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인터넷전문은행에 한해 은산분리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적지 않았다. IT기업이 혁신을 이끌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임종룡 전 금융위원회(금융위) 위원장은 지난 4월 카카오뱅크에 대한 은행업 본인가를 허용하면서 “IT기업이 주도적으로 경영에 참여할 수 있도록 은산분리의 예외를 담은 입법이 최대한 빠른 시일 내 마련되도록 하는 데 끝까지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증자하기 어렵다는 점도 은산분리 규제 완화의 이유다. 지난 9월 K뱅크는 1000억 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단행했지만 과정이 순탄치 않았다. KT를 비롯한 대기업 주주들은 일정 이상의 지분을 소유할 수 없고 상대적으로 자본이 부족한 주주들은 증자에 참여할 자본이 없었기 때문이다. K뱅크는 부동산업체 MDM을 새로운 주주로 받아들여 겨우 증자를 완료했다. K뱅크는 올해 말 1500억 원 규모의 증자를 예고했지만 이 역시 어려움이 예상된다.
지난 16일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열린 금융위원회에 대한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한 윤호영 카카오뱅크 대표(왼쪽)와 심성훈 K뱅크 행장.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인터넷전문은행 입장에서는 은산분리 규제 완화가 시급하지만 정치권은 미온적인 태도를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공약집에서 은산분리 원칙을 고수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7월 국정기획자문위원회에서 발표한 ‘문재인 정부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서는 은산분리를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게다가 최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불거진 여러 의혹 때문에 여론마저 싸늘해지고 있다. 의혹의 내용이 은산분리의 취지인 ‘특정 기업의 은행 사금고화를 막아야 한다’는 것과 맥락을 같이 하기 때문이다.
지난 10일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KT, 우리은행, NH투자증권은 사실상 공동의결권을 행사하고 있어 ‘사실상 영향력을 행사하는 대주주’이므로 동일인으로 봐야 한다”며 “모든 주주의 의결권을 특정한 방향으로 행사하도록 지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지난 12일에는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향후 은산분리 규제가 완화되면 KT는 K뱅크의 지분 28∼38%, 카카오는 카카오뱅크의 지분 30%를 확보하는 내용의 콜옵션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박 의원은 “인터넷전문은행 인가 때 금융위는 이례적으로 보도자료를 내 은산분리 완화 법안 통과를 촉구했다”며 “최대주주 변경 콜옵션 계약 성사를 금융위가 공개적으로 밀어준 셈”이라고 밝혔다. 카카오뱅크 관계자는 “법 개정을 전제로 한 콜옵션은 이전부터 공시한 내용”이라며 “은행 설립 당시 계약서나 약정서 상에도 특별한 문제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인터넷전문은행들은 은산분리 규제 완화에 대해서는 강력히 요구하지만 여기저기서 제기되는 의혹들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있다. K뱅크 관계자는 “인터넷전문은행에 한해 은산분리의 예외를 인정해주면 금융권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을 수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최근 불거진 의혹들에 대해서는 답변을 하지 않았다.
카카오뱅크는 한국투자금융지주(한국금융)가 백기사 역할을 해 K뱅크에 비해 증자에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박정훈 기자 onepark@ilyo.co.kr
현 상황은 카카오뱅크보다 K뱅크가 더 급해 보인다. 한국투자금융지주(한국금융)가 백기사 역할을 하며 카카오뱅크에 아낌없는 지원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카카오뱅크 지분 58%를 보유한 최대주주인 한국금융은 금융권 자본이기 때문에 은산분리 규제에 적용되지 않는다. 하지만 K뱅크의 금융권 자본인 우리은행은 백기사 역할까지 하지는 않고 있다. 일부에서는 우리은행이 자사 모바일 플랫폼인 ‘위비뱅크’에 집중하고 K뱅크에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뒷말도 나온다. 은산분리 규제가 완화되지 않으면 K뱅크로서는 증자가 쉽지 않다.
인터넷전문은행은 최종구 금융위원장에게 희망을 걸 것으로 보인다. 최 위원장이 예전부터 은산분리 규제 완화를 주장해왔기 때문이다. 또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이 제기한 의혹에 대해 “주주들을 동일인으로 볼 여지가 없다”고 선을 긋는 등 인터넷전문은행권에 힘을 실어주는 모습을 보였다.
금융위는 제3호 인터넷전문은행 추진 계획도 갖고 있다. 최 위원장은 지난 9월 30일 판교 테크노밸리에서 열린 창업·중소기업 간담회에서 “은산분리 완화가 이뤄지기 이전이라도 인터넷전문은행 추가 문제는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금융권에서는 대부분 “은산분리 문제가 해결되기 전에 인터넷전문은행에 참여할 기업은 없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제3호 인터넷전문은행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은산분리 규제 완화가 절실한 셈이다.
인터넷전문은행도 적극적으로 호소하고 있다. 심성훈 K뱅크 행장은 지난 16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해 “쉽고 효율적인 증자를 위해선 은행법이 개정돼야 한다”며 “은행법 개정을 간곡하게 말씀드린다”고 말했다. 윤호영 카카오뱅크 공동대표 역시 이날 “은행법이 개정되지 않는다면 혁신의 속도가 늦어질 것”이라며 “인터넷전문은행과 관련한 특별법 형식으로 변경됐으면 한다”고 전했다.
하지만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아 진통이 예상된다. 김은정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간사는 “국회에서 은산분리 규제 완화 법안을 통과시키기도 전에 완화를 전제로 하고 인터넷전문은행 인가를 내준 금융당국의 잘못을 철저히 따져야 한다”며 “인터넷전문은행 사업이 진행 중이라는 이유로 은산분리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동의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