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 만기를 엿새 앞둔 박근혜 전 대통령이 10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국정농단 사건 78차’ 공판을 마친 뒤 호송차에 오르고 있다. 일요신문 DB
예상처럼 법원은 박근혜 전 대통령 구속 연장을 결정했다. 1심 구속 만기인 17일 0시를 60여 시간 앞둔 13일 오후였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김세윤 부장판사)는 오후 진행된 공판을 마무리한 뒤, 박 전 대통령의 구속 기간을 최대 6개월 더 연장한다고 결정했다. 그 이유로는 ”증거 인멸의 염려가 있어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 상당성이 인정된다“라고 설명했다.
결과와 달리, 재판부는 구속영장 연장 결정에 비판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법원 사정에 밝은 한 앞선 법조계 관계자는 “검찰은 별건이라고는 주장하지만 법리적으로 애매한 게 사실이고, 비슷한 사건으로 영장을 추가 발부한 사례가 없다 보니 검토 초반에는 구속을 연장하지 않고 풀어주려던 분위기였다고 들었다”며 “진보 성향의 김명수 대법원장이 임명되는 등, 분위기가 법리보다는 사회적인 여론의 눈치를 많이 보게 된 것도 일조하지 않았겠냐”고 설명했다.
지난달 26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제 16대 김명수 대법원장 취임식이 열리고 있다. 일요신문 DB
법조계는 결과보다는 재판부의 설명을 주목하고 있다. 재판 결과를 암시할 수 있기 때문. 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롯데와 SK그룹 관련 부분은 재판에 신동빈 회장이 직접 나와서 진술했던 사안 아니냐”며 “이미 심리를 다 마친 부분에 대해서 새롭게 영장을 발부했다는 것은 뇌물 수수 혐의 전반에 대해 유죄로 보고 있다는 재판부의 판단이 담긴 셈”이라고 풀이했다. 그는 특히 “SK, 롯데의 경우 총수들이 삼성처럼 구속은커녕, 기소조차 되지 않았는데 구속영장에 이름을 올렸기 때문에 검찰이 명분을 위해 기소를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귀띔했다.
이번 결정의 진짜 수혜자는 재판부라는 분석도 나온다. 선고까지 충분한 시간을 벌었기 때문. 한 검찰 관계자는 “(2개월씩 3번까지, 최장 6개월 구속 연장 가능하기 때문에) 박 전 대통령 재판부는 이미 2심 재판에 돌입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보다 더 오래 재판을 끌 수 있게 됐다”며 “다툴게 상대적으로 적은 이재용 부회장 2심 재판 결과까지 확인하고, 양형을 할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구속 연장 여부는 유죄 판단의 가늠자인 탓에, 검찰과 박 전 대통령 측은 그동안 치열하게 대립했다. 박 전 대통령이 구속된 것은 지난 3월 31일. 그리고 4월 17일 재판에 넘겨졌다. 법원은 권리 보장을 위해 구속 피고인의 경우 1심 재판이 끝나지 않더라도, 6개월 이상 구속할 수 없도록 형사소송법으로 정해 놓았다. ‘6개월’이라는 기준의 효과는 상당하다. 재판을 빨리 마무리하도록 재판부의 심리를 독촉하는 효과가 있었기 때문. 단순한 형사 사건 구속 피고인의 경우, 대부분 6개월 안에 재판이 마무리되는 게 일반적일 정도다.
하지만 사건의 규모가 방대하고 다룰 게 많았던 박근혜 전 대통령 재판은 달랐다. 증인 심문이 길어지면서, 재판부는 심리를 다 마치지 못했다. 늘어지는 재판 속에 구속 기간 만기가 다가오자 검찰은 ‘별건 구속영장 재청구’를 결정했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추가 구속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드물지는 않지만, 종종 볼 수 있다는 게 법원 측의 설명이다. 한 고등법원 부장판사는 “사기 혐의로 구속돼 재판을 받다가 다른 횡령, 배임 사건까지 엮여서 수사가 더 필요한 경우 별건으로 구속영장을 발부해 주는 경우들이 있다”며 “박 전 대통령에 대해 언론에서는 구속 연장이라고 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별도 사건에 따른 구속영장 추가발부가 맞다”고 설명했다.
별도 사건이어야 한다는 게 전제 조건. 검찰은 영장 추가청구의 법리 근거로 ‘롯데와 SK그룹 관련 제3자 뇌물수수 혐의’를 내밀었다. 앞선 3월 구속영장 청구 당시에는 포함되지 않았던 부분이라는 게 검찰의 주장. 불구속 재판 진행 시 박 전 대통령의 재판 태도와 영향력도 구속 이유로 덧붙였다.
수사팀 관계자는 “전직 대통령이었던 피고인은 주요 증인들을 직접 지휘한 적이 있기 때문에 불구속이 됐을 경우 증인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해 기존 증언을 번복시키려 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박 전 대통령이 3차례나 재판 과정에 불출석하지 않았냐, 만일 풀려나게 되면 제대로 재판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구속 연장 여부를 놓고 법원 심리가 열리는 10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박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박근혜 전 대통령 석방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일요신문 DB
박 전 대통령 측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오히려 “몸이 안 좋으니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아야 한다”다고 주장했다. 박 전 대통령 측 유영하 변호사는 “롯데와 SK 관련 공소사실은 1차 구속영장에 포함되지 않았지만 공소사실에 기재돼 있기 때문에 별건이 아니”라며 검찰의 영장 재청구가 위법하다고 반박했다.
또 “박 전 대통령은 형사소송법상 구속 사유인 증거인멸이나 도주 우려도 없고, 이미 자신의 생명과도 같은 명예를 잃었다”며 사자가 우글대는 콜로세움(고대 로마 원형경기장)에 홀로 던져진 채 군중에 둘러싸인 상황이라고 비유하며 동정을 유도했다.
뇌물 수수의 ‘한 몸’으로 지목된 최순실 씨도 지원 사격을 보냈다. 재판부에 박 전 대통령을 석방하고 재판을 분리해 달라는 의견서를 제출했고, 최 씨 측 변호인인 이경재 변호사는 기자들을 모아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의 구속영장 재청구는 위법하다”고 항변했다.
박 전 대통령 측의 공세에도 불구하고 결국 연장으로 일단락된 구속 여부. 하지만 법조계는 이미 가늠할 수 있는 1심 재판보다는 2심 결과까지 지켜봐야 한다고 설명한다. 1심이 정치와 여론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2심에서 법리를 이유로 1심과 다른 결과를 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형사 사건에 밝은 한 검찰 관계자는 “원래 1심 법원은 이런 국민적 관심을 받는 사건을 다룰 때 정치인들보다도 더 교묘하게 정치적으로 판단하지 않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까지 징역 5년을 선고한 마당에 박 전 대통령도 유죄 판단과 실형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박 전 대통령이 직접 주머니에 챙긴 게 없기 때문에 법리적으로 특검의 주장에 빈틈이 있는 것은 명백하다, 진짜 결과는 항소심(2심)에 가야 법리적인 판단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한 그는, 그러면서도 2심 재판의 가장 큰 변수로는 ‘바뀔 여론’을 꼽았다.
그는 “박 전 대통령 2심 재판은 최소 8개월 뒤에나 결과가 나올 텐데, 그 전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재판 결과를 비롯해 정치 지형도와 여론이 바뀌어 있을 수밖에 없다”며 “이래저래 확실한 것 하나는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재판이 될 것이라는 점”이라고 평가했다.
서환한 기자 bright@ilyo.co.kr
[박근혜 독방생활] TV보단 책…일본 영웅 소설 <대망> 열독 법조계에 따르면 박근혜 전 대통령은 주중에는 주로 재판에 참여해 하루를 다 보내지만, 재판이 없을 때는 변호인(유영하 변호사)을 접견하거나 책을 읽으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박 전 대통령은 머무는 곳은 10.6m² 크기의 독방. 주중에 재판이 없을 때는 변호인 접견을 상당히 오랜 시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직 형이 확정되지 않은 미결수들은 재판 관련 변호인 접견을 이유로 접견실에 시간제한 없이 머무를 수 있기 때문. 대기업 오너들도 이를 이용하곤 했는데, 박 전 대통령도 이를 적극 활용하는 것이다. 접견이 마무리되는 저녁에는 방에서 머무르며 통상의 미결수들처럼 생활한다는 게 교정당국의 설명. 변호인 접견이 제한되는 주말에는 원래 가족 면회가 가능하지만 박 전 대통령은 동생 지만 씨와 근령 씨 등 가족들에 대해 ‘접견 거부’를 해놓은 상황이다. 때문에 박 전 대통령은 이번 추석 연휴 기간을 비롯, 주말에 누구도 만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대신 식사 후 설거지를 비롯해 평소처럼 일과를 소화하고, 소일거리로 주로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독방에 TV가 설치돼 있어 교도소가 허용한 뉴스와 영화 등의 시청은 자유롭지만, 시청이 잦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대신 박 전 대통령이 최근 읽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책은 <대망>. 일본의 3대 영웅으로 꼽히는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 등 전국시대 통일기 인물들을 그려낸 소설이다. 이 중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일본 전국시대를 끝내고 에도막부 시대를 개막한 일본의 영웅으로 천하를 통일하기까지 개인적인 비극과 모욕, 생사 고비를 견뎠던 인물이다. 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7년 한나라당 경선에서 패배한 뒤에도 도쿠가와의 이야기가 담긴 이 소설을 읽은 바 있다. 이 밖에도 박경리 선생의 <토지>, 이병주 선생의 <지리산>과 <산하> 등 주로 역사 소설을 읽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항소심 본격 심리를 앞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도 재판 기일 외에는 변호인 접견과 독서 등으로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형사 사건 전문 변호사는 “교도소에 면회를 갈 때마다 변호인과 함께 회의를 하고 있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본 적이 있다”며 “수의를 입어서 그런지, 여느 피고인들하고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지만 아주 진지한 표정이었다”고 귀띔했다. [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