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초 국정원 적폐청산 태스크포스(TF) 등을 통해 국정원이 ‘좌파 연예인 블랙리스트’에 오른 유명 연예인 A의 이미지 실추를 위한 심리전 계획을 수립해 상부에 보고했다는 내용이 알려졌다.
문제는 바로 보고서 내용인데 여기에는 A가 마약류인 수면마취제 프로포폴을 투약했다는 확인되지 않은 소문, 다시 말해 악성 루머를 인터넷과 증권가 정보지에 익명으로 유포한다는 계획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로 당시 연예계에서 A의 프로포폴 투약설이 화제가 되진 않았지만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은 당시 국정원이 실제로 A의 이미지 실추를 위한 심리전을 전개했는지 여부에 대한 확인 작업에 돌입했다.
배우 문성근이 18일 오전 블랙리스트 피해자로 조사를 받기위해 참고인 신분으로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으로 출석하고 있다. 최준필 기자
이미 혐의가 드러나 검찰 기소가 이뤄진 부분도 있다. 지난 11일 서울중앙지검은 당시 국정원 심리전단 팀장(3급)이었던 유 아무개 씨를 구속 기소했다. 유 씨는 배우 문성근과 김여진이 부적절한 관계를 하고 있는 것처럼 합성사진을 만들어 보수성향 인터넷 카페에 유포한 혐의를 받고 있다. 온라인에선 2000년대 초반부터 연예인 합성사진이 만들어지기 시작해 수없이 유통되고 있다. 대부분 조악한 합성이라 화제가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런데 그런 일을 국정원에서 주도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연예계는 큰 충격을 받고 있다.
연예관계자들은 국정원이 프로포폴 투약설을 유포하려 한 점이 매우 지능적이며 악의적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마약 투약설은 스폰서 관계 등을 비롯한 연예인 성매매, 불륜설 등 난잡한 사생활 등과 함께 최악의 루머로 손꼽힌다. 그만큼 연예인의 이미지 실추와 직결된 사안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당시 연예계는 프로포폴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많이 쓰이던 프로포폴이 2010년 8월 마약류로 지정되면서 그 전까지 합법적으로 프로포폴을 투약하던 연예인들이 이를 끊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여러 명의 연예인이 프로포폴 불법 투약 혐의로 처벌을 받기도 했다. 보고서 내용이 사실이라면 국정원은 이런 혼란한 분위기를 틈타 A 관련 악성 루머를 만들어서 유포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 당시 소속 연예인이 프로포폴 투약으로 사법처벌을 받은 한 중견 연예기획사 임원의 이야기다.
“그런 악성루머를 만들고 유포하려 했다는 부분보다 더 무서운 건 표적수사 의혹이에요. 일반적인 악성 루머는 누군가가 재미로 지어내거나 해당 연예인 내지는 그 소속사를 겨냥해 악의적으로 퍼트리곤 합니다. 그런데 그런 경우는 루머가 루머로 끝나기 때문에 지나가는 소나기일 수 있죠. 그런데 국정원에서 그랬다면 얘기가 전혀 달라집니다. 일반인이 아닌 국정원이라면 검경의 수사로 이어지는 것도 가능합니다. 만약 실제로 A가 프로포폴과 조금이라도 연관이 있었다면 루머 유포는 기본이고 경찰이나 검찰의 집중적인 수사까지 받았을 수도 있습니다. 뭐라도 하나 나왔다면 사법처벌을 피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그가 실제로 프로포폴을 투약했더라도 그게 마약류 지정 이전이면 사법처벌 대상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프로포폴 투약설을 조사하겠다고 검찰로 소환하고 그 사실을 언론에 흘려 기자들이 몰려들었다면 A에겐 정말 치명타가 됐을 겁니다. 제 생각에 A는 프로포폴 옆에도 가지 않았고 그래서 엄청난 위기를 넘긴 게 아닌가 싶습니다.”
기본적으로 정보를 다루는 기관인 국정원이 연예인 관련 악성 루머를 제작 및 유포했다면 그 여파는 어마어마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억지로 만든 악성 루머는 아닐지라도 일반인들이 잘 모르는 고급 연예계 정보를 의도적으로 유출, 유포하는 상황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게 연예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한 중견 연예기획사 대표의 말이다.
“기본적으로 국정원에선 연예계 관련 정보도 수집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 역시 국정원 직원을 만난 경험이 많고 제 주위에도 그렇습니다. 물론 거기서 원하는 건 전문적인 연예계 정보가 아닙니다. 본인들이 다루는 주요 사안에 연루돼 있는 연예인 정보가 필요한 거죠. 대표적으로 연예인과 정관계 고위층 인사와의 부적절한 관계 같은 겁니다. 아마 일반인들은 전혀 모르고 연예계에서도 극소수만 아는 정보도 그쪽에선 꽤 확보하고 있을 겁니다. 만약 블랙리스트에 오른 연예인과 관련된 고급 정보도 국정원에서 갖고 있었다면 그런 것들도 유출됐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오싹하네요.”
연예인 블랙리스트는 연예계와 직접적으로 연관돼 있지만 정치적인 사안이라 대다수의 연예인과 연예관계자들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었다. 그렇지만 이처럼 공공의 적인 악성 루머까지 연관돼 있다는 정황이 드러나면서 연예계도 크게 놀라고 있는 분위기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
조재진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