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전 대통령 부부. 연합뉴스
또 다른 인사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정신건강 상태를 자세히 전했다. 그는 “일상 생활을 하는 데에는 별 문제가 없어 보였다. 다만 전 전 대통령이 대화 도중 ‘지금은 어디 살고 있냐’고 물어봤다”며 “대화를 나누는 짧은 시간 동안 4번이나 같은 질문을 했다. 단순한 기억력 문제가 아니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전두환 전 대통령을 이따금 뵈러 간다. 하지만 이렇게 심각한 적은 처음”이라며 “이런 내용을 말하기가 껄끄럽긴 하지만 전 전 대통령을 최근에 본 신군부 사람들끼리 대화에서 치매에 걸렸다는 이야기가 계속 나왔다. 나만 느끼는 게 아니구나 싶었다”고 전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정신건강 상태가 알츠하이머병에서 발현된 치매의 한 형태로 추측된다는 정신건강 전문가의 의견이 나왔다. 치매의 원인은 크게 알츠하이머병이라 불리는 뇌신경 퇴화와 뇌혈관 손상으로 발생하는 혈관성 치매 등으로 나뉜다. 가장 흔한 증상은 알츠하이머병이다. 전체 치매의 약 60%를 차지한다.
알츠하이머병은 보통 최근의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가벼운 인지장애부터 시작된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인지장애는 4년 앞서 한 차례 관측된 적이 있었다. 2013년 7월 이른바 ‘전두환법’인 공무원 범죄에 관한 몰수 특별법을 근거로 진행된 검찰의 전 전 대통령 자택 압수수색 뒤의 일이었다. 전 전 대통령의 한 측근은 당시 “모든 것을 잊고 싶은지 자신의 연희동 집이 압수수색을 당했다는 사실을 모른 척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약간의 치매 증상 때문에 실제로 모르는 것 같기도 했다”고 말한 바 있었다.
같은 달 28일 <중앙일보>의 보도에 따르면 전두환 전 대통령의 차남 재용 씨(53)는 3일 전인 2013년 7월 25일 서울 강남의 한 한정식집에서 형 재국 씨(58)와 누나 효선 씨(55), 외삼촌 이창석 씨(66) 등과 함께 한 법조계 인사를 만난 자리에서 “아버님은 지난번 압수수색 당한 일도 기억하지 못하신다. 금방 잊어버린다”고 말했다.
짧은 시간 내에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말하는 행동은 경도의 인지장애를 넘어 알츠하이머병 초기에 진입한 환자의 대표적 특성이다. 알츠하이머병 초기에는 병을 드러내지 않고 혼자 지낼 수 있다. 다만 가까운 사람은 눈치챌 정도의 행동 특성을 보인다. 3년에서 4년이 지나면 자신이 살던 집의 위치나 가까운 사람의 이름도 까먹는다. 말기인 발병 6~8년 뒤엔 뇌 문제를 넘어서 거동이 불편해진다.
익명을 원한 한 정신의학과 의사는 “치매의 한 형태로 보인다. 치매는 초기를 넘어서면 새로운 정보를 저장할 수가 없는 상태에 이른다. 20분 안에 같은 질문을 4회 한 정도라면 직접 보지 않아 임상 양상으로 자세히 알긴 어렵지만 중등도 치매까지도 생각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지난 4월 회고록을 내며 한 차례 치매의 근거를 남겼다. <전두환 회고록> 1권 혼돈의 시대 편 여는 말에는 “근년에 이르러 언제부터인가 나는 가까운 일들이 기억에 저장되지 않는 사례가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하지만 사물을 인식하고, 사리를 판단하는 데는 아무런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다. 내가 정리해야 할 일들을 서둘러 마무리하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다행스럽게도 오래전의 일들은 마치 그림처럼 생생하게 뇌리 속에 남아 있었다. 그 기억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내서 기록으로 남기게 되었다”고 써있다.
이와 관련 이제껏 전두환 전 대통령을 가까이에서 보좌해 온 민정기 전 청와대 공보비서관(75)은 13일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연세도 있고 해서 가까운 기억이 안 되는 등 그런 일이 있는 것 맞다. 추가적인 부분은 나중에 기회를 봐서 말하겠다”고 했다.
최훈민 기자 jipchak@ilyo.co.kr
회고록 진위 여부 두고 말말말…민정기 “회고록, 온전한 정신에 쓰였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지난 4월 3일 <전두환 회고록>을 세상에 내놓자 북한군의 5·18 광주민주화운동 개입설을 두고 수많은 말들이 오갔다. 전 전 대통령이 지난해까지만 해도 부인했던 북한군 개입설을 회고록에서 인정했던 탓이었다. 이 때문에 <전두환 회고록>의 진위 여부는 뜨거운 불씨로 떠올랐지만 민정기 비서관은 이런 낭설을 전면 부인했다. 지난해 6월 <신동아>와의 인터뷰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은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보안사령관으로서 북한군 침투와 관련된 정보보고 받은 적이 있냐는 기자의 질문에 “전혀 (없다)”라고 말했다. “북한 특수군 600명이 광주 현장에 왔다”는 지만원 박사의 주장에 전 전 대통령은 “어디로 왔는데?”라며 반문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전두환 전 대통령은 인터뷰 뒤 1년도 안 돼 펴낸 회고록에 ”시위대 600명은 북한의 특수군이라는 주장이 그동안 꾸준히 제기돼 왔다. 지만원 시스템공학 박사는 광주사태가 북한이 특수군을 투입해서 공작한 ‘폭동’이었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교도소를 습격해 수감자들을 해방하는 것은 혁명군이 취하는 교과서적인 작전이다. 광주교도소에 수감된 미전향 장기수들, 간첩들을 해방하려는 목적 때문이었다고 단언해도 무리가 없다. 교도소 습격은 북한의 고정간첩 또는 5·18을 전후해 급파된 북한 특수전 요원들이 개입한 것으로 추측할 수 있게 하는 대목“이라고 적었다. 지만원 박사는 이에 대해 <일요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이 내 연구를 인용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상당히 의외였다“고 소회를 남겼다. 바른정당 하태경 최고위원(49)도 불을 지폈었다. 그는 “누군가가 전두환을 빙자해 회고록을 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지난 8월 9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국회의원·원외위원장 연석회의에서 하 최고위원은 “<신동아>와 인터뷰 하고 나서 1년이 안 돼 나온 회고록에 5·18 당시 600명이 북한에서 내려온 특수군이라는 것을 사실로 인정하는 내용을 썼다”며 “제가 아는 전 전 대통령은 치매가 아니다. 정신적으로 건강하고 기억력도 좋다. 제가 내릴 수 있는 합리적 결론은 직접 쓴 게 아니다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민정기 전 비서관은 “인터뷰 당시 회고록은 마무리 작업 중에 있었다. 그냥 다 설명하기 어려워 얼버무렸던 것”이라며 “(전두환 전 대통령) 정신건강에 문제가 있는 것은 맞지만 최근 기억에만 문제가 있는 것뿐이지 옛 기억은 또렷하다. 자료를 근거로 썼지 주장만 해서 쓴 책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한편 신군부 인사 등에 따르면 전 전 대통령은 회고록 출간 직전 신군부 핵심 인사를 자택으로 불러 책 초판분을 직접 돌렸다. 하태경 최고위원 등이 제기한 ‘전두환 전 대통령 빙자 회고록 출판 의혹’은 가라앉을 것으로 예상된다. [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