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이 반‘이라며 설치 자체에 의미를 뒀지만, 시작하기도 전에 반으로 줄여버리고 힘도 확 뺐다. 50명 vs 25명. 50명은 법무·검찰개혁위원회(개혁위)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권고안에서 최대 검사 규모로 제시한 수치이고, 25명은 법무부가 개혁위 권고안을 토대로 수정해서 내놓은 안이다.
검사 규모가 절반 줄어든 만큼 수사에 필수적인 수사관 규모도 축소했다. 최대 30명 이내로 구성하도록 수정했다. 당초 개혁위는 최대 70명까지 수사관을 꾸릴 수 있어야 한다고 권고한 바 있다.
박상기 신임 법무부장관이 국회에서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를 예방, 악수를 하고 있다. 박은숙 기자
‘칼’을 빼앗기게 된 검찰 분위기는 어떨까. 문무일 검찰총장은 17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공수처 설치안에 대한 의견을 묻자 “이 상황에서 검찰이 어떤 입장을 내놓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별다른 뜻을 법무부에 전달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기본적으로 공수처에 대한 검찰 내부 분위기는 ‘검찰의 과오가 있는 만큼 공수처는 피할 수 없다’였다. 결국 법무부가 공수처 설치안을 내놓자 검찰 내부에선 ‘현실적으로 공수처가 꾸려질 수 있는 방안을 찾다보니 작아졌다’는 평가부터, ‘공수처의 힘을 빼 검찰이 살 길을 찾았다’는 얘기까지 다양한 분석이 나오고 있다. 특히 ‘작아진 미니 공수처’로는 경쟁력이 없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수사력의 ‘근간’이 되는 공수처의 규모부터 다시 짚어보자. 법무부 안에 따르면 공수처는 처·차장을 포함해 검사 25명, 수사관을 30명 이내로 구성할 수 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 수사를 담당하는 한 부서가 부장검사 포함, 검사 6~7명 정도로 이뤄진 것을 감안할 때 특수부 3개 부서 규모다. 그렇지만 통상의 특수부보다 수사 속도는 더딜 수밖에 없다. 수사관이 검찰에 비해 적기 때문. 통상 검찰에서 검사 한 명에 수사관 2~3명이 배정되는 데 비해, 공수처는 수사관 1명 정도밖에 배정할 수 없는 실정이다.
문무일 검찰총장이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에서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를 열고 검찰개혁 방안과 관련해 발언하고 있다. 박은숙 기자
임기도, 수사 범위도 크게 줄였다. 6년 임기에 연임 제한이 없던 개혁위 권고안의 검사 임기를 3년 임기에 최대 세 번 연임으로 제한했다. 공수처·차장 임기는 3년 단임으로 동일하게 했다. 수사 대상 역시 고위공무원단을 정무직 공무원으로 축소하고, 군 장성의 경우 군사법원 관할 사건이라는 점을 감안해 전·현직에서 전직만 가능하도록 규정했다. 금감원도 ‘비공직자적 성격이 강하다’는 이유로 수사 대상에서 제외했다.
법무부 관계자는 이번 설치안에 대해 “현실적으로 수사를 진행할 때 필요한 점, (수사 범위의 경우) 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는 점들을 감안해 다소 축소했다”며 “공수처가 제2의 검찰이 돼서는 안 되지 않냐, 진짜 필요한 수사를 정치 중립성까지 확보해 진행할 수 있도록 고려해 내놓은 안”이라고 설명했다.
공수처의 규모와 임기, 수사 권한 등 겉으로만 드러난 사안들 외에 수사 개시 통보와 공수처장 임명권자 등을 두고도 비판의 목소리가 크다. 우선 인사권을 살펴보면 법무부는 공수처의 ‘정치 중립성’ 강화를 위해 공수처장 임명권을 국회 임명으로 바꿨다. 국회 추천위원회가 2명을 추천하면 국회의장이 각 교섭단체 대표의원과 협의한 뒤 1명을 국회에서 선출하는 것. 그리고 그 1명을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했다. 개혁위 권고안은 별도의 공수처장 추천위가 2명을 추천하면 대통령이 1명을 지명하고 인사청문회를 거치도록 했었다. 대통령이 공수처장을 ‘선택’하는 게 아니라, 임명만 하게 된 것.
대검찰청 관계자는 “개혁위, 법무부에서 공수처 설치 안을 내놓기 한참 전인 지난해 국회에서 발의했던 법안(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용주 국민의당 의원 등 발의안)을 보면 제2의 검찰이 되면 안 된다는 판단 하에 국회가 공수처장 인사권을 가지게 하지 않았냐”며 “명분에 맞는 흐름”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익명을 요구한 검찰 관계자는 “청와대와 국회 사이에서 법무부가 뒤로 쏙 빠진 채 양쪽을 싸움 붙인 모양새”라고 평가했다. 그는 “원래 누구한테 임명을 받았는지가 굉장히 중요한 게 공무원인데, 국회의 임명을 받은 공수처장이 청와대 입맛대로만 움직이지는 않을 것”이라며 “정권 초인 지금도 여소야대 형국인 탓에, 청와대가 김이수 헌재 소장 대행 논란 등을 놓고 국회를 힘들게 끌고 가는 모양새인데 정권 말에 국회와 공수처가 청와대의 의중대로 움직일 리가 없다, 그렇다면 청와대 입장에서 국회가 인사권을 가지고 있는 법무부 공수처 안에 힘을 실어줄 이유가 없다”고 설명했다.
국회 의안과에 박범계(왼쪽)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이용주 국민의당 의원이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 법안을 제출하고 있다.
국회의원 등 고위공직자 수사를 진행해 왔던 검찰의 특수 수사 영역도 유지할 수 있게 됐다. 당초 개혁위 권고안에 있던 ‘수사를 진행하게 되면 고위공직자 수사시 공수처에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 조항을 삭제한 것. 공수처는 검찰이나 경찰이 고위공직자 수사를 개시하면 이첩 요구권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검찰이 수사 여부를 통보하지 않으면 어떤 사건이 진행되는지 알 수 없는 탓에 이첩요구도 할 수 없다. 사실상 공수처 수사 영역의 사건을 여전히 검찰도 진행할 수 있게 된 셈이다.
앞선 검찰 관계자는 “결국 검찰이 공수처와 경쟁을 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든 셈”이라며 “검사 출신들이나 파견 검사로 공수처를 꾸리겠지만 3년 단위로 모인 모래알 같은 조직에서 얼마만큼 큰 사건을 할 수 있겠냐, 결국 언론 폭로로 시작될 일부 사건을 제외하고는 다 검찰과 경찰이 하게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렇다면 공수처를 바라보는 검사들의 마음은 어떨까. ‘피할 수 없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고, 하기 싫었던 정치 사건들에 대해 공수처가 맡아주기를 바라는 검사들도 적지 않다.
영남 지역의 한 부장검사는 “언론에서 자꾸 검찰이 내부 문제에 대해 ‘제 식구 감싸기’를 한다고 하는데 요새 우리 회사(검찰)는 자체 징계를 굉장히 세게 하는 편”이라며 “공수처가 그런 문제의 대안으로 거론되는 것을 듣기 싫은 것이지 공수처 덕분에 검찰도 많이 편해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털어놨다.
결국 예민한 정치 사건을 좀 피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는 것. 그는 “정치인이 엮인, 혹은 정치적인 쟁점이 된 사건을 맡게 돼도 신경 안 쓰인다고 하는 말은 거짓말”이라며 “대통령 관심 사건, 장관 관심 사건을 수사하다 보면 위나 정치권에서 무슨 소리라도 들을까 신경이 곤두서는데, 그런 사건은 공정하게 처리하더라도 원죄처럼 따라다닌다. 그런 사건들을 공수처가 다 가지고 가주면 고마울 것 같다”고 귀띔했다.
한편 공수처의 ‘수사 실력’은 한동안 검찰에 비해 약할 수밖에 없다는 게 검사들 사이의 중론이다. 막 출범한 공수처에 지원할 사람들은 변호사들이 대부분일 수밖에 없기 때문.
특수 수사에 밝은 검사는 “검찰이나 경찰은 범죄 정보를 수집하는 인프라가 갖춰져 있지만 공수처는 범죄 정보 수집 기능이 약해 경찰이나 검찰과 경쟁이 될 수 없다”고 단언했다. 수사 노하우도 쌓기 힘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10년~20년 가까이 함께 근무하며 수사 과정을 하나하나 가르치는 우리와 달리, 짧게는 3년이면 떠날 공수처에서 수사 검사들이 노하우를 서로 공유하겠냐”며 “스스로의 성과를 내기에 급급한 조직이 되면 열심히 할 동력이 없어지기 때문에 조직에 대한 충성도를 잡아줄 ’당근‘도 필요해 보인다”고 우려했다.
앞선 부장검사 역시 공수처에 지원할 이유가 없음을 우려했다. 그는 “공수처장이나 차장 정도 고위직은 다음에 국회의원 등 정계 진출을 노린다면 지원할 수 있어도 밑에서 실제 수사를 할 공수처 검사들 입장에선 경력 면에서 크게 득 될 게 없다”고 선을 그었다. 스타 검사가 되기도 쉽지 않다고. 그는 “스타 검사가 되려면 언론에 노출이 돼야 하는데 그건 처장이나 차장 몫 아니냐?“며 ”밑에서 실제 수사를 할 검사 입장에서 공수처에 지원할 매력적인 이유가 없다”고 지적했다.
‘전관’을 노릴 수 없다는 것도 단점이다. 그는 “피의자들이 검찰 출신 변호사를 왜 선임하느냐, 검찰 내 전관예우를 노리는 것인데, 공수처에서 진행할 사건들은 기본적으로 언론에 노출이 돼 전관예우가 불가능하다”며 “공수처 출신이라고 해서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인지 검찰 내에서 공수처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을 아직 보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때문에 공수처의 세부 조항들에 대해 수정이 불가피하다는 게 중론이다. 대검찰청 관계자는 “법무부도 안을 내놓고는 ‘아직 확정된 게 아니다’라고 하지 않았냐”며 “국감을 앞두고 내놓은 것은 국감 때 국회의원들의 의견을 확인하려는 것이고 여론까지 고려해 청와대와 최종적으로 조율한 안을 내놓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서환한 기자 bright@ilyo.co.kr
청와대 ’세월호 조작 의혹‘ 수사 의뢰에 검 내부 “껄끄럽다 껄끄러워” 전통적으로 ‘최강 화력’으로 불리우는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신자용 부장검사)가 또다시 움직인다. 청와대가 수사 의뢰한 세월호 참사 당일 7시간 조작 사건(대통령훈령 불법조작 사건)을 맡기로 한 것. 앞서 특수1부가 국정농단 의혹 사건에 투입됐던 적이 있기 때문에 사건을 배당했다는 게 검찰의 설명이다. 하지만 검찰 내부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세월호 사건 발생 당일 박근혜 정부 청와대 대응의 잘잘못을 가려야 한다는 목소리도 여전하지만, 검찰 안팎에서는 ‘박근혜 정권 때도 검찰만 찾더니 이번 정권도 다르지 않다’는 우려섞인 반응이 고개를 들고 있다. 시작은 청와대 긴급 브리핑이었다. 청와대는 13일 긴급히 기자들을 불러 모은 뒤 “캐비닛에서 박근혜 정부 당시 청와대가 세월호 관련 자료를 조작한 사실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대검찰청에 수사를 의뢰했다. 청와대는 대검찰청에 보낸 수사 의뢰서에 “박근혜 청부 청와대가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사고 당시 대통령 최초 보고 시간을 오전 9시 30분에서 10시로 바꾸고, 국가안보실장이 국가 위기관리 컨트롤타워를 맡게 돼 있다는 국가 위기관리 기본 지침(대통령 훈령 318호) 중 일부를 삭제하고 변경했다”고 명시했다. 박근혜 정부 당시 청와대가 박 전 대통령에게 최초 보고한 시각과 국가 위기 관리 지침을 사후에 변경한 과정에 ‘범죄 혐의가 있다’는 것. 청와대는 “상황 보고 일지를 허위로 작성한 것은 허위로 공문서를 작성한 혐의로 볼 수 있고, 그 상황 보고 일지를 헌법재판소에도 제출했기 때문에 허위작성 및 동행사로 보인다”며 김기춘 전 비서실장과 김관진 전 국가안보실장, 신인호 전 청와대 위기관리센터장 등을 수사 의뢰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검찰 내부 분위기는 좋지만은 않다. ’사실상 하명 수사‘ ’앞선 정권과 다를 바 없다‘ 등의 반발이 나오는 것. 익명을 요구한 검찰 관계자는 “박근혜 정부에서 모든 정치 사건을 다 검찰에 보내서 자기네 입맛에 맞도록 결과를 만들었다가 우리도 적폐로 몰렸지 않냐”며 “앞선 정권을 문제 삼으면서 이번 정권 역시 똑같이 답습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대검찰청 관계자 역시 “정치적인 갈등 부분은 정치적으로 풀어야 하는데, 이런 부분까지 다 검찰로 넘기는 것은 우리에게 앞선 정권 때 역할을 또 하라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며 “정치적인 부분은 최대한 정치적인 영역에서 해결했으면 좋겠다”고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문무일 검찰총장 역시 이런 내부 분위기를 감지했는지 17일 진행된 기자 간담회에서 “수사를 길게 끌면 피로감이 커질 것 같다, 시한을 정하기는 어렵지만 최대한 빨리 마치는 것을 목표로 수사팀 증원을 추진 중”이라고 언급했다. 하지만 검찰의 마음과는 다르게 문재인 정부에서 검찰을 활용한 적폐청산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이번 정권은 헌법재판소의 헌법적 판단과 공정한 선거를 통해 출범했음에도 불구하고, 앞선 정부들의(박근혜, 이명박)의 흠집을 찾아 정당성을 쌓으려고 한다”며 “청와대에서는 여전히 검찰을 통해 앞선 정권 당시 문제들을 더 들춰내려 한다고 들었다”고 귀띔했다. [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