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지방선거에서 시민들이 투표를 하고 있다. 구윤성 기자
실제 그랬다. 참여정부 이후 지방선거와 총·대선의 상관관계를 보면, 제3당의 운명은 혹독했다. 2006년 5·31 지방선거에서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은 확고한 양당 체제를 구축했다. 앞서 2004년 17대 총선에서 양당은 각각 152석과 121석을 차지했다. 제3당은 호남의 민주당과 충청의 국민중심당이었다. 당시 16곳의 광역단체장 가운데 민주당은 2곳에서 당선하는 데 그쳤다. 국민중심당은 단 1곳에서도 승리하지 못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레임덕(권력누수 현상)으로 참패를 당한 열린우리당과 제3당의 한계를 느낀 민주당은 2007년 17대 대선 땐 대통합민주신당, 2008년 18대 총선 땐 통합민주당 이름으로 선거를 치렀다. 호남 지역당에 불과하던 민주당이 열린우리당으로 사실상 흡수 통합된 셈이다.
심대평 전 국민중심당 대표는 17대 대선에서 무소속으로 나온 충청권의 맹주인 이회창 전 총재를 공개 지지했다. 이 전 총재는 15%의 득표율로, 이듬해 2월 자유선진당을 창당한 뒤 국민중심당을 사실상 흡수했다. 충청권 맹주의 만남이었지만, 상수는 이 전 총재였다.
2010년 6·2 지방선거는 ‘1여 3야’ 구도로 치러졌다. 한나라당에 맞서 민주당과 자유선진당, 민주노동당, 창조한국당, 진보신당 등이 나섰다. ‘노무현 정신’을 앞세워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국민참여당을 창당한 것도 이때다.
16곳의 광역자치단체장 중 한나라당은 6곳, 민주당은 7곳, 자유선진당은 1곳, 무소속은 2곳에서 각각 당선됐다. 진보정당은 참패를 면치 못했다. 유 전 장관을 경기도지사 후보로 내세운 국민참여당도 양당 체제 벽에 막혔다.
2년 뒤 치러진 19대 총선에서는 범진보진영은 통합진보당을 창당했다. 민주노동당과 국민참여당, 진보신당 통합파가 단일대오를 형성한 것이다. 통합진보당은 그해 총선에서 13석을 얻었다.
하지만 통합진보당은 진보진영의 해묵은 과제인 NL(민족자주파)과 PD(민중민주파)의 갈등을 넘지 못하면서 이내 두 쪽으로 갈라졌다. 통합진보당과 정의당으로 분화된 채 치른 2014년 6·4 지방선거에서 양당은 광역자치단체장은 물론, 기초자치단체장 선거에서도 전패했다.
채진원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양당 체제가 고착된 한국 정치에서 제3당이 장기간 영향력을 갖는 것은 어려운 게 현실”이라며 “중도층을 대변하는 정당 모델을 고민해야 한다”고 밝혔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