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앞선 정권 당시 SNS 소신 발언 등으로 좌천돼 있다가 문무일 총장 취임 후 첫 검찰 간부 인사 때 화려하게 부부장검사로 복귀한 임은정 서울북부지검 검사(사법연수원 30기)의 잇따른 행보가 문무일 총장의 리더십을 도마 위에 오르게 하는 결정적인 방아쇠가 된 모양새다.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에 부장검사급 이상과 이하 검사들 간의 갈등을 야기시킨 논란의 글이 올라온 것은 지난 9월 21일. 이보다 앞서 임은정 검사는 한겨레신문과 인터뷰를 진행했는데, 검찰 내에서 언론과 대응하는 공식 직책은 차장검사다. 차장검사를 제외하고는 수사 보안 등을 이유로 언론과의 접촉이 금기시 되는 게 검찰 내 불문율이다. 때문에 부장검사도 아닌 부부장검사인 임은정 검사의 언론 인터뷰는 그만큼 의외였다.
임은정 검사. 페이스북 캡처.
전 국민의 관심이 쏠린 특정 사건의 담당 검사로서의 ‘사건’에 대한 인터뷰가 아닌, 검찰 전체에 대한 비판을 SNS에 쏟아냈던 임은정 검사의 평소 견해를 중심으로 이뤄진 인터뷰였기 때문에 더 이례적인 것으로 해석해도 무방하다. 임 검사가 직접 “대검찰청에 인터뷰를 하겠다고 (허락을) 요청했는데, 정말 해도 된다고 할 줄 몰랐다”고 기사에서 언급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인터뷰 성사만큼이나, 내용도 파격이었다. 평소 SNS에 검찰 조직의 눈치를 보지 않고 하고 싶은 말을 쏟아내던 임 검사는 인터뷰에서 “괴물을 잡으려고 검사가 됐는데, 우리(검찰)가 괴물이더라”며 상급자의 부당 행위 사례를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과거 한 검사장이 음주·무면허 전과 10범 A 씨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종용했는데, A 씨의 아버지가 검찰과 업무 협약을 하는 범죄 예방위원이었다는 것. 해당 검사장은 임 검사에게 ‘A 씨가 운전의 고의가 없다’고 주장하는 바람에, 해당 검사장이 다른 검찰청으로 옮겨갈 때까지 시간을 벌 수밖에 없었다고 임 검사는 주장했다.
임은정 검사가 조직 내부의 구체적인 사건 진행 과정을 ‘문제’로 지적하자, 고위 관계자들이 발끈했다. 그리고 서울북부지검 양요안 형사1부장검사(사법연수원 27기)는 검찰 내부 게시판에 이를 정정하는 글을 올렸다.
“임 검사의 글에 나오는 사례들이 사실이라면 이는 매우 잘못된 업무처리 방식”이라고 운을 띄운 양 부장검사는 “대검과 관련 청 등을 통해 진상을 파악한 결과 이 사건은 임 검사가 인사발령 난 이후인 2009년 3월 후임 검사에 의해 벌금 500만 원으로 약식기소 처리됐고, 임 검사의 후임 검사는 통상의 기준에 따라 처리했을 뿐 부당한 압력은 없었다”고 해명했다. 임 검사가 ‘확인되지 않은 내용을 인터뷰 과정에서 사실처럼 단정적으로 언급했다’고 반박한 셈이다.
일요신문 DB
모든 댓글이 양 부장검사를 비판한 것은 아니지만, 기사에 대한 사실 관계를 정정하려다가 간부급 검사가 공식적으로 비판을 받는 분위기 자체를 통탄하는 검찰 관계자들이 적지 않다. 상명하복이 분명한 검찰 내부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는 것.
익명을 요구한 한 검찰 관계자는 “후배 검사들이 술자리에서 동료들과 선배 검사를 욕할 수는 있어도, 공식적인 자리에서 한참 선배이자 간부급인 부장검사에 대해 비난을 하는 것을 검찰 생활하는 동안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며 “시대가 바뀌면서 조직문화도 바뀌어야 한다고는 하지만, 검사동일체 원칙(검사는 검찰권 행사에 있어서 검찰총장을 정점으로 상하복종관계에 있다는 원칙)이 중요한 우리 조직에서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안타까워했다.
특히 검사들은 이 과정에서 양요안 부장검사가 비난받는 것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사건과 전혀 관계가 없는 양 부장검사가 검찰 내부망에 반박 글을 올린 것은, 스스로 원해서 한 게 아니라 대검찰청의 지시로 이뤄졌기 때문.
검찰 고위 관계자는 “북부지검 검사(임은정)가 한 인터뷰가 문제가 됐으니, 북부지검 형사부장 중 가장 선임인 양 부장검사가 대표로 정정 글을 올리라고 대검찰청이 지시해서 이프로스(검찰 내부망)에 인터뷰 내용을 반박하는 글을 올렸다가 임은정 검사를 비롯, 후배들에게 비난을 받게 된 것”이라며 “정작 임은정 검사의 인터뷰를 허락한 대검은 논란이 발생하자 아무런 수습도 하지 않은 채 뒤로 쏙 빠져 있는 상황”이라고 비판했다.
특히 그는 “이런 인터뷰는 진행 전에 총장에게도 당연히 보고가 올라갈 수밖에 없다”며 “그렇다면 인터뷰 자체를 허락한 문무일 총장이 간부급 검사들과 이하 검사들의 갈등으로 더 확대되는 것을 수습해야 하는데 오히려 ‘나 몰라라’ 하며 손을 놓고 있는 게 맞느냐”고 토로했다.
서환한 기자 bright@ilyo.co.kr
“아무 것도 하지 말라굽쇼?” 검찰 내부 문무일 총장 비판론 문무일 검찰총장의 ‘개혁’ 방향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개진되고 있다. 특히 앞선 정권 때 ‘적폐’로 지목됐던 특수 수사(인지 수사)를 줄이겠다는 문무일 총장의 정책 방향과 발언을 문제 삼는 검사들도 있다. 실제 문무일 총장은 취임 후 첫 검찰 인사를 낸 뒤, 전국 특수 수사를 관할하는 간부급 검사들을 불러 모았는데, 이때 문 총장은 “지금 (정치) 분위기는 아무 것도 하지 말고 가만히 있어야 할 때”라며 특수 수사를 하지 말라는 뉘앙스의 지시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자리에 참석했던 한 검사는 “새로운 정부가 출범하는 과정에서 정치적으로 검찰이 개혁의 대상이 된 상황이라고는 하지만, 총장이 직접 특수부 검사들을 모아놓고 ‘분위기가 안 좋으니 아무 것도 하지 말고 가만히 있어라’고 발언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검찰이 뇌물과 같은 인지 수사 영역에서 손을 놓자, 뇌물이 가장 만연했던 건설업계 로비스트들을 중심으로 조금씩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며 “문 총장 지시 때문에 알면서도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털어놨다. 특히 그는 “내년 보궐선거도 있는 상황에서 정치인들을 상대로 한 뇌물 수사는 더더욱 할 수 없으니, 결국 ‘범죄 척결’이라는 검사 본연의 업무를 하지 말라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특수통’ 출신인 문 총장이 특수 수사 영역만 챙긴다는 비판도 나온다. 실제 문 총장 취임 후 첫 간부 인사에서 특수, 형사부 출신 검사들이 대거 중용됐는데, 이때 대부분 ‘좌천성 인사’를 당했던 공안부를 위한 별도의 자리는 없었다. 공안 수사를 담당해 온 한 부장검사는 “특수부 검사들은 문 총장이 특수 수사 검사들을 모으는 자리를 통해 변화하는 검찰 분위기를 설명하는 자리라도 가졌지만, 공안 수사를 하는 검사들을 상대로는 그런 자리조차 없었다”며 “혹시나 했던 우려(공안 수사 대거 축소)가 현실이 되어 가는 분위기”라고 지적했다. 법조계에선 앞선 정권과 다를 바 없는 ‘정치 검찰’이 되어가고 있다고 비판이 고개를 들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또 다른 검찰 관계자는 “앞선 정부에서 검찰이 가장 잘못한 것은 박근혜 정권의 눈치를 보고, 정권이 원할 것 같은 방향에 맞춰 먼저 결과를 만들어 냈기 때문인데 이번 검찰 수뇌부들 역시 앞선 검찰의 적폐를 그대로 답습하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서] |
‘소신발언’ 임은정 검사 누구? 백지구형 지시 거부하고 무죄구형 44살(1974년 생), 사법연수원 30기, 부산 남성여고·고려대 졸업, 서울중앙지검·의정부지검 등 근무, 현 서울북부지검 부부장검사 재직. 법조인 검색 사이트에 나오는 임은정 검사의 경력이다. 하지만 임 검사를 보통의 법조인들처럼 학력·경력만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언론에 나오기를 꺼리고, 보수적이기로 유명한 조직(검찰)의 눈치를 보는 보통의 검사들과는 다르기 때문. 임은정 검사가 처음 언론에 등장한 것은 영화 <도가니>로 유명한 광주 인화 사건의 공판 검사를 맡으면서부터지만, 이름을 널리 떨치게 된 것은 지난 2012년 민청학련 사건 재판 때다. 긴급조치 위반으로 기소됐던 사건에는 백지구형(무죄이기 때문에 구체적인 양형을 재판부에 요청하지 않는 것)을 하는 관행을 깨고 재판부에 무죄를 선고해달라고 요청했기 때문. 이 과정에서 부장검사 지시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공판검사가 본인에서 다른 검사로 교체되자 임 검사는 재판에 들어가 법정 문을 잠그기까지 했다. 정직 4개월의 중징계를 받은 임 검사는 요직으로 불리는 서울중앙지검에서 쫓겨나, 창원지검(2013년 2월~2015년 2월), 의정부지검(2015년 2월~2017년 8월)으로 좌천성 인사를 당했다. 하지만 임 검사는 이후 SNS을 통해 ‘검찰 개혁’에 대해 끊임없이 소신 발언을 쏟아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검사 자살 사건 때마다 검찰을 비판하고 쇄신을 주장했다. 그리고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서울북부지검 부부장검사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검찰 내에서 임 검사에 대한 평은 양극으로 나뉜다. 젊은 검사들을 중심으로 “구태의연한 조직의 적폐를 바꾸기 위해 용기를 낸 선배”라는 평도 있지만, “아주 작은 부분의 문제를 전체의 문제인 양 떠들어 열심히 일하는 검찰 전체의 명예를 실추시킨 검사”라는 비판도 적지 않다. [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