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와중에 다수의 대중들이 “저 연예인은 동성애자가 맞다”라고 단정 지어 흘리는 루머에 연예인 본인도 소속사도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최근 본의 아닌 ‘성 정체성 논란’에 휩싸였던 선미의 이야기다.
지난 16일 선미는 인스타그램에 “내 손톱에 문제 있어요?”라는 글을 사진과 함께 올렸다. 사진=선미 인스타그램
선미가 갑자기 ‘손톱 문제’를 꺼낸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지난 9일부터 선미의 손톱 사진이 퀴어(Queer·성소수자) 네티즌들 사이에서 뜨거운 감자였기 때문이다. 이들은 짧게 정돈된 선미의 손톱을 보고 “레즈비언이 확실하다” “여자친구도 있는 것 같다”라고 결론을 내렸다. 짧은 헤어스타일, 체크무늬 셔츠와 함께 잘 정돈된 짧은 손톱은 서구에서 ‘레즈비언의 상징’으로 불린다.
이 같은 퀴어 네티즌들의 단정적인 발언이 문제가 된 것은 ‘짧은 손톱’이 담고 있는 성적인 의미 때문이다. 한 트위터리언은 “레즈비언들 사이에서 자신의 짧은 손톱을 어필한다는 건 ‘내 몸은 (섹스할) 준비가 됐다’라는 뜻”이라고 언급했다. 이를 두고 퀴어 네티즌들이 “손톱이 짧은 걸 보니 레즈비언이 맞고, 여자친구도 있는 게 분명하다”고 주장하고 나서자 팬들은 이런 단정적인 해석이 성희롱으로 느껴졌다며 반발하고 있다.
이런 ‘짧은 손톱’ 논란은 지난 5월 백상예술대상 시상식에 참석한 배우 김혜수에게도 있었다. 후배 배우인 천우희에게 손등 키스를 한 김혜수의 손톱이 짧다는 이유로 “레즈비언이다” “천우희를 꼬시려고 보여주는 것 같다” 등등의 의혹이 제기됐던 것. 다른 네티즌들이 “김혜수의 짧은 손톱은 취미인 요리 때문에 다듬은 것이지 동성애자라서 그런 게 아니다”라고 지적했지만 논란 글의 작성자는 여전히 글을 남겨둔 상태다.
선미의 짧은 손톱도 2015년 베이스 연주를 시작하면서부터 짧게 유지해온 것으로 알려지면서 손톱으로 인한 퀴어 논란은 사그라지는 듯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선미가 직접 자신이 퀴어라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라는 주장이 득세했다. 그가 레즈비언이 아니라면 “최소 바이섹슈얼(Bisexual·양성애자)”이라는 새로운 주장이었다.
선미의 성 정체성 논란이 시작됐던 이달 초부터 선미를 퀴어로 단정짓는 의견들이 많았다. 사진=트위터
애초에 선미는 f(x)의 크리스탈과 엠버, 브라운아이드걸스의 가인이나 배우 김혜수, 천우희 등과 함께 ‘퀴어들이 좋아하는 연예인’으로 꼽혀왔다. 특히 선미의 곡인 ‘보름달’ ‘24시간이 모자라’에 이어 이번 8월 컴백 무대에서 선보였던 ‘가시나’는 퀴어들 사이에서 그야말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처럼 ‘퀴어 연예인’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던 선미가 앞선 사례들과 더불어 무지개 빛깔의 조명을 이용해 사진을 촬영한 것도 “성 정체성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무지개는 퀴어를 상징하는 색깔이다. 지난 8월 ‘가시나’ 활동에서 남성 댄서들을 여성 댄서로 교체해 무대에 올랐던 것도, 전 원더걸스 멤버들과 얼굴을 맞대고 셀카를 찍은 것도 모두 선미가 퀴어임을 가리키는 지표라는 것이 퀴어 네티즌들의 주장이다.
SNS에서는 설전이 벌어졌다. 팬들은 “선미의 손톱 사진이나 셀카를 가지고 동성애자로 단정하고 성희롱을 하지 말라”고 비판했고, 퀴어 네티즌들은 “선미는 자신을 동성애자라고도 하지 않았지만 이성애자라고도 선언하지 않았는데 그를 이성애자로 규정하는 것은 동성애자에 대한 폭력이고 퀴어 혐오적인 행동”이라고 맞섰다. 심지어 지난 16일 선미가 올린 “내 손톱에 무슨 문제라도?”라는 게시글에서 선미가 보라색 체크무늬 옷을 입고 셀카를 찍었다는 이유만으로 “선미가 또 사진으로 성 정체성(보라색, 바이섹슈얼)을 드러냈다”라는 해석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일부 퀴어 네티즌들은 오히려 선미의 글에 직접적인 불쾌감을 표현하기도 했다. “퀴어 이미지를 사용해서 인기를 끌어놓고 이제 와서 문제가 될 것 같으니 발을 빼는 건 비겁하다”는 것이 이들의 이야기다.
한 트위터리안은 선미의 글에 대해 “그동안 여자 댄서랑 섹스어필하는 춤은 잘만 춰 놓고 이제 와서 퀴어 돌려 까는 듯한 애매한 글 쓰지 마라”며 비난하기도 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선미가 의혹을 전면으로 반박하거나 적극적으로 해명하는 것도 어렵게 됐다.
연예계는 다소 난감하다는 입장이다. 연예인들의 성적인 취향에 대해 소문이 퍼지더라도 암묵적으로 외면해주거나 ‘뒷소문’ 선에서 그쳤던 과거와 달리 SNS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성적 취향을 사실로 단정 짓는 SNS 루머에 강경하게 대응하면 ‘동성애 혐오자’가 되고, 내버려 두면 ‘동성애자’가 되는 판이다. 이러다 보니 대응 방법을 정하기도 만만치 않다.
이에 대해 한 연예계 관계자는 “최근 연예계는 여자 연예인들의 ‘걸 크러시’ 콘셉트나 ‘커플링’ 문화로 성소수자에 대한 검열 잣대가 다소 완화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그러나 이는 결국 상업적인 이미지 포장이지 연예인 그 자체와는 분리해야 한다. 비즈니스 판타지는 비즈니스 판타지”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아직까지 성소수자를 배척하는 경향이 강한 한국 사회에서 ‘성소수자’라는 딱지가 붙을 경우 그 이미지를 탈피하기가 쉽지 않고, 이 때문에 활동에 제약이 걸리게 된다”라며 “그렇다고 연예인이 일일이 (성소수자가 아니라고) 해명하고 다니면 그건 또 성소수자 혐오자라고 할 거 아닌가. 결국 이런 경우에는 당사자도 소속사로서도 선미처럼 소극적으로 대처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