궐련형 전자담배 아이코스가 국내 출시 4개월 만에 서울 시장 점유울 5%를 돌파했다. 사진=한국필립모리스
‘찌는 담배’ 아이코스 돌풍이 담배업계를 강타하고 있다. 국내 출시 4개월 만에 서울 시장점유율 5%를 돌파한 아이코스는 판매망을 전국으로 확대하며 업계 지각변동을 예고하고 있다. 아이코스 제조사인 필립모리스 관계자는 “본사 차원의 공식 발표가 없어 정확한 판매량은 모른다”면서도 “서울에서 소비자 반응이 좋았고, 이달부터 전국 단위 유통이 시작된 만큼 판매고는 더 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유통업계는 지난 8월 기준 아이코스 누적 판매량을 25만 대로 추산한 바 있다.
BAT코리아도 전자담배 ‘글로’ 출시로 본격적인 시장 공략에 나섰다. 올 1월 BAT(브리티시아메리칸타바코) 글로벌 본사는 전자담배 기술력을 갖춘 미국계 담배 회사 레이놀즈아메리칸을 494억 달러(한화 약 57조 8000억 원)에 인수했다. 세계 최대 담배회사가 된 BAT는 미래 신성장동력으로 전자담배를 주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필립모리스는 독일, 영국, 이탈리아 등 EU국가를 비롯해 일본, 뉴질랜드, 캐나다 등으로 ‘아이코스 영토’를 넓히고 있다.
국내 유일의 담배회사인 KT&G는 글로벌 경쟁사들에 비해 전자담배 시장에서 한 발 뒤처진 모습을 보인다. 오는 11월 자체 제작한 전자담배 LIL(릴) 출시를 예고했지만 아이코스의 맹위가 여전해 당분간은 고객 확보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실제 BAT가 야심차게 내놓은 글로는 누적 판매량이 2만 대에 못 미치며 ‘찻잔 속 태풍’에 그쳤다. KT&G 관계자는 “릴에 대해선 연내 출시 계획 외에 말할 수 있는 것이 없다”며 “전자담배 시장이 얼마큼 성장할지에 대해서도 현 단계에선 예단할 수 없다”고 전했다.
KT&G 주가는 지난 3개월간 최대 2만 원 가까이 하락하며 ‘아이코스 효과’를 절감하고 있다. 매년 사상 최대 실적을 갱신하고, 코스피 상장사 가운데 최고 수준의 영업이익률(30~35%)을 자랑하는 KT&G 주가가 흔들린 것은 그만큼 아이코스 열풍이 대단하다는 것을 뜻한다. 올 상반기 KT&G는 담배 부문에서 1조 5283억 원의 수익과 6405억 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일본은 이미 2017년 3월 기준 아이코스의 담배 시장 점유율이 9.6%까지 치솟았다. 담배업계에선 일본과 문화적 특성이 비슷한 한국도 아이코스 점유율이 점차 높아질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그러나 증권가를 중심으로 아이코스 열풍이 일부 과장됐다는 반론도 제기된다. 아이코스가 출시된 25개국 가운데 일본을 제외하면 유의미한 시장 변화가 일어난 곳이 없다는 것이다. 담배업계 관계자는 “일본은 남에게 피해 주지 않으려는 국민성이 있는데 냄새가 덜한 아이코스의 장점이 어필된 것으로 보인다”며 “그러나 일본을 제외하고는 아이코스가 성공한 나라가 아직 없는 걸로 안다”고 말했다.
심은주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지난 9월 27일 ‘이쿼티 리서치’에서 “(아이코스에 대한) 우려가 과도하다”며 “전자담배의 개별소비세 인상 여부에 따라 점유율 추이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현재 정부는 전자담배에 대해 기존 담배의 90%까지 소비세율을 적용하는 안을 놓고 국회와 협의 중이다.
KT&G 주가는 지난 3개월 간 최대 2만 원 가까이 하락하며 ‘아이코스 직격탄’을 절감하고 있다. 일요신문 DB.
세금 인상으로 전자담배 가격이 오르면 ‘후발주자’인 KT&G는 ‘어부지리’를 노릴 수 있다. KT&G 관계자는 “담배를 피우지 않던 소비자가 전자담배를 구매하진 않기 때문에 릴이 신규 수요를 창출하긴 어렵다”고 설명했다. 즉 담배시장 ‘전체 파이’는 변하지 않는데 아이코스가 돌풍을 일으키면 KT&G 점유율은 낮아질 수밖에 없다. 반대로 아이코스 판매가 부진하면 KT&G엔 점유율을 수성할 기회가 된다. KT&G는 2014년 62.3%의 시장점유율을 기록했고, 2015년 58.4%까지 점유율이 하락했지만 2016년 59.2%, 올 상반기 60.6%까지 점유율을 회복했다.
특히 KT&G는 2010년부터 국내보다는 해외 시장 공략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미 국내 담배 시장은 2002년 이후 금연 열풍과 흡연 규제 강화, 세금 인상 등이 맞물려 점차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반면 해외에선 핵심 수출지역인 중동·중앙아시아 등 개발도상국을 중심으로 판매량이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KT&G의 해외 매출은 2014년 4526억 원에서 2016년 8309억 원으로 뛰었다. 이 가운데 중동·중앙아시아·러시아에서 올린 매출은 같은 기간 3049억 원에서 4569억 원으로 증가했다. 즉 국내에서 부진한 실적을 해외 영업 확대로 돌파하고 있는 셈이다. 다만 해외도 흡연에 대한 현지 정부의 규제가 점차 확대되는 추세고, 미국을 중심으로 국가간 무역장벽이 높아질 가능성이 대두되면서 KT&G도 안심할 순 없는 상황이다.
무엇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전자담배 수요는 늘 수밖에 없는데 KT&G가 초기 투자에서 뒤처졌다는 점은 향후 실적에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재계 관계자는 “괜히 아이코스가 담배업계의 아이폰으로 불리는 게 아니다“라며 ”스마트폰 신규 수요가 생기면서 기존 휴대전화 시장 최강자인 노키아가 몰락한 것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고 했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