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동성애 코드 소문과 괴담으로 유명한 동서울터미널 3층 화장실.
[일요신문] 1990년부터 ‘서울의 관문’으로 많은 이들이 이용하는 동서울터미널. 이곳은 역대 최장기간 연휴라는 지난 추석에도 여지없이 많은 이용객들로 붐볐습니다. 하지만 연휴를 전후해 ‘동서울터미널 화장실 절대 가지 말라’는 글이 온라인에서 퍼지며 이목을 집중시켰습니다. 논란이 된 글 작성자는 동서울터미널 2층과 3층 남자 화장실에서 동성애자들이 만난다고 주장했습니다. 몰카 촬영이 이뤄지고 있다는 내용도 있었습니다.
# 동서울 터미널 화장실, 몰카 위험지대이자 동성애자 만남의 장소?
이 같은 논란이 이어지며 과거 작성된 글들도 주목을 받았습니다. 동서울터미널 화장실과 관련된 괴담은 과거부터 종종 온라인에서 떠돌고 있었습니다. 일부 동성애자가 화장실 칸막이에 구멍을 뚫어 음란행위를 하거나 몰카를 찍는다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간단한 검색으로 실제 몰카도 발견됐습니다. 대부분 군복을 입은 남성이 화장실에 앉아 휴대폰 화면을 보며 자위행위를 하는 모습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같은 내용을 사실인지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일부 댓글에서는 “언제 적 이야기를 하냐”며 글쓴이를 향한 핀잔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이에 <일요신문i>는 지난 11일 저녁 동서울터미널 화장실을 직접 찾았습니다. 오후 9시가 가까워진 시간, 동서울터미널은 낮에 비해서는 다소 한산한 모습이었습니다.
도착하자마자 논란이 됐던 2층 화장실로 곧장 향했습니다. 2층은 2개의 화장실이 있습니다. 두 화장실 모두 특별할 것이 없어 보였습니다. 1990년에 완공된 건물이기에 화장실 시설이 다소 노후했다는 느낌은 지울 수 없었지만 청결하게 관리되고 있었습니다. 양쪽 화장실 변기에 각각 약 10분간 앉아있었지만 이용자들은 각자의 볼일을 보기에 바빴습니다.
일부에서 주장한 ‘글로리 홀’로 불리는 칸막이에 뚫린 구멍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화장실 칸막이는 금속 재질로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온라인의 괴담을 읽고 마음을 졸이며 현장을 찾았지만 이내 긴장감이 풀어졌습니다.
동서울터미널 화장실 칸막이 내부에 부착된 스티커.
다만 다른 화장실과의 차이점은 신체접촉과 몰카를 경고하고 있는 스티커가 부착돼있다는 점입니다. 광진경찰서에서 부착한 이 스티커는 이 같은 행위가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었습니다. 화장실 한편에 피임도구 전용 자판기도 눈길을 끌었습니다.
실제 온라인에서도 2층 화장실에 대한 언급은 적었습니다. 3층에 일부 동성애자들의 이용이 잦다는 증언이 있었습니다. 소셜미디어에서는 스스로를 동성애자라고 밝힌 이용자가 동서울터미널 3층에서 짧은 만남을 의미하는 ‘번개’를 제의하는 게시글이 눈에 띄기도 했습니다. 동성애자가 이용하는 스마트폰 대화 어플리케이션에서는 “동서울터미널 3층 화장실에서 만나서 구강성교를 하자”는 대화를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 3층, 유동인구 현저히 적지만 화장실만큼은 활발…전등갓에 비친 눈동자에 화들짝
같은 시각 터미널 3층 유동인구는 1, 2층보다 현저히 적습니다. 1층은 시외버스 터미널, 2층은 고속버스 터미널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반면 3층은 커피 전문점과 스크린 야구장만이 저녁시간까지 운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외 사무실 등은 모두 문을 닫은 상태였습니다. 그럼에도 남자 화장실을 출입하는 인원은 2층 못지않았습니다. 3층 한쪽 화장실에는 휴대폰 화면을 들어다보며 화장실 내부에 서있는 남성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이 동성애자 인지는 알 수 없지만 각자 용변을 보려 화장실을 찾은 1, 2층 화장실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습니다.
3층 화장실에도 2층과 마찬가지로 신체접촉과 몰카를 경고하는 스티커가 있었습니다. 문을 걸어 잠그고 좌변기에 앉아보니 잠금장치 주변에 낙서가 눈에 띄었습니다. ‘구강성교 해주겠다. 3번 노크 하면 문을 열어라. 20~30대’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이외에도 여기저기에 많은 글자가 적힌 흔적이 있었지만 모두 지워져 있었습니다. 터미널 측에서 화장실 청결관리는 물론 낙서 제거에도 노력을 한 흔적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좌변기에 앉아서 시간을 보내자 이내 옆칸에 사람이 앉았습니다. 장운동이 활발했던 2층 화장실 이용자들과 달리 이 칸에서는 별다른 소리가 나지 않았습니다. 이내 신체가 반복운동되는 미세한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러던 중 이용자는 담배를 한 대 피워 물었고 이전의 소리가 반복됐습니다. 이 같은 상황은 20분 이상 지속됐습니다. 중간에 미세하게 칸막이를 두드려 노크를 하는듯한 소리가 들리기도 했습니다. 정확한 의도를 파악하기는 어려웠습니다. 소리의 정체가 궁금했지만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는 없었습니다. 이외에도 화장실에는 터미널 건물 3층을 이용하는 사람에 비해 많은 이들이 오가는 발소리가 들렸습니다.
동서울터미널 화장실 내 설치된 전등갓. 전등갓은 반사가 잘 되는 알루미늄 재질로 화장실 안과 밖을 살피기 용이했다.
수시로 고개를 들어 이를 확인하던 중 화장실에 설치된 조명에서 특이한 점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이곳 화장실 깊숙한 쪽에는 길쭉한 형광등이 설치돼 있는데, 전등갓이 광택이 있는 금속재질로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전등갓이 마치 거울과 같이 비쳐 칸막이 너머를 볼 수 있었습니다. 전등갓에 굴곡이 있어 비춰지는 물체 형태가 또렷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칸막이 밖에 서 있던 남성이 이를 올려다보고 있어 그와 눈이 마주쳤다는 것은 확실하게 알 수 있었습니다. 눈이 마주친 이후 서둘러 화장실을 빠져나왔습니다.
3층에 있는 커피 전문점에 있던 남성은 “최근에 온라인에서 이곳 화장실에 대한 글을 읽었다”며 “그걸 읽어서 그런지 유난히 3층 남자 화장실에 사람이 많이 드나드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는 벽이 유리로 된 커피 전문점에 화장실 입구 방면을 향해 앉아있었습니다.
터미널 2층과 3층에서 영업 중인 상인들은 “과거부터 그런 얘기는 종종 들어본 적은 있지만 화장실 이용에 특별히 불편한 점은 못 느꼈다”고 말했습니다.
다음날 낮 시간 다시 찾은 터미널에는 군인들로 붐볐습니다. 이들은 터미널 화장실과 관련된 괴담에 대해 대체로 “그동안은 몰랐다”면서 “휴가 때만 이곳을 이용하니까 자주 올 일은 없지만 앞으로 화장실 갈 때 신경이 쓰일 것 같다. 카메라를 조심해야겠다”고 말했습니다.
터미널 관계자들은 <일요신문i>와의 통화에서 한 목소리로 화장실 괴담에 대해 “잘 모르는 일”이라고만 말했습니다. 시설관리 관계자나 경비 관계자 모두 마찬가지였습니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