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미니카 윈터리그는 6개 팀이 10월 중순부터 약 3개월가량 50경기를 치른다. 메이저리그의 트리플 A에 해당하는 이곳에는 실제 메이저리그 출신 선수들도 뛰고 있는 터라 리그 수준이 상당히 높다.
음주운전으로 비자를 받지 못해 한 시즌을 통째로 쉬어야 했던 강정호는 피츠버그 파이어리츠가 제안한 도미니카 윈터리그 출전을 고마운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한국에서 개인 훈련을 하며 몸을 만들었지만 실전 경기 감각이 떨어져 걱정이 많았던 그로선 겨울 동안 연습 게임이 아닌 실제 리그 경기를 뛸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강정호가 소속된 아길라스 시바에냐스의 리노 리베라 감독은 강정호에게 3루를 맡길 예정이라고 밝혔다.
강정호.
지난 9월 전남 함평의 한 야구장에서 만났던 강정호는 도미니카공화국으로의 출국을 앞두고 한창 훈련 중이었다. 이전에는 몸을 만들기 위한 개인 훈련이었다면 기자를 만났을 당시엔 윈터리그 출전에 대비해서 타격은 물론 수비 훈련까지 병행했다. 그는 다음과 같은 소감을 전하며 도미니카 윈터리그에 대한 기대를 부풀렸다.
“윈터리그든 독립리그든 경기에 나설 수만 있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구단에서 이런 방법을 제시해줬다는 게 정말 고마웠다. 어떤 목표가 생기니 훈련도 더 집중해서 할 수 있는 것 같다. 솔직히 많이 설렌다. 시합에 뛴 지가 1년이 넘었는데 성적보다는 경기력을 끌어 올리는 데 중점을 둘 예정이다.”
음주 운전 관련 얘기를 나눌 때는 표정이 어두웠던 강정호가 도미니카 윈터리그를 떠올리면 서부턴 표정이 밝아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는 함평야구장에서 150km의 스피드가 나오는 피칭 머신으로 타격 연습을 했다. 그러나 투수가 던지는 공을 직접 상대하는 것과 기계에서 나오는 공을 때리는 것과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강정호도 깊이 공감하는 부분이었다.
“그래서 윈터리그 참가가 더 반가운 일이었다. 내 타격감이 어느 정도인지, 여전히 강속구 투수의 공을 때릴 수 있는지 확인해볼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허들 감독님이 직접 윈터리그 경기를 보러 오신다고 했는데 그곳에서 감독님을 만나면 정말 반가울 것 같다.”
강정호는 자신이 쉽게 용서받을 수 없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다. 사람들의 눈을 피해 집에서 두문불출하고 있을 때는 야구를 그만둘 수도 있다는 생각에 불면의 밤을 보내야만 했다. 소속팀 피츠버그의 경기를 TV로 지켜보며 그가 가졌을 수많은 느낌표들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짐작되고도 남았다.
“팀이 좋은 성적을 내고 승승장구했더라면 미안한 마음이 조금 덜했을 텐데 팀 성적도 좋지 않고 선수들도 어려움을 겪는 모습에 몸 둘 바를 모르겠더라. 그래도 몇몇 선수들은 전화로, 문자로 안부도 묻고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말하며 위로를 건넸지만 나로선 그저 미안한 마음뿐이었다.”
강정호로 인해 도미니카 윈터리그가 주목을 받는 상황에서 예상치 못한 한국 선수가 그곳에 나타났다. 바로 BK 김병현이었다. 존 구즈먼이란 이름의 현지 라디오 진행자가 자신의 SNS 계정을 통해 기간테스 유니폼을 입은 김병현의 사진을 올리는 바람에 김병현이 한국이 아닌 도미니카공화국에 머물고 있는 사실이 세상에 알려졌다.
김병현.
그때 김병현은 “아직 야구를 포기하기 어렵다”면서 “마음으로 ‘이젠 끝’이란 생각이 들어야 은퇴를 하겠는데 지금은 그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 분명 쉽지 않은 길이겠지만 하는 데까진 해보고 싶다”며 은퇴보다는 선수 생활 연장 의지를 밝힌 바 있었다.
식사 메뉴를 고를 때 김병현은 체중 조절을 하느라 육식 대신 생선과 채소를 주로 먹는다는 얘기를 전했다. 기자가 “이제 좀 편히 살아도 되는 거 아니냐”고 말하자, 김병현은 “완벽한 몸 상태로 야구해본 지가 꽤 오래 됐다. 그렇게 몸을 만든 후 야구를 해서 기대에 못 미치는 모습을 보인다면 그땐 홀가분한 마음으로 글러브를 벗을 수 있을 것 같다”고 속내를 털어 놓았다.
김병현처럼 드라마틱한 야구 여정을 걷고 있는 이도 드물 것 같다. 메이저리그 월드시리즈 우승 반지를 2개나 갖고 있는 그가 마이너리그와 미국 독립리그에서 뛰었고, 일본 라쿠텐을 거쳐 2012년 넥센과 계약하면서 KBO리그 선수로 활약했다. 이후 트레이드를 통해 고향팀 KIA의 유니폼을 입었지만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으로 주로 2군에 머물다 지난해 KIA의 보류선수 명단에서 제외됐다. KBO리그 통산 성적은 11승 23패 5홀드 평균자책점 6.19.
김병현과 강정호는 광주일과 선후배 사이다. 넥센 시절에는 한 팀에서 뛴 적도 있다. 두 선수는 15일 도미니카 윈터리그에서 맞대결을 벌일 가능성이 높다. 강정호는 개막전부터 3루수로 선발 출장할 예정이다. 김병현은 선발보다는 불펜에서 기회를 얻을 가능성이 높아 당장 15일 벌어지는 두 팀의 맞대결에서 투타로 만날 수도 있는 상황. 넥센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그들의 야구 스토리에 팬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
포스트시즌 겨냥 투구폼 변경 다르빗슈 ‘큰 그림’ 통했다 지난 10일, LA 다저스 선수들이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를 꺾고 챔피언십시리즈 진출을 확정 지은 기쁨을 샴페인 세리머니를 통해 온몸으로 느끼고 있을 때 디비전시리즈 3차전의 주인공인 다르빗슈 유는 구석진 곳에서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선수들을 지켜봤다(5이닝 2피안타 7탈삼진 1사구 1실점 호투를 펼치며 승리투수가 됐고 빅리그 진출 첫 포스트시즌 승리). 자신을 텍사스 레인저스에서 LA 다저스로 데려온 앤드류 프리드먼 야구 부문 사장과 파한 자이디 단장의 요청에 기념사진을 찍을 뿐 샴페인과 맥주가 뒤섞인 클럽하우스 한복판으로는 나오지 않았다. 그때 릭 허니컷 코치가 다르빗슈 유에게 다가가 포옹하는 장면이 목격됐다. 다르빗슈가 다저스로 트레이드된 지난 8월 1일부터 동고동락하다시피 한 선수와 투수코치의 포옹은 묘한 감상에 젖게 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다르빗슈는 다저스 이적 후 투구폼을 바꿨다. 8월 5일 뉴욕 메츠전에서 첫 등판을 가진 이후 계속 부진한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메츠전 7이닝 3피안타 1볼넷 10탈삼진 무실점으로 완벽에 가까운 피칭을 선보였지만 이후 5경기에서 평균자책점 6.94로 무너졌다). 커쇼와 짝을 이룰 것으로 믿었던 팬들은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다르빗슈와 다저스 프런트는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당장의 성적보다는 포스트시즌에 맞춰 문제점을 개선하는 데 초점을 맞췄고, 등판 일까지 조정하며 목표를 향해 나아갔다. 다르빗슈 유. 그는 “계속 이렇게 던지다간 플레이오프에서 제대로 못 던질 수도 있다는 걱정이 많았다”는 속내를 털어 놓기도 했다. 허니컷 투수코치는 전력분석 팀과 다르빗슈의 투구폼을 분석했다. 2015년 토미 존 수술 이후 투구 시 팔꿈치를 의식하다보니 팔을 회전할 때 이전의 투구폼이 아닌 위에서 아래로 내리 꽂느라 변화구에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이다. 다르빗슈는 이를 “내 레그킥과 공을 놓는 타이밍이 짧아졌다. 투구 동작을 길게 가져가다보니 공을 끝까지 던지지 못했다. 투구폼을 간결하게 줄일 필요성을 느꼈다”고 밝혔다. 다르빗슈는 이전까지만 해도 다리를 들고 투구하기 전 생각하고 기다리는 시간이 좀 더 길었다. 이걸 그는 자신의 장점이라고 생각했다. 장점을 버리고 새로운 걸 받아들이는 게 쉽진 않았지만 그는 생존을 위해 투구 동작을 보다 빠르게 가져가려 했다. 마운드에서 생각하는 시간을 줄이는 대신 말이다. 짧아진 딜리버리 덕에 그가 공을 던지는 모습이 더 편해 보이기 시작했다. 그는 “옆으로 구부리면서 좀 더 낮게 던지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한편 다르빗슈 유의 투구폼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릭 허니컷 투수 코치는 샴페인 파티가 펼쳐진 클럽하우스 한편에서 이뤄진 인터뷰를 통해 “다르빗슈의 투구폼이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왔다”며 기쁨의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변화가 그에게 많은 도움이 됐다고 생각한다. 공격적인 면에서 좀 더 쉽게 변화를 가져갔다. 맨 처음에는 그가 변화의 과정에 어려움을 느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편안해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덕분에 오늘은(3차전) 좋은 제구를 보이며 공격적인 투구를 펼쳤다.” 허니컷 코치는 다르빗슈를 매우 똑똑한 선수라고 설명했다. “그는 수술 전의 모습으로 돌아가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자신의 투구폼을 열심히 관찰하고 연구하는 선수이다. 그런 그를 칭찬해주고 싶다. 자신의 모습을 가감 없이 들여다 볼 수 있는 선수라 지금 더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를 찾았고, 그 덕분에 팀도 마운드의 부담을 덜고 포스트시즌을 믿고 맡길 수 있게 됐다.” 다르빗슈 유한테는 여러 명의 일본 전담 기자들이 따라 붙는다. 그중 다르빗슈를 가장 오랫동안 지켜본 NHK의 샘 오노다 기자도 다르빗슈가 투구폼에 변화를 준 게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공격적인 면에서 좀 더 쉽게 변화를 줬다. 맨 처음 변화를 줄 때는 적응 과정이 필요했기 때문에 좋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 시간이 지난 지금은 그가 상당히 편한 모습으로 투구한다는 걸 알 수 있다. 그 덕분인지는 몰라도 제구가 아주 좋아졌다.” 샘 오노다 기자는 투수가 타석에 들어서야 하는 내셔널리그보다는 투구만 하는 아메리칸리그가 다르빗슈한테 더 잘 어울린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다르빗슈는 아메리칸리그에 더 어울리는 것 같다. 일본에 있을 때도 아메리칸리그 스타일로 야구를 해왔기 때문이다. 이전 구단인 텍사스 레인저스도 아메리칸리그였다. 내셔널리그에선 선발이 타석에 서야 할 때가 있다. 여러 가지 역할을 소화해야 하는 선발은 체력적으로 지칠 수밖에 없다. 선수 생활을 오래 끌고 가려면 투구에만 집중할 수 있는 아메리칸리그가 다르빗슈한테는 더 잘 맞는다고 생각한다.” LA 다저스에는 다르빗슈 유보다 먼저 자리를 잡은 마에다 겐타가 있다. 포스트시즌에선 다르빗슈가 선발로 마에다가 불펜 투수로 나온다. 일본인 선수 2명이 다저스의 마운드를 책임지고 있는 것. 두 선수를 볼 때마다 류현진이 포스트시즌 로스터에 포함되지 않은 게 아쉽기만 하다.[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