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년 넘게 언론사에 몸담았던 블라도 타네스키 기자는 자신이 직접 저지른 연쇄살인사건을 특종 기사로 보도하다 경찰에 체포됐다. | ||
하지만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납치 및 성폭행 혐의로 기소됐던 타네스키가 교도소에 수감된 지 불과 하루 만에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는 쪽지를 남긴 채 자살하고 만 것이다. 그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인해 결국 마케도니아의 부녀자 연쇄살인사건은 영원히 미궁 속으로 빠지게 됐다.
타네스키에 의해 무참하게 살해된 것으로 추정되는 여성들에게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마케도니아의 수도인 스코페에서 남서 쪽으로 120㎞가량 떨어진 키세보 인근에 거주하고 있었다는 점, 모두 50~60대로 비교적 나이가 많았다는 점, 고등교육을 받지 못한 저학력자라는 점, 그리고 병원에서 청소부로 근무하고 있었다는 점 등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놀라웠던 것은 이들 모두가 타네스키의 어머니와 잘 알고 지내는 사이였으며, 한때 어머니도 같은 병원에서 청소부로 근무한 적이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주변에 따르면 지금은 세상을 떠난 타네스키 어머니는 평소 아들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고 한다. 심지어 타네스키에게는 어머니가 원망과 증오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고 한다. 이런 까닭에 경찰은 타네스키가 어머니에 대한 증오심 때문에 어머니와 비슷한 여성들만을 골라 살해한 것이 아닌가 추정하고 있다.
2005년부터 2008년까지 3년 동안 살해된 세 명의 여성들의 시체는 모두 발견됐지만 지난 2003년 실종됐던 78세 노파의 시체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는데 타네스키가 자살을 한 까닭에 찾을 가능성은 더욱 희박해졌다.
발견된 시신들은 알몸으로 토막이 난 상태였으며 전화선으로 꽁꽁 묶인 채 비닐봉지에 담아 쓰레기통에 버려져 있었다. 모두 성폭행당한 흔적이 있었고 남아있는 상흔으로 보아 여러 차례 끔찍한 폭력이 가해졌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한 시체의 외음부에서는 끝이 뭉뚝한 물건을 쑤셔 넣은 듯한 외상이 발견되었고 다른 시체에서는 두개골과 늑골의 열세 군데에서 깊은 상처가 발견됐다.
타네스키가 이처럼 잔인한 방법으로 살인행각을 저질러 왔건만 지금까지 그를 의심했던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워낙 조용하고 상냥한 성격인데다 기자라는 직업의 특성상 그가 범죄자일 것이라고는 아무도 상상을 못했던 것이다.
그는 80년대 중반에 ‘최고의 언론인상’을 한 차례 수상했을 만큼 기자로서도 명성을 쌓아왔기 때문에 이번 사건은 주변 사람들에게 더욱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와 함께 일했던 한 동료 기자는 “그는 매우 정상적인 사람이었으며 착한 사람이었다”고 전했으며, 그가 몸담고 있었던 일간지 <우트린스키 베스니크>의 편집국장은 “그는 매우 조용한 사람이었다. 그가 사람을 죽였다는 사실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렇듯 그 누구의 의심도 사지 않았던 그가 경찰의 용의선상에 오르게 된 것은 기자로서의 특종욕 때문이었다. 특종을 보도하겠다는 일념 하에 아직 경찰이 발표하지도 않은 내용을 기사에 쓰고 만 것이다. 가령 범인이 사용한 전화선의 종류를 언급했는가 하면 전화선으로 목을 조른 후에 다시 같은 전화선으로 몸을 묶었다는 등 범행현장을 보지 않는 사람은 쓸 수 없는 구체적인 내용까지 자세하게 묘사했던 것이다. 게다가 예전에 벌어졌던 부녀자 살인사건과 연관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경찰의 수사 결과가 발표되기도 전에 먼저 ‘연쇄살인’일 것 같다고 추정하기도 했다.
이 기사를 본 독자들은 “역시 타네스키 기자다. 어떻게 이렇게 발 빠른 보도를 수 있을까”라면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경찰의 생각은 달랐다. 번번이 한발 앞서가는 그의 기사를 눈 여겨 보고 있던 경찰은 “분명히 직접 경험하거나 보지 않고서는 저렇게 자세하게 현장을 묘사할 수 없다”라고 의심했고 이내 타네스키를 용의자로 지목했다. 그리고 물증을 확보하는 데 성공해 그를 체포했다. 경찰이 제시한 결정적인 증거는 타네스키의 DNA였다. 희생자들의 몸에서 발견된 정액과 타네스키의 DNA가 일치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결국 그는 기사를 쓴 지 한 달 만에 진실을 쫓는 기자에서 흉악한 살인을 저지른 범죄자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수치심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뒤늦은 후회 때문이었을까. 감방에 수감된 지 불과 하루 만에 그는 물이 담긴 양동이에 머리를 박은 채 자살하고 말았다. 그의 시체는 같은 방에 있던 다른 죄수들에 의해 발견되었다. 모두 잠든 시간인 새벽 2시경 화장실에서 몰래 일을 저지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의 베개 밑에서는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는 쪽지가 발견되었다. 이 쪽지에는 “나는 아무 일도 저지르지 않았다. 나는 그 여성들을 죽이지 않았다”라는 말이 적혀 있었다.
현재 경찰은 그의 갑작스런 죽음에 대해 몇 가지 의문점을 발견하고 면밀히 수사를 벌이고 있다. 죽음에 이르는 고통 속에서도 어떻게 물을 바닥에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얌전하게(?) 목숨을 끊을 수 있었는가 하는 점이 최대 의문점이다. 일부에서는 타살 가능성을 제기하면서 공범 유무를 밝혀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경찰은 감방 안이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벌어진 것이라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또 DNA까지 일치된 상황에서 자신의 범행을 부인한 점도 의문이다. 사건 담당 기자로 이름을 날려온 그가 확실한 물증 앞에서 자신의 혐의를 부인한 것은 쉽게 납득이 가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튼 타네스키가 갑작스럽게 자살하는 바람에 사건은 희대의 미스터리로 남게 됐다.
김미영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