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와 의원들이 9월 29일 오후 서울역에서 추석 귀성길에 오른 시민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박은숙 기자
“진보진영에 ‘추미애(더불어민주당 대표) 리스크’가 있다면, 보수진영에는 ‘홍준표 리스크’가 있다.” 최근 여의도 정국에선 이 같은 말이 횡행한다. 10월 10일로 취임 100일을 맞은 홍 대표 리더십을 평가 절하한 말이다. 지난 5·9 대선 참패 후 “단칼에 환부를 도려내겠다”며 백의종군 대신 한국당 혁신에 나선 홍 대표의 100일 성적표는 초라하다. 일부 여론조사에서 당 지지도는 소폭 상승 내지 현상유지를 기록했지만, 인적혁신도 조직혁신도 이뤄내는 데 실패했다.
홍 대표의 당무 복귀 첫 신고작은 ‘정치사찰’ 의혹 제기였다. 홍 대표는 10월 9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에서 “(현 정권에서) 내가 누구하고 통화하는가를 알아보려고 통신 조회를 한 것 같다. (통신사의 통보를) 받아보니 심지어 군에서도 했다. 기무사일 것”이라며 “이것은 정치사찰이자 정치공작 공화국이다. 파렴치한 짓은 더는 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홍 대표 수행비서에 대한 통신 조회는 ▲2016년 12월 경남양산경찰서 ▲올해 2월 경남지방경찰서 ▲3월 서울중앙지방경찰청 ▲4월 경남지방경찰청 ▲8월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같은 달 21일(이상 2017년) 육군본부 등 총 6곳이다. 매달 1번꼴로 통신 조회를 당한 셈이다.
하지만 이 중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4월까지 벌어진 4건은 박근혜 정권 때 이뤄진 일이다. 일각에선 홍 대표가 헛다리를 짚었다는 비판부터 박 전 대통령과 소원했던 홍 대표에 대한 친박계의 모종의 움직임이 아니냐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다만 대선 막바지인 4월과 정부 출범 이후인 8월 서울중앙지방검찰청 등의 통신 조회의 진실 여부는 미궁 속에 빠졌다.
추미애 민주당 대표는 “전형적인 낡은 물타기 공세”라며 “적폐 청산을 정치 보복으로 호도하는 정쟁 만들기가 도를 넘었다”고 반격했다. 논란이 일자 문 대통령은 10월 10일 “어떤 상황인지 정확히 파악하고 정성을 다해 상황을 있는 그대로 설명해 드려라”고 지시했다.
한국당의 움직임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정치 보복과 원전 졸속을 비롯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최저임금 급속 인상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평화 구걸 및 북핵 위기 초래 ▲공정거래위원회를 통한 기업 압박 ▲노조 공화국 ▲소득주도성장으로 사회주의 배급제도 추진 ▲정치보복 ▲방송장악 ▲인사참사 ▲퍼주기 복지 ▲예고된 일자리 대란 등 13가지를 문재인 정부 실정으로 규정했다.
이는 내년 6·13 지방선거를 겨냥한 보수우파 단결을 통한 생존전략과 무관치 않다. 문 대통령과 민주당의 지지선이 흔들리지 않은 상황에서 보수 분열로는 공멸 수순을 밟을 수밖에 없다는 인식에서 파생한 고육지책이라는 얘기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전 정권 실정이 드러나기 전에 적폐 프레임의 힘을 빼려는 선제공격”이라고 분석했다.
실제 홍 대표는 10월 11일 ‘보수대단결’을 촉구하고 나섰다. 홍 대표는 이날 “바른정당 전당대회(11월 13일) 이전에 형식에 구애되지 말고 대통합을 할 수 있는 길을 사무총장을 중심으로 공식적으로 시작해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그간 부정적이었던 바른정당과의 ‘당대당’ 통합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꺼질 위기에 처한 보수대통합 불씨를 살리고 흡수통합에 대한 우려를 불식한 1타2피 전략이다. 같은 날 양당 3선 의원들은 ‘보수대통합추진위원회’(통추위) 결성에 뜻을 모았다. 난기류를 만난 보수대통합의 작업이 시작된 셈이다.
그러나 갈 길은 멀어 보인다. 홍준표호 출범 이후 100일간 진행된 한국당의 혁신은 사실상 실패로 끝났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탈당 추진 등 일부 성과는 냈지만, 홍 대표가 친박계 좌장인 서청원·최경환 의원 등을 단칼에 내칠지는 미지수다.
특히 극우성향 류석춘 연세대 교수를 당 혁신위원장으로 임명, 중도 외연으로 확장에 실패한 점도 딜레마로 꼽힌다. 류 교수는 혁신위원장에 맡자마자 탄핵 불복 발언으로 도마 위에 올랐다. 복당한 장제원 의원이 “탄핵 불복이 ‘개혁’이면, 난 청산대상 1순위”라고 공개 비판했을 정도다. 한 분석가는 “보수대통합에 대한 국민적 여망이 없는 상황에서 세력통합만 하면 살아남을 수 있다는 구태정치가 지지를 받을지는 미지수”라고 평가 절하했다.
보수대통합의 데드라인은 바른정당 전당대회(11월 13일) 후보등록 전인 10월 26일이다. 후보 등록 이후에는 통합 논의의 실익이 없다는 판단에서다. 자강파 유승민 호가 당권을 장악할 경우 당 원심력은 당분간 소강 국면에 접어든다. 통합 추진 시도가 막 출범한 ‘지도부 흔들기’로 비친다면, 보수진영 전체가 내분에 휩싸이면서 공멸을 자초할 수도 있다. 반대로 바른정당 자강파와 통합파가 결별하면 상황은 달라진다. 한국당과 바른정당 통합파에 국민의당 일부까지 가세하는 보수중도통합이 본격화한다면, 마지막 승부수를 띄울 수 있는 한 번의 기회는 있을 것으로 보인다.
성공 커트라인은 ‘6곳 승리+알파(α)’다. 앞서 홍 대표는 보수진영 필승 지역으로 17곳 광역단체지역 가운데, 부산·인천·대구·울산·경북·경남을 꼽았다. 이 6곳은 한국당 소속 현역 지자체장이다. 그는 “6개 광역단체장을 지켜내지 못하면 대표직을 사퇴하겠다”고 승부수를 띄웠다. 다만 성공 여부는 미지수다. 한 분석가는 “한국당과 바른정당 통합파의 단일대오는 문 대통령의 지지도 급락이 수반되지 않으면, 일장춘몽에 그칠 것”이라며 전망했다.
윤지상 언론인
보수대통합 변수 ‘무대’ 역할론 주목 보수대통합 변수 중 하나는 ‘무대(무성대장의 줄임말) 역할론’이다. 바른정당 최대 주주인 김무성 바른정당 의원은 통합파의 대표 격이다. 김 의원 행보는 원심력과 구심력이 혼재하는 보수진영의 향로를 결정할 분수령으로 꼽힌다. 보수대통합의 다른 축은 자강파의 최전선에 선 유승민 의원이다. 김 의원이 보수대통합의 물꼬를 틀 키맨이라는 얘기다. 김 의원은 이혜훈 전 대표의 사퇴 이후 비상대책위원회 및 전당대회 전면 등판에 선을 그었다. 그는 9월 7일 ‘김무성 역할론’이 급부상하자, “뒤에서 돕겠다”며 전대 불출마를 공식 선언한 바 있다. 물밑에서 보수대통합을 위한 사전 작업을 하겠다는 시그널로 읽혔다. 김 의원의 통합안은 ‘중도보수통합’이다. 자유한국당은 물론, 국민의당 일부 인사까지 포함하는 ‘반 민주당’ 세력의 단일대오인 셈이다. 홍준표 한국당 대표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탈당 추진 등 ‘친박(친박근혜) 청산’에 드라이브를 건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김 의원 측도 통합의 전제조건으로 ‘친박 청산’을 제시했다. ‘무대 역할론’도 이 지점과 맞물린다. 김 의원은 추석 연휴 직후인 10월 10일 유 의원을 비롯해 주호영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 정병국 전 대표와 전격 회동했다. 보수대통합에 대한 이견만 노출했지만, 보수야당 내 통합파는 다음 날 ‘보수대통합 추진위원회’(통추위) 실무단 구성에 착수했다. 이철우 한국당·김영우 바른정당 의원이 주도한 이 모임에는 총 15명(한국당 11명+바른정당 3명)의 3선 의원이 참석했다. YS(김영삼 전 대통령) 승부수에 능한 김 의원이 마지막 승부수를 던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실제 김 의원은 차기 대선주자 지지도 조사에서 1위를 기록했던 2015년, 정치적 변곡점마다 YS식 승부수를 던졌다. 그는 당시 새누리당 대표였다. 특히 박근혜 정부의 아킬레스건이었던 공무원연금 개혁과 노동개혁, 친박과 비박(비박근혜) 갈등의 정점이었던 ‘유승민 사태’ 등에서 존재감을 과시했다. 그해 5월23일 야권 지지층의 물세례를 감수하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6주기에 참석한 것은 대표적인 ‘무대 스타일’로 회자된다. 김 의원은 통추위가 실무단 구성에 착수한 날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분당’ 가능성을 시사하며 사실상 승부수를 던졌다. 그는 “유 의원을 끝까지 설득해도 안 되면 분당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유 의원에게 사실상 최후통첩을 던진 셈이다. 딜레마도 있다. 검찰의 전 정권 국가정보원(국정원) 수사 타깃을 무대로 튼 것으로 알려지면서 김 의원의 입지는 한층 좁아진 상태다. 18대 대선 당시 김 의원은 새누리당(자유한국당 전신)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총괄본부장이었다. 그는 선거 과정에서 “2007년 남북정상회담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NLL(북방한계선) 포기 발언을 했다”며 사초 논란을 일으켰다. 자강파를 보수대통합 판으로 이끌 유인책이 없다는 점도 ‘무대 한계’로 지적된다. 전계완 정치평론가는 이와 관련해 “바른정당의 무게 중심이 유 의원으로 옮겨지는 상황에서 ‘김무성 역할론’의 효과는 제한적”이라며 “세력 규합 이상의 의미 찾기 어렵다”고 말했다. 자강파와의 전격적인 결별 선언 등 초강수를 던지더라도 통합파의 개별 탈당이나 흡수 통합의 운명을 피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