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 아무개 씨(여·28)는 지난 추석 황금연휴를 맞아 친구들과 함께 홍콩 여행을 마치고 10월 5일 새벽 3시경 인천공항에 도착해 집으로 돌아갈 교통편을 찾아보고 있었다. 새벽에는 공항 리무진 버스는 물론 지하철도 운행하지 않기 때문에 난감한 상황이었는데 한 남성이 홍 씨와 친구들에게 다가와서 “어디까지 가십니까?”라고 물었다.
이 남성은 ‘인천국제공항’이라는 글씨와 자신의 증명사진이 들어간 사원증을 목에 걸고 있었다. 그가 가리키는 콜밴에는 ‘INCHEON INTERNATIONAL AIRPORT(인천국제공항)’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었지만 “신림까지 8만 원”이라며 ‘바가지’ 요금을 제시했다. 홍 씨는 그제서야 그가 인천공항 직원을 사칭한 사실을 깨달았고 콜밴을 거절했다.
그러자 그는 타깃을 바꿨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출국장을 막 나온 외국인 3명에게 다가갔다. 외국인들은 그에게 “요금이 얼마냐”고 물었지만 그는 “일단 가보면 안다”며 말을 얼버무렸다. 하지만 외국인들은 인천공항 직원이라고 믿고 콜밴을 탈 수밖에 없었다.
인천국제공항에서 승객을 태우고 출발해 고속도로를 달리는 콜밴에 ‘에어포트 콜밴(AIRPORT CALLVAN)’이라고 쓰여 있다.
이 콜밴은 불법 영업을 하는 중이었다. 지난 여름과 황금연휴 등 성수기를 기점으로 이 같은 불법 콜밴(대형택시)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정용기 새누리당 의원에 따르면 인천공항 콜밴의 불법행위가 최근 2년 반 동안 무려 1251건이나 적발됐다.
이들은 특히 외국인 승객을 대상으로 미터기를 조작하는 등 요금을 속여 바가지를 씌운다. 물론 모든 콜밴이 그런 것은 아니다. 인천공항 직원을 사칭하는 콜밴 기사들이 주로 불법 행위를 저지르고 있다.
# ‘인천국제공항’ 사원증 걸고 사칭
인천국제공항이 공식 지정한 콜밴 서비스인 ‘인터내셔널 택시’ 기사들은 검정색 목걸이를 착용한다.
또한 공식 지정 택시와 콜밴 등에는 ‘INTERNATIONAL TAXI(인터내셔널 택시)’가 영문으로 적혀 있다. 인터내셔널 택시는 검정색이지만, 사칭 콜밴은 은색, 꽃담황토색, 검정색 등 다양한 색으로 도색을 한다.
사칭 콜밴에는 ‘인천국제공항’이 영문으로 써 있고 심벌이 그려져 있는 경우도 있는데, 실제 인천국제공항 공식 심벌과 비슷해 보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명백하게 다르다.
# 미터기 끄고 바가지 요금
인천공항이 공식 지정한 인터내셔널 택시가 아닌 일반 택시나 콜밴 등은 승객이 차량에 탑승하기 전에 요금을 먼저 제안하고 협상하며 부당 요금을 요구해선 안 된다. 하지만 사칭 콜밴 기사들은 새벽 2시부터 5시 사이 인천공항의 단속 직원들이 퇴근하는 것을 알고 이 시간 동안 승객들에게 부당요금을 요구하며 바가지를 씌우고 있는 것이다.
기자는 이를 확인하기 위해 12일 새벽 직접 인천공항을 방문했다. 새벽 2~5시 사이 실제로 일부 콜밴 기사들은 당당하게 공항 건물 안까지 들어와 막 입국한 외국인과 내국인 승객들에게 “어디 가느냐” “7만 원이면 간다”며 고성을 지르며 호객행위를 했다. 이미 인터내셔널 택시를 예약하고 기사를 기다리고 있는 승객들에게도 다가가서 “내가 그 택시 기사”라고 거짓말을 하는 모습도 수차례 발견됐다. 그러다가 승객들이 탑승을 거부하자 큰 목소리로 욕설을 내뱉으며 외국인들에게 분풀이를 하기도 했다.
# 버스승차장까지 침입하여 호객행위
단속하는 직원이 없는 시간 동안 이 사칭 콜밴들은 인천공항 입국층(1층)에 위치한 버스승차장에 자신의 콜밴들을 정차해 두고 승객들에게 호객 행위를 한다. 하지만 버스승차장에는 리무진 버스만 주정차가 가능하며, 택시나 콜밴 등은 택시승차장에서 승객을 기다려야만 한다.
앞서의 홍 씨는 “인천공항 직원인 것처럼 사원증을 걸고 접근하기에 택시를 잡아주는 서비스인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바가지 요금을 제시하기에 탑승을 거부하자 ‘아가씨들 뭘 모르네. 지금 택시가 어디 있다고!’ 라고 고성을 질러 불쾌했다”며 “우리들이야 다른 택시를 탔으니 다행이지만 고작 이태원까지 가면서 사기당할 외국인들을 생각하니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고 말했다.
한편, 승객들이 사칭 콜밴 기사들의 바가지 요금으로 피해를 보고 있을 때 인천공항 측은 어떠한 대응을 하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인천공항 측에 수차례 연락을 취했지만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
이수진 기자 sj109@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