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8년 국정감사를 뜨겁게 달군 베이징 올림픽 연예인 응원단. 연합뉴스
[일요신문] 지난 13일 세종시 정부청사에는 노제호 히딩크 재단 사무총장이 나타났다. 그는 지난 9월부터 최근까지 축구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인물 중 한 명이었다. 그는 한 달 이상 축구계를 뜨겁게 달궈온 ‘히딩크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그런 그가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이하 교문위) 국정감사 현장에 나섰다. 서울 신문로 축구협회가 아닌 정부청사에서 국회의원들의 입으로부터 히딩크 논란에 대한 질문이 쏟아졌다.
국감에서 스포츠와 관련된 사항이 다뤄진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과거부터 체육인들은 종종 국감에 불려나와 질타 세례를 받곤 했다. 김호곤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장과 양해영 KBO 사무총장도 각 단체 비리와 관련해 13일 교문위 국감에 출석을 요구 받았으나 최종 불참했다.
13일 오후 정부세종청사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열린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증인 선서를 하고 있는 노제호 히딩크재단 사무총장. 연합뉴스
대한민국에서 국민적 관심을 가장 많이 받는 스포츠팀은 축구 국가대표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많은 이들의 이목이 집중되는 축구협회는 이전에도 국감에 불려나온 전력이 있다.
2005년 당시 국회 문화관광위원회(현 교문위) 국감에서는 조중연 당시 축구협회 부회장을 증인으로 채택했다. 협회는 회계부정 의혹, 상표권 보호실태 등의 행정 문제와 대표팀 감독 교체 과정에 논란이 일고 있는 상황이었다.
협회 설립 70여 년 만에 최초로 국감에 나선 축구협회는 조 부회장이 국회의원들의 집중 질타를 받았다. 이후 협회는 지적 사항을 바로잡기 위해 법인화를 진행했다.
첫 국감 7년 만인 지난 2012년 축구협회는 또 한 번 국회의 호출을 받았다. 그 해 열린 런던올림픽에서 축구 대표팀이 동메달을 땄는데, 미드필더 박종우의 ‘독도 세리머니’로 주목을 끈 바 있다.
독도 세리머니는 IOC로부터 ‘정치적 표현’이라는 이유로 박종우의 동메달 유보 결정이 내려졌다. 이후 협회가 이를 대처하는 과정에서 일본축구협회 측에 지나친 저자세의 서한을 보냈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지난달 초부터 ‘히딩크 논란’이 촉발되며 축구협회는 또 다시 국감장으로 불려나오게 됐다. 히딩크 이슈 외에 임직원 법인카드 남용 등 협회 비리와 관련해서도 질의가 있을 예정이었다. 출석을 요구받은 김호곤 기술위원장은 해외 일정을 이유로 불참했다. 하지만 이날 국회 교문위 소속 의원들은 오는 30일 종합감사에 김 기술위원장의 출석을 기대한다는 말을 남겼다.
# 연예인 응원단의 혈세 낭비와 ‘김연경 국감’
지난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이후 직후 열린 국감에서는 연예인 응원단의 ‘혈세 낭비’가 도마 위에 올랐다. 연예인 응원단은 당시 올림픽 개막을 앞두고 야구선수 출신 방송인 강병규의 주도로 결성됐다. 그가 문화체육관광부에 제안을 했고, 친분이 있는 연예인들을 중심으로 결성된 것으로 알려졌다.
연예인 응원단은 스포츠토토 수익금 2억 189만 원을 지원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들은 지원금 일부를 개인 스파 이용에 사용했고, 약 10일간의 베이징 체류 기간 중 경기장 현장 응원은 8회에 그쳤다는 사실이 국감 과정에서 드러났다.
지난 2012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한 김연경. 연합뉴스
여자배구 슈퍼스타 김연경의 이름도 국감장에서 오르내리기도 했다. 김연경과 국내 V리그 시절 소속구단인 흥국생명 간에 이적 분쟁이 계속됐고, 이에 정치권이 나서기 시작한 것이다. 김연경은 국감에 앞서 직접 국회에서 의원들과 함께 기자회견에 나서기도 했다. 결국 김연경은 대한배구협회로부터 이적 동의서를 발급받아 터키에서 활약을 이어갈 수 있었다.
# 정치권 지적에 스폰서십 끊고 군복무 선수 떨기도
국감은 스포츠 스타나 단체가 등장하지 않음에도 스포츠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대표적인 예가 지난 2005년 국감이다. 당시 국감은 ‘삼성 국감’이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했다. 당시 삼성그룹은 금산법 위반 의혹 등으로 정치권의 집중 포화를 받았다. 이는 스포츠계에도 불똥이 튀었다.
당시 삼성은 프로야구와 축구, 농구까지 3개 종목의 리그 타이틀 스폰서를 맡고 있었다. 정치권에서는 “삼성이 스포츠까지 독식하려 한다”는 시각을 내비쳤다. 이 같은 지적에 삼성은 곧바로 프로농구 스폰서에서 손을 뗐다. 프로야구 또한 계약기간이 끝나는 2008년 이후로 스폰서십 체결을 중단했고, 같은 해 K리그에서도 삼성의 지원은 끝났다.
2013년 국감에서는 국방부가 경찰청 체육단을 해체하겠다는 입장을 밝혀 체육계가 혼란에 빠지기도 했다. 병무청 국정감사에서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의원이 “의무경찰 신분이 치안보조 업무를 하지 않고 선수단 활동을 하는 것은 불법”이라고 지적하자 국방부 관계자는 “2014년 1월 1일부로 해체하겠다”고 답했다.
당시 경찰청 체육단에는 5개 종목 110명의 선수가 복무 중이었다. 특히 인기 종목인 야구와 축구에 시선이 집중됐다. 유승안 야구단 감독은 적극적으로 해체를 반대하고 나섰고, 프로 전환 첫해 2부 리그(K리그 챌린지) 준우승을 차지한 축구단 선수들도 난감함을 표했다. 결국은 ‘체육단 존속’으로 가닥이 잡히며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이처럼 ‘국회의원 의정활동의 꽃’이라고도 불리는 국정감사는 스포츠에도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체육계 내에서 해결되지 않는 과제를 정치권에서 해결하기도 했고 새로운 시각으로 문제점을 꼬집기도 했다.
하지만 국감이 스포츠 팬들에게 항상 환영받은 것은 아니다. 일각에서는 대중들의 관심이 많은 스포츠를 정치인들이 자신을 알리는 데 활용한다는 지적도 있다. 히딩크 논란을 다룬 이번 국감 또한 “축구협회 비리가 아닌 대표팀 감독 선임을 왜 국회가 관여하냐”는 의견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홍재민 포포투(Four Four Two) 편집장은 “축구협회가 다른 곳에 비해 국감장에 자주 오르는 건 그만큼 대표팀에 국민적 관심이 많다는 뜻 아니겠나”라면서도 “분위기는 이해가 가지만 ‘과연 이 일이 국가가 나설 일인가’하는 의문이 든다. 축구협회 비리 건은 이미 관련된 인물이 입건됐다. 히딩크 감독과 관련해서 ‘감사’를 한다는 것 자체가 이상하게 들린다”고 의아함을 표했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