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트우드보다 14세 연하의 손드라 로크(1944년생)는 우연한 기회로 영화배우가 됐고, 데뷔작으로 단숨에 할리우드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견인차 역할을 했던 인물은 남편인 고든 앤더슨. 하이스쿨 동창인 두 사람은 매우 독특한 관계였다. 그들은 부부보다는 남매 같았다. 사실 앤더슨은 게이였는데, 로크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감정적 친밀감으로 인해 그와 결혼을 결심했던 것.
그들은 지역 극단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앤더슨은 어느 날 소식 하나를 알려준다. 카슨 맥컬러스의 소설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의 영화화를 앞두고 오디션이 있다는 것. 로크는 응모했고 합격했으며, 첫 영화로 1969년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조연상 후보에 오른다. 말 그대로 혜성처럼 나타난 신인이었다.
손드라 로크
손드라 로크는 현명했다. 그녀는 자신이 더 이상 여주인공을 할 수 없는 나이라는 걸 알았고, 이런 상황을 대비해 꾸준히 연출에 대한 공부를 해오고 있었다. 실천에 옮긴 작품은 감독 데뷔작 <랫 보이>(1986)였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프로덕션인 ‘말파소’에서 제작한 작품으로, 몸의 절반은 쥐의 모습으로 태어난 소년의 이야기였다. 이 영화는 평단의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으며, 특히 유럽과 프랑스 지역의 극찬이 이어졌다. 손드라 로크는 이스트우드가 자신을 멀리한 것이 이때부터라고 짐작한다.
권위적인 성격의 이스트우드는 순종적이며 의존적인 여성을 좋아했다. 손드라 로크에게 자신이 출연하는 영화만 허락한 것도 그런 이유였다. 하지만 로크는 감독으로서 자신의 길을 걷기 시작했고, 이스트우드는 로크의 그런 행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좀 더 내밀한 이유도 있었다. 이스트우드는 자신에게 ‘아버지의 삶’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당시 로크는 의사의 권유로 자궁 내 피임 기구를 하고 있었는데, 이스트우드는 이것을 불편하게 여겼고 생리 주기를 이용한 자연 피임을 원했고 자신이 콘돔을 착용하는 것도 거부했다. 그 결과 로크는 두 번의 낙태 수술을 해야 했고, 결국 1980년대 초에 불임 수술을 해버린다. 그런데 자식을 원하지 않는다던 이스트우드는, 1980년대 중반 로크 몰래 재슬린 리브스라는 스튜어디스와 관계를 맺으며 두 아이를 낳았다.
그들의 관계는 1988년 12월 29일, 아이다호의 선 밸리에 있는 산장에서 끝났다. 두 사람은 크게 다투었고 이후 몇 달 동안 거의 만나지 않았다. 당시 로크는 두 번째 연출작 <열혈 여경>(1990) 현장에 있었는데, 이스트우드는 그 사이를 틈타 그녀의 모든 소지품을 박스에 넣어 창고에 처박았고 집 열쇠를 바꿔 버렸다.
로크는 1989년 4월에 소송을 냈고 이스트우드는 45만 달러의 위자료와 집 한 채를 주었다. 합의 조건 중 하나는 이스트우드의 영화를 독점적으로 제작했던 워너 브러더스와 로크의 계약이었다. 3년 동안 150만 달러 규모의 영화 제작을 워너가 지원하기로 한 것이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손드라 로크
그러나 1995년에 로크는 이스트우드를 다시 한 번 법정에 세우게 된다. 3년 동안 워너는 로크가 제안한 30개가 넘는 프로젝트에 모두 퇴짜를 놓았고, 워너 작품의 감독으로 고용하지도 않았다. 그 배후엔 이스트우드가 있었고, 그의 압력으로 손드라 로크는 감독뿐만 아니라 배우로도 활동을 멈추게 된다. 간단히 말하면 이스트우드는 로크를 할리우드에서 추방시키려 했던 것.
소송 결과 배심원들은 거의 로크의 손을 들어줬지만, 평결이 나기 직전에 이스트우드는 합의를 시도했다. 정확히 알려지진 않았지만 거액의 돈이 오갔고 로크는 소송을 취하했다. 이후 그녀는 워너 브러더스를 대상으로 소송을 걸었다. 이스트우드와 공모해 로크의 경력을 파괴하려 했다는 이유였다. 5년에 걸친 재판은 1999년 로크의 승리로 끝났고, 결국 워너도 로크와 합의를 했다.
법정에선 이겼지만 로크의 배우와 감독 경력은 큰 데미지를 입었다. 그럼에도 그녀의 승리는 파워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누군가를 영화계에서 쫓아낼 수 없으며 그런 시도엔 큰 대가가 따른다는 것을 증명했다. 이후 그녀는 1997년에 세 번째 연출작인 <두 미 어 페이버>를 내놓았고 1999년엔 13년의 공백을 뒤로 하고 연기자로 컴백했으며 2015년엔 키아누 리브스 주연의 <노크 노크> 프로듀서가 됐다. 그리고 그녀의 법정 싸움은 로스쿨 교과서에 ‘선의’에 대한 법적 개념을 설명하는 사례로 기록되어 있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