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부터 순서대로 무차별 살인을 벌인 가토 도모히로, 휴대폰 사이트에 올린 예고살인 글, 범행 이틀 전 CCTV에 찍힌 나이프를 구입하는 장면, 현장에서 제압당하는 순간, 검찰로 송환되는 모습. | ||
이 사건의 범인으로 체포된 가토 도모히로(25)는 사건을 일으키기 전부터 휴대폰 사이트 게시판에 “하고 싶은 일은 살인, 꿈은 와이드 쇼 독점”과 같은 끔찍한 글을 올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범행을 저지르기 직전까지도 그는 흉기로 사용한 나이프를 구입하거나, 트럭을 빌리는 방법부터 시작해서 사건 현장에 도착한 후 남긴 “드디어 시작이다”라는 마지막 글까지 범행 과정을 상세하게 실시간으로 게시판에 올렸다.
체포된 후에는 “자랑스러운 완벽한 아들을 만들려고 하다가 뜻대로 되지 않자 나를 버렸다”는 등 부모를 비난하는 이야기를 되풀이했고, 범행 동기에 대해서는 “현실에서도 인터넷에서도 고독했다. (인터넷 게시판의) 사람들에게 나의 존재감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진술했다.
이와 같이 모방 범죄의 대상이 불특정 다수일 경우 문제는 심각해진다. 경찰 조사에서 아키하바라 사건의 범인인 가토도 과거에 일어난 무차별 살인 사건의 영향을 받았다고 시인했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아키하바라 사건 이후 일본 전역에서는 비슷한 종류의 사건이 연거푸 일어나고 있다.
아키하바라 사건 직후인 지난 6월 10일 “시부야에서 사람을 죽이겠다”는 협박글을 휴대폰 사이트 게시판에 올린 16세 소녀가 경범죄법 위반 혐의로 사이타마 경찰에 서류 송환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소녀는 28회에 걸쳐 “일단 13일 사람을 죽이겠다. 10명 이상은 확실하다”는 등의 글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조사에서는 “친구가 없어 외로웠다. 아키하바라의 무차별 살인사건을 보고 (게시판에) 글을 올리면 반응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고 진술했다.
6월 10일 다른 게시판에는 “6월 16일 오사카 아메리카무라에서 무차별 살인을 일으키겠다”는 글이 올라왔다. 이밖에도 게시판에는 “아키하바라 사건을 보고 나도 용기가 생겼다” “누군가 빨리 나를 구해주지 않는다면 16일에…” “20명은 넘기고 싶다”는 등의 글이 함께 올라와 있었다. 오사카 경찰에 적발된 용의자는 21세의 남자 대학생으로 “설마 나를 찾아낼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집이나 학교에서 재미가 없어 짜증이 났다”면서 자신의 혐의를 인정했다. 지난 6월 14일에는 “내일 규슈의 한 역에서 역사에 남을 대량 살인을 저지르겠다” “나도 가토 용의자에게 공감한다. 가토보다 많은 사람을 죽여 사형을 받겠다”는 무시무시한 글이 휴대폰 사이트 게시판에 올라와 규슈의 주요 역에 경계가 강화되는 소동이 벌어졌다. 경찰의 수사 끝에 밝혀진 용의자는 17세의 소녀였다.
단지 ‘살인 예고’에서 끝난 것이 아니라 실제로 행동에 옮긴 사람도 있었다. 6월 22일 오사카역에서 세 명의 여성이 칼에 베이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다행히 사망자는 없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곳에서 순간적으로 벌어진 일이어서 충격을 안겨 주고 있다. 경찰은 역 안에 있는 방범 카메라를 분석한 후 지난 23일 오야마 가즈카(38)라는 이름의 여성을 상해 혐의로 체포했다. 체포된 용의자는 처음에는 범행을 부인했지만 결국 “갖고 있던 면도칼로 지나가는 사람들을 벴다”고 자백했다.
일련의 사건을 이해하기 위해서 짚고 넘어가야 할 사건이 있다. 지난 1997년 벌어진 일명 ‘사카키바라 사건’으로, 처음에는 초등학생들을 무차별 공격하는 것으로 시작됐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범행은 더욱 잔인해졌다.
범인은 세 번째 살인을 저지르면서 더욱 대담해졌다. 희생자의 목을 잘라 중학교 교문에 걸어놓고 스스로를 ‘사카키바라 세이토(酒鬼薔薇 聖斗)’라고 칭하면서 범죄성명문까지 발표했던 것이다. 그 후 신문사에 보낸 두 번째 성명문에서는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 살인을 저질렀다고 밝혔다.
범인은 사건이 일어난 지 한 달여 만에 체포됐지만 당시 중학생이었기 때문에 언론에는 ‘소년 A’로만 알려졌다. 소년 A가 어렸을 적부터 동물을 학대했다는 점이나 희생된 초등학생들과 안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처참하게 살해하고 전혀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다는 점 등에서 이 사건은 당시만 해도 아직 익숙하지 않았던 ‘반사회적 범죄자’라는 용어를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박영경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