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시 대통령과 백악관 전 대변인 매클렐런이 낸 회고록 <무슨 일이 일어났나>. 로이터/뉴시스 | ||
요즘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의 입에서는 이런 말이 절로 나오지 않을까 싶다. 지난 10여 년간 충성을 맹세했던 충복이 갑자기 뒤통수를 쳤기 때문이다. 부시의 측근 중의 측근이었던 스콧 매클렐런 전 백악관 대변인(40)이 회고록을 통해 부시의 치부를 낱낱이 폭로한 것이다.
‘부시의 입’으로 불릴 정도로 부시에게 든든한 존재였던 매클렐런이 하루아침에 적으로 둔갑한 것은 지난 1일 출간된 회고록 <무슨 일이 일어났나:부시의 백악관 내부와 워싱턴의 속임수 문화>를 통해서였다. 이 책에서 매클렐런은 1999년 부시가 처음 대선에 출마하던 때부터 알고 있었던 비화를 거침 없이 소개하고 있다. 또한 부시뿐만이 아니라 백악관 참모들의 정책 실패와 겉과 속이 다른 이중적 행태를 폭로하면서 이들의 도덕성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그가 회고록을 통해 폭로하고 있는 충격적인 내용들의 골자를 살펴보면, 부시 임기 동안 백악관이 숱한 거짓말을 했다는 점, 진실을 은폐하기 위해서 언론을 호도했다는 점, 그리고 이를 통해 미국 국민들을 기만했다는 점 등을 들 수 있다. 이에 대해서 매클렐런은 대변인 시절을 회고하면서 “당시 나는 내 의지와는 상관 없이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내가 말한 내용이 거짓말이란 사실을 2년 후에 언론들이 진실을 밝혀낼 때까지도 새까맣게 모르고 있었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이런 점에서는 부시 대통령도 마찬가지였다고 생각한다. 부시 대통령 역시 보좌관들에게 속았고, 자신도 의식하지 못한 채 나를 속였다. 하지만 진실을 알고 있었던 백악관 참모들은 내가 거짓말을 하도록 내버려 두었거나, 적어도 거짓말을 하도록 부추겼다”고 덧붙였다.
백악관의 ‘의도된 거짓말’은 특히 이라크 전쟁과 관련된 것들이 많았다. 이에 대해서 매클렐런은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 전쟁을 일으킨 진짜 이유는 사실 중동을 장악하기 위해서였다. 전쟁을 반대하는 여론을 무마하기 위해서 후세인의 대량살상무기 위협을 사실보다 과장했다”고 폭로했다. 이로써 그는 지금까지 추측에 불과했던 ‘대량살상무기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부시 행정부는 정보를 조작하고 여론을 조종해서 이라크를 침공했다’는 주장을 사실상 시인한 것과 다름 없게 됐다. 말 그대로 ‘양심선언’을 한 셈인 것이다.
당시 대변인 신분으로 이라크 전쟁과 관련해서 수시로 브리핑을 해야 했던 매클렐런은 “브리핑 내용 가운데 일부는 ‘사실과 매우 다른’ 것이었다”고 인정했으며, “내가 아는 한 전쟁은 반드시 필요할 때에만 일으켜야 하는데, 이라크 전쟁은 불필요한 전쟁이었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콘돌리자 라이스 장관은 “부시 대통령은 정직한 분이다. 이라크 전쟁을 일으킬 명분이 분명히 있었다”고 반박했다. 많은 부시 측근들 역시 “매클렐런의 주장은 신빙성이 없다”면서 일축하고 있다.
이밖에도 회고록 내용 가운데 시선을 끌고 있는 대목으로는 부시의 코카인 흡입 여부다. 매클렐런은 책에서 “과거 심각한 ‘파티 애니멀’이었던 부시는 심지어 자신이 코카인을 흡입했던 사실조차 기억을 못하고 있다”고 폭로했다. 이와 관련해서 그는 “부시 대통령이 한번은 내게 자신이 과거에 코카인을 했었는지 기억이 잘 나질 않는다고 말했다”고 밝히면서, “어떻게 사람이 코카인과 같은 금지 약물을 복용했다는 사실을 기억 못한단 말인가. 도무지 말이 안 된다. 부시 대통령이 그렇게 주장한 이유는 단 하나, 정치적인 목적 때문이었다”고 덧붙였다.
이밖에도 매클렐런은 책을 통해 카트리나 재앙, 리크 게이트 등과 관련된 백악관의 진실을 낱낱이 폭로했다. 이미 그는 이 책을 출간하면서 백악관에서 상당수의 친구를 잃은 것은 물론, 공화당원들로부터 ‘변절자’라며 손가락질을 받고 있는 상태다.
과연 그가 이번 폭로를 통해 무엇을 얻고자 했는지는 명확히 알 수 없는 일. 확실한 것은 회고록 출간을 통해 돈방석에 앉게 됐다는 점, 그리고 뒤늦게나마 양심선언을 함으로써 앞으로 부시 행정부에 쏟아질 온갖 비난과 질책으로부터 어느 정도 자유로워졌다는 점이다.
김미영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