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일 시사 주간지 <슈테른>에 실린 중국 전 마라톤 간판스타 아이동메이. 선수시절 혹독한 훈련으로 발가락이 기형적으로 변해 걷지도 못하는 상태다. | ||
17일 동안 감동의 드라마가 펼쳐졌던 베이징 올림픽이 마침내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경기 내내 부동의 선두를 달리던 중국은 끝까지 1위 자리를 지키는 데 성공하면서 주최국으로서의 이점을 톡톡히 챙겼다. 하지만 선수들이 온 힘을 모아 이루어낸 영광의 이면 뒤에는 사실 말할 수 없는 고통과 추잡한 비밀이 숨겨져 있었다. 메달 뒤에 가려진 중국 선수들의 암울한 현실은 이미 여러 차례 해외 언론을 통해 보도된 바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 독일 시사주간 <슈테른>은 베이징 올림픽을 맞아 다시 한 번 중국 선수들의 이면에 숨겨진 잔혹한 현실을 심층 취재해서 화제가 되었다. <슈테른>에 따르면 중국 선수들은 쓰고 나면 버리는 ‘일회용품’이나 다를 바 없으며, 잦은 금지약물 복용이나 고문과 같은 잔인한 훈련법으로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는 일도 빈번하다. 또한 한때 영웅으로 추앙받던 운동선수들이 은퇴 후에는 가난과 싸우는 신세로 전락하거나 심지어 장애인으로 평생을 살아야 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1999년 베이징 국제마라톤대회 우승을 비롯, 현역 시절 16개의 국내외 마라톤 대회를 석권하면서 한때 ‘아시아 최고의 여자 마라톤 선수’로 불리던 아이동메이(27).
지난 2003년 부상으로 은퇴할 때까지 그녀는 세계 마라톤계를 주름 잡던 선수 가운데 한 명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완전히 달라졌다. 현재 그녀의 직업은 스포츠신문 가판대에서 신문을 파는 ‘신문팔이’다. 벌이도 시원치 않기 때문에 근근이 생계를 유지할 정도다. 하지만 지금은 그나마 사정이 나아진 편이다.
길거리에서 옷장사를 하던 지난해에는 현역 시절에 딴 메달까지 몽땅 시장에 내다 팔 정도로 가난에 쪼들렸다. 당시 그녀가 시장에 내놓은 금메달의 가격은 개당 1000위안(약 15만 원)이었으며, 은메달은 300~500위안(약 4만 5000원~7만 5000원), 동메달은 100위안(약 1만 5000원)이었다.
한때 영웅 대접을 받던 마라톤 선수가 신문팔이를 업으로 삼고, 또 돈이 없어서 메달까지 팔고 있다니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아이동메이가 이렇게 처참한 신세가 된 직접적인 원인은 사기꾼 때문이었다. 은퇴 후 정부로부터 받은 포상금과 각계에서 보내준 후원금을 모조리 사기당하고 만 것이다.
하지만 사실 이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중국 정부의 포상정책이다. 중국 정부는 선수들이 한창 현역에서 뛰거나 국제 무대에서 활약을 할 때에는 막대한 포상금과 함께 적지 않은 월급까지 지급할 정도로 극진한 대우를 한다. 가령 이번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딸 경우에는 100만 위안(약 1억 5000만 원)의 포상금과 함께 고급 승용차가 부상으로 주어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런 대접도 잠시. 일단 선수가 은퇴를 하게 되면 정부는 모든 지원을 일절 끊어 버린 채 등을 돌리고 만다. 연금 제도가 없기 때문에 수입원이 없어진 선수들은 당장 먹고 살 길이 막막해지는 것은 물론, 하루 아침에 실업자 신세로 전락하고 만다. 시사주간지 <타임>의 보도에 따르면 한때 정상에 섰던 중국의 은퇴 선수 30만 명 가운데 현재 약 80%가 가난한 생활을 하고 있다.
▲ 아이동메이가 은퇴 뒤 길거리에서 옷장사를 하던 모습. | ||
아이동메이의 동료 선수였던 궈핑 역시 사정은 비슷하다. 중국 최고의 장거리 달리기 선수였던 궈핑도 고문과도 같았던 지옥훈련 탓에 발가락이 심하게 굽은 상태며, 결국 10분 이상 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렇다면 도대체 훈련이 얼마나 고되고 지독하기에 선수들이 이런 장애까지 갖게 된 걸까. 사실 이들이 이렇게 된 원인은 왕더셴이라는 악명 높은 육상 코치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많은 유명 선수들을 배출한 까닭에 중국 내에서는 명망이 높은 왕더셴은 하지만 동시에 선수들을 노예처럼 다루는 훈련법과 금지약물 복용으로 비난도 받아왔다.
왕더셴의 지독한 훈련 방법에 대해 궈핑은 “왕 코치 아래에서의 생활은 지옥과도 같았다. 집에 가서 부모님을 뵙는 것은 5년 동안 딱 한 번만 허락되었다”고 털어 놓았다. 선수들과 외부와의 접촉을 일절 차단한 까닭에 선수들은 바깥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거의 알 수 없었다.
또한 연습 중에는 채찍이나 몽둥이로 때리는 일도 빈번했으며, 심한 경우에는 전기충격기까지 사용했다. 이보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속도 향상을 위해서 자동차로 선수들의 뒤를 쫓는 잔인한 방법까지 사용했다는 것이다. 속도가 느린 선수들의 경우에는 자동차 범퍼에 치이면서 달려야 했으며, 이로 인해 뼈가 부러지는 일도 다반사였다. 이렇게 매일 60㎞를 달린다는 것은 웬만큼 훈련이 된 선수라고 할지라도 견디기 힘든 것이 사실.
왕더셴이 악명 높은 데에는 또 한 가지 이유가 있다. 바로 선수들에게 금지약물을 복용하도록 한 나쁜 습관 때문이다.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1만m 금메달리스트이자 2005년 베이징 마라톤대회에서 우승했던 쑨잉지에가 바로 그 대표적인 예다. 결국 그녀는 훗날 금지약물인 아나볼릭 스테로이드제를 복용한 사실이 발각되면서 기록을 박탈당했으며, 왕더셴은 중국 육상연맹으로부터 영원히 퇴출당하고 말았다.
사실 중국 선수들 사이에서 금지약물 복용이 문제가 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에서는 7명의 수영선수를 포함, 모두 11명의 선수들이 스테로이드 양성 반응을 보여서 퇴출당했는가 하면, 1998년 세계수영선수권대회에서는 중국의 한 선수가 팀 전체가 투약하고도 남을 만큼의 다량의 성장호르몬을 밀반입하다가 세관에 적발되기도 했다. 또한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는 IOC가 올림픽 사상 최초로 조혈호르몬제인 에리스로포이엔틴(EPO)을 금지약물에 포함시키자 중국 선수들 27명이 무더기로 출전을 포기하기도 했다.
▲ 전 역도 중국 국가대표 쩌우춘란은 막일을 하며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작은 사진은 스테로이드제 과다 복용으로 수염이 자라 면도를 하는 모습. | ||
14세 때부터 스테로이드제를 복용했던 쩌우춘란은 그에 따른 부작용으로 현재 여러 가지 장애를 겪고 있다. 남성처럼 수염이 자라는가 하면 목젖이 튀어 나와 목소리까지 굵게 변해 버렸다. 척추는 망가졌고, 이른 나이에 남성호르몬제를 투입한 까닭에 자궁이 제대로 성장하지 못해 현재 임신도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1993년 은퇴한 후부터 그녀는 “평생을 책임져 주겠다”던 코치의 말과는 달리 인생의 밑바닥을 전전해야 했다. 공사장에서 막일을 했는가 하면, 목욕탕에서 때를 밀면서 입에 풀칠을 해야 했다. 한때 세계를 들어올리던 최고의 역도 선수가 때밀이로 직업을 바꿨다니 세계가 놀랄 일.
하지만 이런 불만과 잘못된 처우에도 불구하고 중국 내 대부분의 선수들은 올림픽에 즈음해서 약속이라도 한 듯 인터뷰를 거절한 채 굳게 입을 다물었다. 이에 입을 열지 않는 대가로 중국 정부가 모종의 사례를 하지 않았나 하는 추측이 지배적이다. 실제 쩌우춘란은 2년 전 한 여성단체로부터 세탁기, 건조기, 증기다리미 등 17만 위안(약 2600만 원) 상당의 가전제품을 지원받았으며, 한 병원의 도움으로 무료로 목젖을 제거하는 수술까지 받고 다시 여자로 태어났다. 역도협회와는 “절대로 금지약물 복용에 대해서는 일절 함구한 채 성공과 미래에 대해서만 인터뷰하겠다”라고 약속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이동메이 역시 <슈테른>을 상대로 “외국인들 앞에서 우리나라의 치부에 대해서 말하고 싶지 않다”고 말을 아꼈으며, 궈핑은 “노 코멘트”로 일관했다. 아이동메이와 궈핑 역시 각각 20만 위안(약 3000만 원)과 5만 3000위안(약 800만 원)의 위로금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당장 먹고 사는 ‘생계 문제’이지 ‘도핑’이나 ‘중국 체육계의 부패한 제도’ 등은 아니었던 것이다.
어찌 됐든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중국이 과연 앞으로 선수들의 처우를 얼마나 개선할지 온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김미영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