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일 콜롬비아 무장 혁명군에게 인질로 잡혀있다 구출된 베탕쿠르 전 대선후보. 함께 붙잡혀 있던 미국인 3명 등 14명도 구조됐다. EPA/연합뉴스 | ||
지난 2일 콜롬비아 무장혁명군(FARC)에 의해 납치되어 있던 콜롬비아 전 대선후보 잉그리드 베탕쿠르(46)를 포함, 열다섯 명의 인질들이 모두 무사히 구출된 데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들이 많다. 문제는 아이러니하게도 작전이 너무 완벽했다는 데 있었다.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인질들을 구출한 것이 오히려 석연치 않다는 것이다.
콜롬비아 정부는 이번 작전이 오랜 기간 동안 철저하게 준비한 끝에 이루어진 성공적인 작전이었다고 자축하고 있는 반면, 일부 언론들은 구출작전이 완벽하게 이루어진 것은 콜롬비아 정부가 혁명군에게 미리 몸값을 지불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이번 구출작전이 미국의 대선 캠페인과 어느 정도 연관되어 있다는 의혹도 불거졌다. 공화당 대선 후보로 선출된 존 매케인 상원의원이 작전에 깊숙이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다.
지난 6년 동안 FARC에 의해 억류되어 있다가 마침내 자유의 몸이 된 베탕쿠르가 가족들과 눈물겨운 상봉을 할 때만 해도 사람들은 “기적과도 같은 일이 벌어졌다”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 스위스, 프랑스, 콜롬비아 등의 몇몇 언론이 이번 작전이 전부 ‘쇼’였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나섰다. 영화 같은 극적인 구출작전이 아니라 사실은 몸값을 감추기 위한 위장극에 불과했으며, 반군 역시 이번 연극의 공범으로서 되레 상황을 즐기고 있었다는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먼저 콜롬비아 정부가 주장하는 ‘완벽한 작전’의 개요는 다음과 같다. 콜롬비아 군에 따르면 작전은 이미 1년 전부터 치밀하게 준비해왔던 것이었다. 먼저 FARC 조직에 콜롬비아군 정보요원을 스파이로 잠입시킨 다음 이들의 신뢰를 얻는 것이 첫 번째 목표였다. 이 과정에서 조직에 불만을 품고 있는 몇몇 FARC 조직원들을 신분보장 및 망명 등의 조건으로 매수했다.
그리고 첨단 위성장비를 사용해 FARC 지역 간의 무전이나 전화 등 모든 통신망을 두절시켜 놓았다. 지도부와의 연락이 두절된 상태에서 인질들을 억류하고 있던 책임 지휘관인 ‘세자르’라는 인물은 “지도부에서 인질들을 다른 곳으로 옮기라는 명령이 내려졌다”는 스파이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또한 스파이는 “이번 이동은 ‘국제적인 임무’이기 때문에 FARC에 우호적인 비정부기구(NGO)의 헬리콥터가 이용될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이렇게 해서 베탕쿠르를 포함한 콜롬비아군 포로들과 지난 2003년 비행기 추락으로 인질로 잡혀 있던 FBI 마약감시반 소속의 미국인 세 명 등 모두 열다섯 명의 인질들은 며칠 동안 정글을 걸어서 헬리콥터가 대기하고 있는 목적지로 이동했다.
그리고 작전의 클라이맥스는 마지막 22분에 이루어졌다. 스페인어로 ‘하케(Jaque)’, 즉 ‘장군’이라는 뜻의 작전명이 사용된 이번 작전은 헬리콥터가 착륙해서 이륙할 때까지 정확히 22분 13초가 소요되었다.
수십 명의 반군들에 둘러싸여 헬리콥터가 대기하고 있는 장소에 도착한 인질들은 플라스틱 수갑이 채워진 채 하나 둘 헬리콥터에 올라탔다. 인질들을 넘겨주던 반군들은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반군들과 비정부기구 직원들로 위장한 콜롬비아군 특공대는 일부러 좌익 혁명가인 체 게바라의 얼굴이 찍힌 티셔츠를 입고 있거나 혹은 알지도 못하는 NGO 로고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있었으며, 대기하고 있던 헬리콥터 역시 흰색 페인트칠이 칠해진 채 철저하게 위장되어 있었다. 또한 특공대원들은 열흘에 걸쳐 철저한 연기 지도를 받았을뿐더러 스페인어, 아랍어, 호주식 영어 발음까지 연습했기 때문에 누구도 이들의 정체를 의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인질을 태운 후 헬리콥터가 이륙하자 상황은 급반전됐다. 반군인 줄만 알았던 대원들이 “우리는 콜롬비아군이다. 당신들은 이제 자유다”라고 말하면서 정체를 밝힌 것이다. 뜻밖의 상황에 놀라 어안이 벙벙했던 인질들은 그제야 자신들이 구출되었다는 사실에 감격했으며, 서로 부둥켜 안고 울기 시작했다. 반면 영문을 모르고 헬리콥터에 동승했던 세자르와 또 한 명의 조직원은 그 자리에서 무장해제당하고 벌거벗겨진 채 체포되고 말았다.
작전이 실패할 경우를 대비해서 당시 인근 상공에는 콜롬비아군 헬기 39대와 2000명의 병력이 비상 대기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사실은 ‘완벽한 작전’이 아니라 ‘완벽한 각본’이었다면? 처음 이런 주장을 하고 나선 것은 스위스의 라디오 방송인 ‘라디오 스위스 로망드’였다. 콜롬비아 및 미국 정부가 세자르에게 미리 2000만 달러(약 200억 원)를 몸값으로 제공했다는 것이다. 미국이 개입한 것은 인질 중에 미국인이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매우 믿을 만한 제보자’에 의한 정보라고 밝힌 스위스 방송은 “세자르와 협상을 한 것은 콜롬비아 정부군에 체포되었던 한 FARC 요원의 부인이었다. 콜롬비아 정부는 이 부인을 다시 FARC에 돌려보냈고, 결국 남몰래 남편과 세자르 등을 설득해서 몸값을 건네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이렇게 해서 세자르는 콜롬비아군의 ‘공범’으로서 마지막에 헬리콥터에 올라탔던 것이고, 곧 막대한 보상금을 받고 프랑스로 망명할 예정이라는 것이다.
이와 관련, 프랑스의 <르몽드> 역시 “인질들을 담당하던 세자르가 자신을 사면해주는 조건으로 인질들을 내준 것일지도 모른다”는 추측했으며, 여기에 프랑스의 사르코지 대통령도 개입되어 있을지 모른다고 덧붙였다.
▲ 존 매케인 후보(왼쪽), 우리베 대통령. | ||
이처럼 몸값이 지불됐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콜롬비아 정부는 “사실이 아니다. FARC가 흘리는 거짓 정보일 뿐이다”고 반박했으며 “2000만 달러는 너무 적다. 만일 몸값을 준다면 적어도 1억 달러(약 1000억 원)는 줬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미국 정부 역시 “우리는 단돈 1달러도 지불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어 몸값 의혹을 잠재우기 위해서 콜롬비아 정부는 구출 당시 몰래 촬영한 동영상을 공개했다. 기자로 신분을 속인 콜롬비아 군이 현장에서 몰래 촬영한 이 동영상은 인질들이 헬리콥터에 오르기 직전부터 헬리콥터가 이륙한 후 자유의 몸이 되는 순간까지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하지만 이번에도 의혹은 제기됐다. 스위스 언론 <제네바런치>는 “이 3분짜리 구출 동영상은 헬리콥터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정확히 보여주지 않고 있다. 특히 세자르가 제압당하는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콜롬비아 언론들 역시 “동영상 중간은 어디로 갔나”라면서 의문을 제기했다. 인질들이 헬리콥터에 올라탄 직후 몇 초간의 분량이 잘린 채 바로 기뻐하는 모습만이 보였다는 것이다.
콜롬비아의 유력 일간지인 <엘 티엠포>는 “정부가 원래 15분짜리 동영상을 3분으로 편집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콜롬비아 정부는 “작전에 가담한 우리 측 스파이들의 신분을 노출시키지 않기 위해서 부득이하게 편집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해명했다.
이처럼 몸값과 관련된 논란이 한창인 가운데 미국 공화당의 존 매케인 대선 후보가 이번 작전에 은밀하게 개입돼 있다는 소문도 불거졌다. ‘왜 매케인은 하필 구출작전이 벌어지기 직전에 콜롬비아를 방문했을까’ ‘대선후보로 지명된 후 첫 해외순방국으로 왜 콜롬비아를 택했을까’ 하는 의문이 일고 있는 것이다. 단순한 우연이었을까, 아니면 계획된 행동이었을까.
이에 대해
매케인이 콜롬비아 구출작전에 개입한 이유에 대해서는 몇 가지 의견이 분분하다. 첫째, 미국과 콜롬비아 간의 자유무역협정(FTA)을 염두에 둔 행보였다는 설이 있다. FTA에 반대하는 민주당과 달리 FTA를 적극 추진하고 있는 공화당을 위해 콜롬비아 정부가 무언가 보답하는 차원에서 매케인의 방문 기간 중에 때맞춰 구출작전을 실시했다는 것이다. 이로써 지금까지 FTA를 체결하는 데 있어 걸림돌이 되었던 콜롬비아의 인권문제가 인질이 해방되었다는 소식과 함께 점차 개선되고 있으며, 동시에 FARC의 세력도 약화되고 있다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실제 매케인은 구출작전이 실행되기 하루 전날 우리베 콜롬비아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작전내용을 브리핑받았으며, 부시 대통령 역시 미리 연락을 받고 알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매케인은 “콜롬비아 방문이 결정되기 직전까지 구출작전에 대해서는 들은 바가 없었다. 이번 작전과 나의 방문은 아무런 연관이 없다”고 발뺌하고 있다.
둘째, 매케인이 이번 구출작전을 자신의 선거운동 도구로 사용하고 있다는 설이다. 자신 역시 베트남 전쟁 포로였다는 점, 그리고 구사일생으로 탈출에 성공했다는 점 등이 이번 구출작전을 통해 유권자들로 하여금 다시 한 번 자신의 ‘영웅적 이미지’를 떠올리게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또한 이는 최근 미국 대선에서 영향력이 높아지고 있는 히스패닉계 유권자들을 겨냥한 것이기도 했다. 실제 매케인은 공교롭게도 인질 구출 며칠 후에 워싱턴에서 열린 라틴아메리카시민연맹(LULAC) 회의에 참석하기로 되어 있었다.
셋째, 오바마에 비해 자신의 외교 능력이 월등하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설도 있다. 지금까지 오바마의 취약점 중 하나로 꼽히고 있는 외교력을 집중 공략하겠다는 의도였다는 것이다.
만일 이것이 모두 사실이라면 과연 매케인은 이번 구출작전으로 기대했던 만큼의 성과를 거둘 수 있을까. 11월 대선까지 아직 5개월이란 시간이 남아 있기 때문에 결과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할 듯싶다.
한편 이번 작전으로 확실하게 수혜를 입은 것은 지지율이 91%로 급등한 우리베 콜롬비아 대통령과 다시 한 번 국민적 영웅으로 떠오른 베탕쿠르 자신일 것이다. 베탕쿠르는 자신의 지옥 같은 경험담을 토대로 한 극본을 쓸 예정인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할리우드 제작사도 이번 소재를 영화로 만드는 데 열을 올리고 있어 조만간 돈방석에 앉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김미영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