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사회가 뒤늦게 밝혀지고 있는 끔찍한 연쇄살인의 공포에 떨고 있다. 지난 11년 동안 무려 9개 주 25개 도시에서 발생한 40건의 사건이 개별적으로 일어난 것이 아니라 연쇄살인일지도 모른다는 추측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피해자는 모두 20대 초 중반의 젊은 남자 대학생들로 거의 대부분 술에 취한 채 강물이나 호수에 빠져 익사했다. 이미 대부분의 사건은 경찰에 의해 단순한 사고 내지는 실종으로 수사가 종결됐다.
하지만 전직 뉴욕 경찰 출신인 케빈 개논과 앤소니 듀어트의 생각은 달랐다. 단순한 우연이라고 보기에는 의심쩍은 부분이 많다고 생각했던 두 사람은 은퇴 후 이 사건을 조사하는 데에만 매달려왔다. 그리고 마침내 놀라운 사실 둘을 발견했다. 하나는 사건 현장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고 있는 ‘스마일’ 낙서며, 또 다른 하나는 이 사건이 단독 범행이 아니라 ‘갱단’에 의해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는 ‘집단 범행’이라는 것이다.
지금까지 오하이오, 인디애나, 펜실베이니아, 위스콘신, 아이오와 등 대부분의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스마일’ 낙서는 스프레이로 그려진 일종의 그래피티 형태였다. 주로 다리 밑이나 난간에 그려져 있으며, 적어도 열두 군데 이상에서는 동일한 모양이, 그리고 나머지 현장에서는 열두 가지의 변형된 모양들이 발견됐다.
이에 대해 개논과 듀어트는 “이러한 특징은 연쇄 살인범들 사이에서 잘 나타나는 행동 양식이다. 그들은 ‘일을 저질러서 기쁘다’는 것을 표시하기 위해서 혹은 완전 범죄를 저질렀다는 일종의 과시욕으로 이런 짓을 한다”고 말한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스마일’ 표시가 시체가 ‘발견된 곳’이 아니라 ‘던져진 곳’에서 발견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개논은 “이 사건을 조사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점은 시신이 발견된 곳을 수색하는 것이 아니다. 피해자들이 실종된 곳, 즉 시신이 강물에 던져진 곳을 찾아 조사해야 증거를 확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와 반대로 경찰은 이 ‘스마일’ 표시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다. 사건이 발생한 지 이미 수년이 지났기 때문에 그 후에 그려졌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스마일’ 얼굴과 대학생들의 죽음 사이에 연관이 있다고 굳게 믿고 있는 개논과 듀어트는 아직 조사가 마무리 되지 않은 19건의 사건을 수사하는 데 박차를 가하고 있으며, 이 중 적어도 10~15건은 ‘스마일’ 얼굴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 미국 전역에서 의문의 죽음을 당한 20대 남자 대학생들과 왼쪽사진은 사망장소 인근에서 발견된 ‘스마일’ 낙서. | ||
그의 말처럼 분명한 것은 놀랍게도 40건의 사건들 사이에 뚜렷한 공통점들이 있다는 것이다. 한국계인 스콧 라델을 제외하고는 모두 백인에 20대 초·중반 대학생이라는 점, 그리고 공부와 운동을 잘하는 ‘킹카’라는 점 등이 그렇다. 또한 대부분은 밤에 술집에서 친구들과 술을 마시다가 실종됐으며, 며칠 혹은 몇 달 후 강가나 호수에서 익사한 채 발견됐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무작정 우연으로만 치부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이에 1997년 이래 열두 건의 비슷한 사고가 발생했던 위스콘신주에서는 한때 연쇄 살인범의 소행이라는 소문이 돌기도 했으며, 당시 경찰은 불안에 떠는 시민들을 안심시키기 위해서 진땀을 빼야 했다.
가장 먼저 희생된 것으로 추정되는 패트릭 맥닐(당시 20)은 지난 1997년 뉴욕의 한 바에서 마지막으로 목격됐다. 당시 친구들과 술을 마신 후 바를 나섰던 맥닐은 그 후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결국 맥닐은 50일 후 브루클린 인근의 강가에서 숨진 채 발견됐고, 경찰은 “술에 취해 강에 발을 헛디뎌서 빠진 것”이라며 수사를 종결했다. 하지만 당시 현직에 있던 개논은 “맥닐의 시신이 맨해튼에서 브루클린까지 흘러 내려왔는데도 불구하고, 어떻게 몸에 상처 하나 없었을까”라며 의문을 제기한 바 있다.
40건의 사고 중 유일하게 ‘사고’가 아닌 ‘살해’로 추정된 채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크리스 젠킨스(당시 21)의 경우에는 수상한 점이 더욱 많다. 2002년 미네아폴리스 시내의 바에서 술을 마신 후 사라진 그는 4개월 후 미시시피 강에서 시체로 발견됐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보통 익사한 시체와 달리 젠킨스의 시신은 얼굴을 위로 향한 채 떠 있었고, 괴상하게도 양팔을 엇갈려서 가슴에 얹고 있었다. 이에 경찰은 살해됐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수사에 총력을 기울였지만 여태껏 이렇다 할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2005년 친구들과 위스콘신주의 한 바에서 술을 마신 후 사라졌던 조슈아 스넬(당시 22)은 실종되던 날 밤 “너무 무섭다. 모르는 사람들에게서 협박을 당하고 있다”는 아리송한 말을 했다. 맥주를 마시다가 “여자친구네 집에 가기로 했다”면서 자리를 뜬 스넬은 새벽 2시무렵 휴대폰으로 여자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곧 집 앞에 도착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것이 마지막 통화였다. 그리고 4일 후 바에서 3㎞도 채 떨어지지 않은 치페와 강에서 그의 시신이 발견됐다.
희생자 중 유일하게 동양인인 한국계 학생 스콧 라델(당시 21)은 여태 시신도 발견되지 않은 채 미궁 속으로 빠져 있다. 목격자도 없이 말 그대로 공중으로 사라진 것이다.
2006년 2월 사건 당일 밤, 라델은 ‘프레스 바’에서 친구들을 만나기로 했다. 휴대전화로 길을 물으면서 찾아오고 있던 그는 친구들과 모두 세 차례 통화를 했다. 하지만 친구가 그에게 네 번째로 통화를 시도했을 때 이미 전화기는 꺼져 있었고,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이렇게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40명의 젊은이들은 모두 정말 실수로 강에 빠져 숨진 걸까. 만일 개논과 듀어트의 주장대로 연쇄 살인범의 소행이라면 앞으로 또 누가 더 희생될지 모르는 일이다. 게다가 지금까지 100% 완전범죄였다는 사실까지 생각하면 더욱 소름이 돋을 따름이다.
김미영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