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령 고양이를 예로 들어보자. 어두운 밤 자동차가 질주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양이는 가장 나쁜 타이밍에 도로를 가로질러 뛰어든다. 자칫 차에 치여 죽을 수도 있는 위태로운 상황.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왜 자동차를 피하지 않을까’ 이해가 되지 않겠지만, 고양이로서는 일종의 본능적인 행동이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재해로 인한 사망 사고의 상당 부분은 본능적인 심리 문제에서 기인한다.
이와 관련, 일본의 재해심리학 권위자인 히로세 히로타다 교수는 “특히 현대인은 안전함과 편리함에 익숙해진 탓에 위기 대응 능력이 떨어진다”고 지적한다. 덧붙여 “위급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빠지기 쉬운 심리적 함정을 알아두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즉, 재난에 직면했을 때 인간심리를 잘 이해했는지가 생사를 가른다는 얘기다. 일본 주간지 <주간겐다이>가 보도한 내용을 통해 위기 상황에서 흔히 저지르기 쉬운 실수들을 짚어본다.
지난해 10월 19일 서울 운현초등학교에서 진행된 지진대피훈련 모습.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Q. 운전 중에 갑자기 지진이 발생했다. 어떻게 대피하는 것이 좋을까.
올바른 대피요령은 이렇다. ‘자동차는 갓길에 세우고, 자동차 키는 그대로 꽂아둔 채로 내린 다음, 안전한 곳으로 대피한다.’ 지진을 수없이 겪는 일본에서는 누구나 알고 있는 기본 상식이다. 30대 일본인 여성 A 씨도 익히 숙지하고 있었던 바다.
그런데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했을 당시, A 씨는 필사적으로 차에 탄 채 도망치기 바빴다. 그는 “정신을 차려보니 매뉴얼과는 정반대로 행동하고 있었다”고 털어놨다. 만약 운이 나빴더라면 자동차째 쓰나미에 휩쓸려갔을지도 모른다. 이처럼 피난 시 취해야 할 행동과 실제 인간심리는 들어맞지 않는다. 그 이유는 크게 다섯 가지의 심리적 함정 때문이다.
# 정상성 선입견
사고나 재해가 일어났을 때 ‘별일 아닐 거야’라고 자기 편한 대로 해석해 사태의 심각성을 모르는 심리현상이다. 위험한 상황도 정상 범위 내의 것으로 취급해버린다. 이 현상은 2001년 미국 동시다발테러 현장에서도 발생했다. 여객기와 충돌한 고층빌딩에서 바로 피난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던 것. ‘곧 잠잠해지겠지’ ‘이곳은 괜찮아’ 라는 믿음으로 피난이 늦어졌고, 빌딩이 붕괴되면서 희생됐다.
# 집단동조성 선입견
위험을 느끼면서도 다른 사람들이 도망치지 않아 좀 더 지켜보다가 함정에 빠지는 경우다. 예를 들어 화재경보기가 울리는데, 주위 동료가 태연히 일을 하고 있다. ‘오작동인가’ 싶기도 하고, 어쩌면 ‘진짜 위험한 상황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주변이 서두르는 기색이 없으므로 결국 분위기에 휩쓸려 대피하지 않는다. 그러나 대형 재해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했을 때는 이미 늦다. 위험을 느꼈다면 혼자서라도 피난 행동을 시작하라.
# 동화성 선입견
쉽게 말해 위험을 외면하는 현실도피다. 대부분 갑자기 닥치는 위험에 대해서는 방위 심리가 작용해 긴급 대응한다. 반면 태풍이나 방사능오염과 같이 서서히 진행되는 위험에는 둔감하게 반응하기 쉽다. 앞서 언급한 정상성 선입견과 함께 결합되는 경우가 빈번하다.
# 얼어붙는 증후군
느닷없이 재해가 닥치면 사람들은 패닉과 같은 과잉반응을 보이는 게 아니라, 오히려 망연자실해 아무 것도 못하게 된다. 실제로 탈출할 기회가 충분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희생되는 주요 요인은 눈앞에서 벌어지는 급격한 현상을 뇌의 인지기능이 따라가지 못해 마음과 신체, 행동이 얼어붙기 때문이다. 다행스러운 점은 그 시간이 매우 짧다는 것이다. 주위에 누군가 얼어붙은 사람이 있다면 “정신차려! 도망쳐야 해”라고 외침으로써 해동시켜줘야 한다.
# 낙관적 무방비
흔히 즐거운 상황에서는 부정적인 일을 염두에 두지 않으려 한다. 가령 여행을 즐기고 있는 사람은 자신의 행복한 시간을 위협하는 ‘재해 및 나쁜 정보’들을 무의식적으로 자동 배제하는 것이다. 게다가 그룹이나 집단이라면 이러한 심리작용은 강화될 위험이 있다. 은연중에 ‘재난과 사고가 우리에게 닥치겠어?’라고 치부해 버린다.
재해 시에는 최악의 경우를 상정하고 행동해야 한다. 재해를 얕보지 말라는 것이 대전제다. 또 침착함의 유무도 생사를 가른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대재난 이면에선? 기적 만든 소신예보, 참사 부른 양치기예보 # 100만 명의 목숨을 구한 ‘하이청지진’ 과학이 발전했지만, 지진 예측은 여전히 ‘신의 영역’에 머물러 있다. 그런데 1975년 2월 4일 중국 하이청(海城)에서 발생한 지진은 신도 혀를 내두를 만큼 예상이 적중했던 사례다. 지진 발생 직전 하이청에서는 “쥐떼가 출몰했다” “우물 맛이 변했다” 등 자연 이상에 관한 목소리가 줄을 이었다. 이에 당국은 지진학자들을 모아 논의를 벌인 결과 “조만간 큰 지진이 일어날 것”이라는 의견에 도달했다. 주민 100만 명을 피신시켰는데, 당일 저녁 정말 7.5규모의 대지진이 발생했다. 그리고 1년 후. 하이청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탕산에서 같은 규모의 지진이 일어났다. 이때는 주민 대피령이 없었으며, 무려 24만 명 이상이 사망한 것으로 전해진다. # 4번 헛스윙이 부른 참사 ‘나가사키 대수해’ 사망·실종자수 299명이라는 인적 피해를 낸, 일본 도시형 재해의 시초다. 1982년 장마가 끝나갈 무렵, 시간당 무려 187mm의 폭우가 쏟아졌다. 수해의 피해가 유독 컸던 이유는 주민들의 피난이 늦었기 때문. 앞서 일본 기상청은 총 4차례 폭우홍수 경보를 발령했지만, 모두 재난이 일어나지 않았다. 경보에 대해 주민들의 신뢰가 무너질 대로 무너진 상태였다. 그 결과 5번째 경보에서는 산사태 등이 발생했으나 미처 대피하지 않아 많은 희생자가 나왔다. # 일본판 타이타닉 ‘도야마루호 해난 사고’ 1954년 연락선 도야마루가 태풍을 만나 전복됐다. 탑승자 1314명 가운데 1155명이 사망하는 대참사였다. 이 엄청난 재앙에서도 생사를 가른 것은 역시 침착한 행동이었다. 생환자 가운데 <도야마루 조난기>를 펴낸 후치가미 미쓰오 씨는 “당시 패닉 상태에 빠지지 않고, 창문으로부터 탈출을 시도해 아비규환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밝혔다. # 사망자 0명의 ‘우스산 분화’ 2000년 3월 31일 홋카이도 우스산이 분화했다. 그러나 화산 재해로는 전대미문인 사망자 0명을 기록했다. 기적의 주역은 우스산 분화 이틀 전, 화산전문가 오카다 히로무 명예교수가 실시한 기자회견이었다. 화산 분화는 변수가 큰 재해로 정부조차 사전 발표를 꺼리는 편이지만 오카다 교수는 “하루 이틀 안에 분화할 가능성이 높고, 늦어도 1주일 내 틀림없이 폭발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전문가의 소신 있는 발언에 따라 주민 1만 6000여 명을 대피시킴으로써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 [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