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일요신문] 김현술 기자 = 근로자 대표가 기업 최고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도록 하는 노동이사제(근로자이사제)를 정부가 공공기관부터 우선 도입해 민간까지 순차적 추진하는 것으로 공식 확인됐다.
바른정당 정병국 의원(5선, 여주·양평,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이 지난 12일 기획재정부로부터 받은 ‘공공기관 노동이사제 도입방안 연구용역’ 문건에 따르면 기재부는 내년 공공기관 노동이사제 시행을 목표로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을 개정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기재부는 이런 내용의 연구용역을 최근 한국개발연구원(KDI)에 의뢰했다.
정병국 의원은 “공공기관 전체 332곳 가운데 3분의 2가 넘는 기관이 적자에 허덕이고 있고 공공기관 부채는 500조원에 달할 정도로 체질개선이 시급한 상황”이라며 “문재인 정부가 노동이사제를 비롯해 최저임금·정규직전환 등 속도조절이 필요한 정책을 무책임하게 선심쓰듯 강행하며 공공기관 구조개혁의 양 손을 묶더니, 이제는 양 발마저 묶는다”고 지적했다. 이어 “섣부른 도입에 앞서 더 많은 논의와 사회적 합의가 선행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서울시 등에서 시험 중인 노동이사제는 기업 경영의 자율성과 효율성을 저해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정부는 내년에 공공기관에 우선 도입한 뒤 민간으로 점차 확대한다는 계획이어서 산업계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노동이사제 도입은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다. 문 대통령은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를 실현하도록 공공부문부터 노동이사제를 도입하고, 민간기업에 확산시키겠다”고 약속했다. 공공기관 노동이사제 도입은 지난해 7월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내놓은 ‘문재인 정부 100대 국정과제’에도 포함됐다.
정병국 의원이 확보한 문건은 기재부가 한국개발연구원(KDI)에 의뢰한 연구용역의 취지와 내용, 방법 등을 담고 있다.
기재부는 “노동이사제 도입으로 근로자 대표가 발언권·의결권을 행사하면 공공기관의 의사결정 과정이 더 민주적으로 작동할 것”이라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기관의 성과와 경영책임을 공유함으로써 노동의 질도 높아질 것”이라고도 했다.
기재부는 독일 등 유럽 국가들이 근로자 이사제도를 도입해 다방면의 경제적 성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한 뒤 “한국도 공공기관의 경영 자율성과 책임성을 높이기 위해 근로자 이사제 도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기재부는 연구용역을 토대로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공운법)을 내년 초 개정해 내년부터 공공기관 노동이사제를 시행하겠다는 계획도 제시했다. 이를 위해 먼저 유럽 등 해외 선행사례를 검토하는 한편 올해 초부터 시범 운영에 들어간 서울시 사례도 분석하기로 했다.
구체적으로는 이사 후보군 선정 및 선임절차, 결격사유, 임기, 권리와 의무, 보수 등 규정을 마련하기로 했다. 노조와의 관계설정 및 의사결정 지연 등 일각에서 제기되는 문제점의 해결을 위한 보완방안도 연구과제에 포함시켰다.
정부가 산업계 우려에도 불구하고 공공기관 노동이사제 도입을 강행할 경우 파장이 만만치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공공부문 노동이사제 정착은 향후 민간부문으로의 전면적 확산을 위한 수순으로 인식되고 있어서다. 공공부문 비효율을 키워 개혁을 되돌리는 결과를 낳을 것이란 우려도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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