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할아버지이자 아버지의 손에 살해당한 네 살배기 로즈의 생전 모습. 로이터/뉴시스 | ||
지난 8월 26일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하는 일란 벤 샬롬 수사지휘관의 목소리에는 비통함과 함께 울분이 섞여 있었다. 지난 5월 실종된 후 행방이 묘연했던 한 4세 여자아이가 결국 처참하게 살해되었다는 사실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사건이 샬롬을 비롯한 전 이스라엘 국민을 분노케 하고 있는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범인의 정체 때문이다. 여아를 살해한 장본인이 다른 사람도 아닌 친할아버지, 그리고 엄마였던 것이다. 충격적인 사실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시아버지와 며느리 사이였던 두 사람이 3년 전에 눈이 맞아 지금은 엄연히 부부가 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고 말았던 둘은 결국 손주이면서 동시에 딸인 자신들의 핏줄을 살해하는 비극까지 저지르고 말았다. 어떻게 해서 이런 비극이 벌어진 걸까.
이스라엘 텔아비브 북부의 해안도시인 나타냐에서 부모, 다시 말해 할아버지와 엄마와 함께 살고 있던 로즈가 사라진 것은 지난 5월이었다. 이웃 주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로즈는 부모로부터 심하게 학대를 당하고 있었으며, 줄곧 프랑스에서 친아빠와 살다가 지난해 12월 뒤늦게 엄마의 손에 이끌려 이스라엘로 건너온 탓에 히브리어를 잘하지 못했고, 또 환경에도 적응하지 못한 채 겉돌고 있었다. 이런 까닭인지 로즈는 실종되기 두 달 전인 지난 3월부터는 증조할머니 집에서 지내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살아있는 로즈를 마지막으로 목격한 사람 역시 증조할머니였다. 아들 내외의 부탁으로 로즈를 맡아 키우고 있던 증조할머니 비비안은 “어느 날 아들이 집으로 찾아왔다. 그리고 다시 로즈를 데려 가겠다며 짐을 싸서는 로즈와 함께 나갔다. 그 후 다시는 로즈를 보지 못했다”고 증언했다.
몇 달이 지나도록 로즈의 소식은커녕 행방을 알 수 없었던 비비안은 “로즈를 프랑스 유치원의 기숙사에 보냈다”는 아들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결국 비비안은 지난 7월 22일 이스라엘 아동보호부에 “몇 달 전부터 증손녀의 행방이 묘연해서 걱정이 된다. 실종된 것 같다”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게 된다.
보호소 직원이 로즈의 집을 찾아갔지만 로즈의 부모는 로즈의 행방을 알려줄 수 없다면서 진술을 거부했고, 결국 이들의 행동을 미심쩍게 여긴 이스라엘 경찰은 지난 8월 중순경 로즈의 부모를 체포했다.
그리고 결국 로즈의 실종사건이 접수된 지 2주 만에 이스라엘 출신의 로니 론(45)과 프랑스 출신의 마리 피삼(23)은 로즈를 살해한 혐의로 법정에 서게 됐다. 론 스스로 경찰 심문에서 “내가 로즈를 살해했다”고 자백했기 때문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론은 지난 5월 비비안의 집에 머물고 있던 로즈가 증조모로부터 구박을 받고 학대를 당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로즈를 다시 집으로 데려오려고 했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자동차 안에서 로즈가 론의 심기를 건드리는 행동을 했고, 순간 화가 난 그는 로즈의 머리를 손으로 세차게 내리쳤다. 로즈가 고개를 푹 떨구자 그는 “내가 너무 심하게 때려서 화가 났나 보구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로즈가 움직이지 않자 그는 이내 로즈가 죽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갑작스럽게 벌어진 상황에 당황했던 그는 아내 피삼의 얼굴을 보는 것이 두려웠고, 결국 여행가방에 시체를 넣은 후 그 길로 야르콘 강으로 달려가 강물 속에 버렸다. 그리고 집에 와서는 아내에게 “오는 길에 학교 기숙사에 보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그 후에도 여러 차례 진술을 번복하면서 수사를 혼란에 빠뜨렸다. “사실은 팔레스타인 국경에서 인신매매를 하는 아랍인들에게 넘겨 주었다”라거나 “다른 나라에 입양 보냈다”는 등 횡설수설했다. 하지만 이스라엘 경찰은 어찌 됐든 론이 범인이 확실하다는 가정 하에 그가 말한 야르콘 강을 샅샅이 수색하고 있으며, 시체가 담긴 것으로 추정되는 여행가방을 찾는 데 주력하고 있다.
현재 또 한 가지 풀리지 않는 점은 아내 피삼의 공범 여부다. 사건 당일 자동차 안에 피삼이 동승하고 있었는지, 아니면 만일 직접적으로는 살인에 가담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어떻게 론의 말을 그대로 믿고 두 달 넘게 딸의 소식을 들을 수 없었는데도 경찰에 신고를 하지 않았는가 하는 점 등도 의심스럽긴 마찬가지다. 현재 피삼의 변호인은 그녀의 무죄를 주장하고 있지만 경찰은 “그녀는 분명히 사건의 전모를 알고 있었다”고 확신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 당시 현장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비비안도 범행에 가담했을지도 모른다고 추측하는 사람들도 있다. 과거 그녀가 론과 론의 여동생을 상습 구타하고 학대했다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충분히 로즈를 학대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16세 때 가출했던 론의 여동생이 지난 7월 강도에 의해서 집에서 피살됐다는 사실도 석연치 않기는 마찬가지다.
사실 어린 로즈의 죽음은 이미 예고된 것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 가족의 비극은 2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피삼의 전 남편, 즉 로즈의 친부인 벤자민은 프랑스 어머니 엘리자베스와 론 사이에서 태어난 사생아였다. 이스라엘을 여행하고 있던 엘리자베스는 당시 만난 론과 하룻밤을 즐겼고, 임신한 채 프랑스로 돌아가 벤자민을 낳았다. 벤자민은 10대 시절 피삼을 만나 사랑에 빠졌고, 곧 로즈를 낳아 가정을 꾸렸다. 그리고는 19세 되던 해 “내 뿌리를 찾겠다”면서 생부를 찾아 이스라엘로 건너왔다. 아내 피삼과 딸 로즈와 함께 이스라엘로 이민 온 그는 아버지인 론을 만나 감격적인 재회를 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얼마 안 가 아버지와 아내가 눈이 맞았다는 사실을 안 벤자민은 분노했고, 로즈를 데리고 다시 프랑스로 돌아갔다. 론과 피삼은 이스라엘에 남아 새 가정을 꾸렸으며, 딸 둘을 낳았다.
하지만 지난해 로즈가 벤자민으로부터 심한 학대를 당해 결국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들은 피삼은 프랑스로 가 법적 소송 끝에 로즈의 양육권을 되찾았고, 결국 딸을 데리고 이스라엘로 돌아왔다. 처음에는 “이제야 온 가족이 한자리에 모였다”고 말하던 론과 피삼은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채 삐딱한 행동을 하는 로즈에게 넌더리를 쳤고, 급기야 죽음으로 내몰고 말았다. 20년 전 불장난이 결국은 대를 넘어 어린 소녀의 죽음이라는 비극으로 끝나고 만 셈이다.
김미영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