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시사잡지에 실린 여중생의 아버지 살인사건. | ||
얼마 전 오카자키 시의 중2 소년이 ‘부모한테 혼난 것이 화가 나서’ 칼로 운전기사를 위협하여 버스를 납치하는 사건이 일어났는가 하면, 공부하라는 부모의 잔소리에 화가 나 집에 불을 지르거나 어머니를 구타해 살해하는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10여 년 전만 해도 언론을 떠들썩하게 장식했을 이런 청소년들의 흉악 범죄가 최근 일상적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자주 일어나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
지난 7월 19일 일본 사이타마 현에 사는 중학교 3학년 여학생(15)이 새벽에 잠든 아버지를 칼로 찔러 죽이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 여학생은 평소 가족들과의 관계도 원만했고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킨 적도 없는 평범한 소녀였다. 사건 전날 저녁에는 아버지와 함께 저녁 식사를 준비하고 식구들과 TV를 시청하다가 잠자리에 들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평범한 하루를 보낸 뒤였다.
그러나 새벽 3시경 중학생 딸이 아버지와 남동생이 함께 잠들어있는 방으로 들어가 갑자기 부엌칼로 아버지를 살해했다. 어머니가 방에 들어갔을 때 딸은 피를 뒤집어쓴 채 침대에 엎드려 있었고 아버지는 방바닥에서 얼굴과 가슴을 칼로 찔려 피를 흘리고 있었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가족들과 함께 저녁을 먹고 TV를 보던 여학생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 조사 결과 학업에 대한 스트레스와 부모의 지나친 기대 때문에 벌어진 우발적 살인이라는 결론이 잠정적으로 난 상태지만 여전히 확실한 동기는 불분명한 상태다.
처음 경찰 조사에서 이 학생은 “12시 정도에 잠자리에 들었다가 아버지가 가족들을 모두 죽이는 악몽을 꾸며 3시에 깼다”면서 잠이 덜 깬 상태에서 공포에 질려 아버지를 살해했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조사가 계속되면서 경찰이 딸이 자고 있었다고 말한 시각에 휴대전화를 사용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사실을 추궁하자 딸은 “사실은 밤새 깨어있었다”고 진술을 번복했다. 이후에도 “매일 공부하라는 말에 짜증이 났다” “몇 주 전부터 세상이 싫어졌다. 모든 것을 끝내고 싶었다”며 말을 바꾸었다. 가장 최근의 진술에서는 “모든 게 싫어져서 가족을 모두 죽이고 나도 죽을 생각이었다. (거짓으로 꿈 이야기를 한 것은) 어머니와 동생이 너무 괴로워할 것 같아서 사실을 말할 수 없었다”며 울음을 터뜨렸다.
이 사건이 다른 청소년 범죄보다 충격적인 이유는 정말로 ‘평범한’ 여중생이 저지른 사건이기 때문이다. 이 학생은 평소에 잔인한 만화나 게임을 즐기는 것도 아니었고, 동물을 학대하거나 타인을 괴롭히는 잔인함을 보인 적도 없었다. 중학교에 입학한 후 성적이 떨어져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수험생들이 공부 때문에 부담을 느끼는 것은 일반적인 일로 살인 사건을 일으킬 만한 요인이라 보기는 힘들다.
▲ 여중생 살인 사건 현장. | ||
그러나 이번 사건은 달랐다. 범행 도구로 집에 있던 부엌칼을 선택한 것은 미리 계획한 것이 아닌 충동적인 범행이었음을 나타낸다. 이 학생의 친구 또한 “그 애는 만화나 게임 등의 영향을 받아 부모를 살해할 정도로 유치한 ‘어린애’가 아니다”라고 진술하고 있다. 경찰 조사 관계자들과 가족, 학교 선생님들 모두 이번 사건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번 사건에 대해 일부 정신과 의사들은 “요즘 청소년들은 어렸을 적부터 혼나거나 주의를 받는 것에 익숙하지 않아서 사소한 일로도 분노를 통제하지 못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일본 후생노동성이 2006년 약 600명의 중학생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전체의 25%가 우울증을 앓고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심각한 우울증 때문에 자포자기 상태가 되면 자살뿐 아니라 충동적으로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도 높아진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지금까지는 청소년들의 흉악 범죄가 가족 간의 불화나 학교에서의 따돌림 등 사회적인 요소에 기인한다고 여겼지만 사실은 청소년 개개인의 심리 상태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최근의 청소년들은 지나치게 많은 정보와 비교대상, 선택권, 스트레스에 짓눌려 20~30년 전의 청소년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한’ 인생을 살고 있다. 아무런 걱정 없는 천진난만한 어린 시절은 이미 오래전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일본 오사카대학 대학원 인간과학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일본의 고등학생과 대학생들 중 약 30%가 “부모나 친구에 대해 살의를 느껴본 적이 있다”고 대답했다. 고등학생의 28%, 대학생의 35%가 “부모에게 살의를 느껴본 적이 있다”고 대답했으며, 살해 충동을 느낀 빈도수에 대해 대부분은 “한두 번” 혹은 “가끔”이라고 답했지만 “자주 있다”고 대답한 학생들도 전체의 3%나 됐다. 이들에게 부모를 살해하는 행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자 더욱 충격적인 대답이 나왔다. “전혀 있을 수 없는 일은 아니다” “(부모를 살해하는 사람들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다”는 대답이 “인간으로써 해서는 안 되는 짓”이라는 대답을 훨씬 웃돌았다.
한편 “친구에게 살의를 느껴본 적이 있다”고 대답한 학생들은 고등학생, 대학생 모두 33%였으며, 부모 살해와 마찬가지로 충분히 있을 수 있다는 반응이 많았다. 조사에 따르면 자살을 생각한 경험이 있는 사람일수록 부모나 친구에게 살의를 느끼는 경향이 높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우리가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할 대상은 더이상 반사회적이고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극소수의 청소년들뿐만이 아니다. 세상으로부터 안전한 울타리가 되어야 할 가정이 제대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자녀들뿐 아니라 부모와 사회의 깊은 관심이 필요하다.
박영경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