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올해 초 하이트진로에 대한 일감몰아주기 조사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이트진로 홈페이지 캡처
하이트진로그룹 계열사 서영이앤티는 생맥주의 온도를 차갑게 관리하는 맥주냉각기를 제조·판매하는 업체다. 금융감독원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기준 서영이앤티의 지분은 박문덕 하이트진로 회장이 14.69%, 형 박문효 하이트진로산업 회장이 5.16%, 장남 박태영 하이트진로 부사장이 58.44%, 차남 박재홍 하이트진로 상무가 21.62%를 소유하고 있다. 총수 일가의 지분율이 99.9%로 사실상 가족회사다.
서영이앤티는 하이트진로그룹의 지원사격을 받으며 몸집을 키워왔다. 서영이앤티와 하이트진로그룹 계열사의 거래액은 2012년 기준 1087억 원으로 전체 매출의 97.24%에 달했다. 2013년 공정거래법이 개정되면서 일감몰아주기 규제가 강화되자 서영이앤티의 전제 매출 대비 내부 거래 비중은 2014년 40%, 2015년 33%, 지난해 28%로 하락세를 보였다. 이를 근거로 하이트진로는 그동안 공정위의 일감몰아주기 의혹에 대응해왔다.
하이트진로의 맥주사업이 최근 몇 년간 적자에 시달리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단순히 수치로만 판단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하이트진로는 지난 9월 29일 공시를 통해 맥주생산 효율화를 위해 맥주공장 3곳 중 1곳의 매각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맥주업계 한 관계자는 “과거 1위였던 하이트진로는 ‘드라이D‘, ’맥스’ 등 야심차게 내놓은 신제품이 부진에 시달리며 난항을 겪고 있다”며 “맥주사업을 축소하면 당연히 맥주기자재 관련 사업 규모도 작아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현행 공정거래법은 자산총액 5조 원 이상 기업집단에 속해 있고 총수 일가 지분이 상장사는 30%, 비상장사는 20% 이상인 계열사가 내부거래 비중이 거래상대방 전체 매출액의 12%를 넘을 경우 일감몰아주기로 규정한다. 또 연간 거래 총액이 200억 원 이상이어도 제재 대상이다. 올해 기준 자산 5조 5000억 원의 하이트진로그룹의 비상장사이자 총수 일가 지분이 99.9%인 서영이앤티는 이에 해당한다. 2015년 7월 공정위가 하이트진로 본사와 서영이앤티 사옥에서 현장조사를 벌인 이유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다.
하이트진로 사정에 정통한 한 인사는 “올해 3, 4월에도 공정위에서 서영이앤티와 하이트진로에 대한 조사가 있었다”며 “하이트진로 말고도 비슷한 안건으로 다른 대기업도 올해 조사를 받았는데 두 곳 모두 아직 조사 결과가 발표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추가조사를 벌였음에도 공정위에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자 그동안의 조사에서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한 것 아니냐는 견해도 나온다. 공정위 관계자는 “조사는 완료됐고 현재는 안건이 위원회에 상정된 상태”라며 “조사 분량이 방대해서 발표가 지연되고 있다는 것 외에 아직 심의 중인 사안에 대해 지연 이유, 결과 발표 시기 등을 밝히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서영이앤티가 일감몰아주기 논란을 잠재우기 위한 방편으로 사업다각화를 추진해왔다는 의혹도 제기된다. 전체 매출 규모를 늘려 내부거래율을 낮추려고 한다는 것이다. 서영이앤티는 2013년 이후 키즈카페, F&B 유통 등 사업 영역을 대폭 늘려왔다. 그러면서 2014년 507억 원으로 2012년 대비 반토막났던 서영이앤티의 매출은 지난해 744억 원까지 늘었다. 서영이앤티와 하이트진로 계열사의 총 거래액은 2014년 204억 원에서 지난해 210억 원으로 늘었지만, 매출이 늘면서 같은 기간 내부거래 비중은 40%에서 28%로 떨어졌다. 수치상 내부거래 비중은 줄었지만 거래 총액은 오히려 증가한 것이다.
특히 2014년 실적이 부진했던 서영이앤티가 갑작스럽게 키즈사업에 뛰어든 건 의심스럽게 볼 수밖에 없다는 반응이 적지 않다. 서영이앤티는 키즈카페, 캐릭터 사업을 하는 ‘딸기가좋아’를 인수하면서 전국에 지점을 14개까지 늘렸다. 하지만 서영이앤티는 지난해 말 경영효율화를 이유로 딸기가좋아를 매각한 것으로 확인됐다. 하이트진로 관계자는 “사업다각화 측면에서 시작했지만 전문성에서 아무래도 한계가 있고 기존 사업에 집중하기 위해 매각했다”고 밝혔다.
하이트진로는 국내에는 맥주 냉각기 제조업체가 거의 없어 서영이앤티 거래 비중이 높을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하이트진로 다른 관계자는 “서영이앤티 제품의 품질은 업계에서도 인정해주는 데다 국내 제조업체도 거의 없어 경쟁사들도 수입품을 쓰는 실정”이라며 “게다가 서영이앤티는 규모가 커 제품 수급 안정성도 높고 사후관리를 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업체”라고 했다. 경쟁사인 오비맥주는 따로 맥주냉각기 관련 사업부나 계열사가 없다. 오비맥주 관계자는 “맥주 냉각기도 일반형과 스마트형 등 종류가 다양해 공개입찰을 통해 여러 협력사와 거래하고 있다”고 밝혔다.
재계에서는 계속 문제로 지적되면서도 하이트진로가 서영이앤티에 일감을 몰아주는 이유는 후계작업 때문이라고 보는 사람이 적지 않다. 특히 장남 지분이 과반인 가족회사에 일감을 몰아줘 덩치를 키운 후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힘을 보태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현재 서영이앤티는 하이트진로홀딩스 지분 27.66%를 소유해 박문덕 회장(29.49%)에 이어 2대주주로 올라 있다. 내부거래를 통해 서영이앤티의 덩치와 가치를 키우면 서영이앤티→하이트진로홀딩스→하이트진로의 지배구조를 더욱 공고히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서영이앤티의 최대주주인 박태영 부사장의 위치도 중요해질 수 있다.
서영이앤티를 통해 하이트진로그룹 오너 일가는 배당 이익도 본 것으로 나타났다. 서영이앤티는 2012년 보통주 1주당 2000원의 배당을 실시했다. 또 2013년 1000원, 2014년 600원, 2015년 400원으로 배당금이 줄어들다 지난해엔 다시 주당 2000원을 배당했다. 내부거래를 통해 오너 일가의 가족회사의 가치를 상승시키고 배당으로 오너 일가의 배도 불린 셈이다.
한편, 공정위의 일감몰아주기 제재가 강화되면서 서영이앤티와 지주사인 하이트진로홀딩스의 합병 가능성도 흘러나온다. 하이트진로 관계자는 “하이트진로홀딩스와 합병은 그냥 소문일 뿐 현재 전혀 계획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박혜리 기자 ssssch33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