전환과 함께 4대 보험에 가입된다”고 돼 있었다. 4대 보험이 가입된다는 건 실제 고용 관계가 한국 법인에서 이뤄진 뒤 외국 법인으로 파견되는 형태란 얘기다. 실제 내부에서 일부 직원들의 고용 불안정 문제가 여러 차례 제기되자 유로자전거나라는 지난 3월 10일 이사회를 갖고 입사 3년차 이상 직원만 희망자에 한해 정식 직원으로 등록하겠다고 밝혔다.
최근 2년 유로자전거나라 직원 모집 공고. 4대 보험 가입 관련 내용은 지난해 돌연 빠졌다.
조건부였다. “정직원이 되면 4대 보험 등에 들어가는 15만 원과 직원 등록으로 매출신고에 내야 하는 10만 원 등 총 25만 원을 내야 한다”는 조건이 붙었다. 내부 반발이 심해지자 취소됐다. 정규직 희망자의 월 기본 급여는 세전 100만 원으로 책정됐다. 정규직 비희망자는 월 급여와 4대 보험 등이 보장되지 않고 자신이 투어를 도는 만큼의 수당을 가져가는 방식으로 일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었다. 협력사로 여겨진다는 한 현지 법인 직원이 한국 법인으로 보직 변경되는 인사 공지 사례도 확인됐다. 회사의 실질 지배 구조와 명목 지배 구조 사이의 맹점이 악용됐다는 비판이 나왔다. 한 직원은 “대표와 현지 법인장 사이의 책임 떠넘기기에 이골이 났다”고 말했다.
이 모든 문제는 제대로 된 고용계약서가 작성되지 않는 데에서 시작됐다. 고용계약서가 없으니 직원들은 어디 소속인지도 몰라 따질 수 있는 대상을 찾지 못했다. 최소한의 복지나 권리조차 주장할 수 없는 상태에 빠졌다. 고용의 근거도 없어 퇴직금 요구도 하기 어려운 실정에 놓였다. 올 상반기 유로자전거나라를 그만둔 복수의 직원은 “퇴직금을 전혀 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이와 더불어 취업 비자 없는 가이드를 현지 법인으로 보내 꼼수 영업을 해 온 사실도 드러났다. 이마저도 나아진 상황이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관광 비자로 입국해서 이른바 ‘점프’를 뛰어 체류하는 방식으로 영업이 이뤄졌다. 점프란 EU 국가에서 EU 국가가 아닌 곳에 잠시 머물다 오면 다시 관광객 신분으로 체류가 가능한 점을 악용한 체류 방식이다.
사진=JTBC 드라마 ‘더 패키지’ 홈페이지
유로자전거나라 한국 법인은 JTBC에서 13일 첫 방송 되는 이연희, 정용화 주연의 드라마 <더 패키지> 측과 올해 초 1억 5000만 원 제작 후원 계약을 맺었다. 몇 해 전 이 회사를 그만둔 한 직원은 이 소식을 전해 듣고 “보호 장막 하나 없이 불안에 떠는 청년들 일 시켜 번 돈으로 드라마 찍는 데 쏟아 부었다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 순진한 청춘의 젊음이 저당 잡힌 대가가 허구의 사랑 이야기로 돌아온다는 게 아이러니하다”고 전했다.
유로자전거나라 대표는 “우리 회사는 모두가 주주다. 퇴직금은 현지 법인에서도 어느 정도 챙겨주고 내가 한국에서 만나 더 주기도 했다. 사업 구조가 기존 여행사와 달라 아직 미진한 부분도 있고 고용계약 안 쓴 건 잘못된 것일 수 있다. 하지만 고용계약서가 중요한 게 아니라 우리의 마음이 중요하다. 대부분 행복하게 일하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며 “가이드는 취업 비자 받기가 쉽지 않다. 가이드에겐 최소 학생 비자를 받은 뒤 현지 법인에 가게 해 합법적 테두리 안에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줘 왔다”고 해명했다.
이와 관련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근무에 관련된 구체적 지시가 있었는지 여부와 임금의 지급 방식 등 종합적으로 판단해 근로자성이 인정되면 위 사례는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판단될 수 있다”고 말했다.
최훈민 기자 jipcha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