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나가는 사람일수록 법인카드의 유혹은 짙다. 한도까지 쓰지 못하면 손해 보는 것만 같고, 마치 법인카드를 쓰기 위해 일하는 것처럼 한도까지 쓰기 위해 기를 쓰고 약속과 이유를 만들어낸다. 카드가 아까워 매일매일 저녁약속을 하느라 저녁이 없는 삶을 살면서 조직을 위해 밤낮없이 일한다고 착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 법인카드는 유혹이기 이전에 함정이기도 하다. 나는 이상하다. 왜 카드를 주기 전에 그 카드로 할 수 있고 할 수 없는 것을 제대로 말해주지 않는지, 잘못 썼을 경우 왜 그때그때 바로바로 이야기를 해주지 않는지. 왜 힘이 빠졌을 때 혹은 힘을 뺄 때 그것을 빌미로 공격당하게 하는지. 관행이란 이름하에 카드를 그렇게 사적으로 쓰는 사람이 많다면 이제라도 카드에 대한 가이드라인 교육이 필요하다.
그리고 법인카드를 쓸 수 있는 당신, 법인카드의 유혹이 달콤하거든 그 달콤함이 함정임을 잊지 말자. 큰 정치든, 작은 정치든, 나라정치든, 작은 조직의 정치든 그 카드는 우선 정치적으로 함정이다. 다들 그렇게 쓴다고 생각해서 문제의식 없이 쓴 법인카드가 어느 날 그렇게 카드를 쓴 그 사람을 잡을 수 있다. 그때는 아무리 일을 잘했어도 봐주지 않는다. 그저 공금에 손을 댄 것이고 배임이 된다. 때로는 그것이 정적을 제거하기 위한 수단이 되기도 한다.
그 카드는 정치적으로만 함정인 것이 아니라 개인적으로도 함정이다. 법인카드는 잘도 쓰다가 법인카드를 쓸 수 없게 되면 푼돈도 쓰지 못하는 남자들이 생각보다 많다.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자기 돈 쓰는 법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자기 돈을 쓰는 법도 배워야 하지 않는가.
돈이 많고 적음은 인격과 관계가 없지만 어떻게 돈을 쓰는지를 보면 인격이 드러난다. 자기 돈으로 누군가를 대접할 줄 모르는 사람 옆에 사람이 있을 리 없다. 그래놓고 사람들이 직책 있을 때만 만나준다며 직업과 직책에 매달리는 남자들을 보면 페르소나를 벗어버리는 성찰의 연습을 안 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직업과 직책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그것은 자기를 표현하는 하나의 도구이지 자기 자체가 아니다. 자기는 직업보다, 직책보다 크다. 나이 들수록 페르소나를 벗고 만날 수 있는 진실한 친구들이 있어야 하고, 그 친구들을 위해 자기 돈을 쓸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것도 연습해야 한다. 중요한 연습이다.
이주향 수원대 교수
※본 칼럼은 일요신문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